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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란 Jul 17. 2020

청계시소 놀이터 현장 스케치

#03. 청계시소 세 번째 이야기



놀며 느끼는 메이커 문화


세운상가를 지나 청계상가로 연결되는 세운교 위에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은빛을 뽐내는 초대형 시소, 스포츠 중계를 연상시키는 대형 모니터, 욕조와 카트를 개조해 만든 신기한 자동차,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매력적인 기계 부품들까지. 지난 5월 15일에서 17일 3일간 열린 ‘청계시소 놀이터’의 풍경이다. 청계시소 놀이터는 도심 제조업의 가치와 가능성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기획된 체험형 행사이다. 앞선 시리즈에서 소개한 ‘청계시소 프로토타입2’ 는 물론, 문래동 기반으로 활동하는 Fab.bros의 고카트도 직접 타 볼 수 있었다. 청계시소 프로토타입3의 조립도 한편에서 동시 진행됐다.  당초 대대적인 시민 참여 행사로 준비됐지만, 코로나 19의 여파로 사전 신청받은 소수의 시민들만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대신 페이스북과 트위치를 통한 온라인 생중계로 더 많은 시민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했다.

개장한 청계시소 놀이터

적은 인원만 참석할 수 있는 상황이 못내 아쉬울 정도로, 놀이터에는 즐거운 소리와 표정이 가득했다. 놀이공원에서나 썼을 법한 풍선 모자를 쓴 채 사진을 찍거나, 단순히 도심 한복판에 생긴 놀이터를 흥미롭게 관람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청계시소에 탑승한 시민들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까지 열심히 페달을 밟는 모습도 진풍경이었다. 특히 시소를 타는 모습이 대형 모니터에 중계되면서 마치 게임방송, 어드벤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신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약 2~3분 여 페달을 밟은 끝에 마침내 시소가 떠오르면, 현장에서는 “오오오 올라간다!” 하는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전에서 올라온 대학원생 이대규 씨는 “페달을 밟은 보람이 있을 만큼 뷰가 너무 좋았어요. 특히 올라가는 순간 굉장히 부드럽게 두둥실 떠올라서 신기하고 재밌었어요. 추가 얼마나 움직였는지 보여주는 게이지 같은 게 있으면 더 재밌을 것 같아요.” 라며 탑승 소감을 밝혔다.

고카트를 즐기는 시민들

이번 행사에서 시소만큼이나 인기를 끈 건 Fab.bros의 고카트였다. 본래 문래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전문 메이커 팀인 이들은 제작 문화 및 도심 제조업의 가치 확산이라는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여, 보다 풍부한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청계시소 놀이터에 합류했다. 이날 행사에서 선보인 카트들은 Fab.bros에서 운영하는 자작 카트 경진대회 ‘카트 어드벤처’에 나왔던 작품들이다. 욕조, 카트, 보트를 개조한 카트들은 모양새는 허술해도 범퍼카보다 탑승감이 좋고 속도도 꽤 낼 수 있어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놀이터에 마련된 좁은 트랙에서는 흡사 현실판 카트라이더 같은 경주가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고카트의 경우 젊은 사람들 뿐 아니라 중장년의 어른들이 참여하신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추억이 생각나서 아주 즐거웠어요. 나도 어렸을 때 이렇게 자동차 만들고 그랬거든. 나무를 깎아서 만들고.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야


고카트를 체험한 후 정영식 씨(57)가 밝힌 소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수동으로 나무를 깎아 탈 것을 만들었던 기억을 회상하며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가 경험한 것은 요즘 말로 ‘메이커 문화’의 시초 격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단순한 만들기 그 이상의 가치


Fab.bros에서 메이커톤, 드론 파이트 클럽 등 프로그램 기획과 교육을 담당하는 제민(29) 씨는 메이커 문화, 메이커 교육의 강점이 만드는 행위 자체보다도 경험적 요소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얻는 성취감이 정말 큰 것 같아요.  팀 작업의 경우 의견을 나누면서 뭔가 이루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으니까요. 만드는 걸 꼭 잘하지 않아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죠

좌:라이프해킹 메이커톤(출처:메이커뉴스)/우:강원대 메이커톤(출처:팹브로스 블로그)


메이커톤(일종의 개발 경진대회) 행사를 운영하다 보면 1회 때 참석한 학생들이 매년 재참석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과정이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기 때문이라고.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지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얻어가는 것이 많다고 여겨서 인지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경우가 많다. 팀을 이끌고 있는 용현 씨는 메이커 문화가 “건전할 뿐 아니라 성취감도 느낄 수 있고 산업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경쟁력 문화”라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메이커 운동 로고 (출처: maker movement 페이스북)

