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지켜온 기준과 시스템이 있는 조직에서 새로운 일을 벌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뭔가 시도하기 위해 이