실제로,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배우는’ 메이커 문화와 교육의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과학(science)·기술(technology)·공학(engineering)·예술(arts)·수학(mathematics) STEAM의 제반 이론을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는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으며, 기술, 예술 영역에 대한 접근을 민주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성취감과 즐거움을 동기로 공동작업, 네트워크를 통해 배우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 최근 사회 변화에 걸맞은 교육 방식으로 평가받는다. 실리콘 밸리의 위대한 창업자들, 중국의 신흥 발명가들이 이 ‘메이커 문화’를 통해 성장했다는 점은 용현 씨가 언급했듯 ‘단순히 취미를 넘어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한 만들기 그 이상의 가치인 것이다.

 


도심제조업의 역사, 현재 그리고 미래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이런 메이커 문화가 성장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실은 ‘메이커 운동’이 활발하기 전부터 이곳에서는 개인 제작자, 발명가들에게 보물 같은 장소였다. 소량 맞춤형 제작에 특화된 소형 공장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허름해 보이는 동네 안에는 밀링, 선반 등 정밀한 부품 제작을 위해 필수적인 기계의 전문가들은 물론, 최초의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은 숨은 명장들이 가득하다. 혹자들은 설계도만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쉽게 주문제작이 가능한데, 굳이 이 지역을 방문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을 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설계만 하는 것이 아닌, 실현 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제품화 과정과 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 곳에는 장시간 몸으로 체득한 원리와 지식을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해줄 수 있는 선생님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메이커들을 위한 교육장으로 제격인 것이다.

세운 일대 공장 사장님들 왼쪽부터 장종일 대우 목형 사장, 조무호 태광정밀 사장, 정연정 신한정밀 사장(출처: 경향신문)

사실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도심 제조업 생태계는 전 세계에서 구축하고 싶은 도심 제조업의 미래이기도 하다. 뉴욕, 벨기에 등 주요 도시들은 도시에서 사라져 간 제조업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을 일찍이 벌이기 시작했다. IT가 발달하면서 대도시의 주력산업인 금융업, 미디어, 패션 등 서비스 산업의 일자리가 주는 상황에 대한 대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도심 제조업은 적은 공간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어 도시에 적합하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뉴욕시의 ‘메이드 인 뉴욕시티 (MADE IN NYC)’이다. 이 일대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사업을 이어온 세운협업지원센터의 임혜경 실장은 “우리가 도시재생 사업을 하면서 가장 원하는 것은 ‘이 동네를 이용하셔서 2020년에도 소용되는 물건을 만들어주세요!’”라며 단순히 힙지로로 끝나거나 과거에는 ‘탱크도 만들었던 동네’가 아닌 지금 팔리는 것을 만드는 동네로 재생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는 것이다. 송호준 작가는 “MIT에서 만들었던 개인용 인공호흡기를, 국내에서는 이 지역에 찾아오는 어떤 사람이나 만들 수 있다.”며 특히 코로나로 마스크, 물병 등이 대거 필요했던 상황에서 소비시장에 근접해 있는 제조업 인프라는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렇게 한눈에 지역 상황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실 이 지역은 우리나라 도시의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역이기도 하다. 사실 젊은 세대들을 역사에 대해 잘 모르시기 때문에 이 지역이 낡고 위험하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다. 나와서 시소도 타고 즐기시면서 이 지역에 대해 더 알아 가셨으면 좋겠다. 또 지금도 진행 중인 도심 제조업 생태계의 일부 보존과 일부 철거로 인한 단절 문제, 실질적 재생과 근본적 문제 해결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운일대 전경 (출처: 서울시립대 신문)

청계천보존연대의 박은선 활동가가 청계시소에 올라 일대를 돌아본 후 밝힌 소감이다. 이 곳은 도시개발과 한국 근대의 제조업 발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지역이자, 메이커들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이며, 현재 활동하는 예술가와 메이커들을 위한 대형 작업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소비와 서비스로만 채워진 공허한 도시가 아닌 ‘생산하는 도시’로의 미래를 향한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을 주상복합으로 대체하는 것이 과연 도시에 정말 이로운 방향인지는 재고해 봐야 할 일이다. 결국, 청계시소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이처럼 엄청난 가치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함께 살려 나가자 말하는 무언의 외침이 아니었을까.


          



References.

안상욱 (2014). 『용어로 보는 IT』. 블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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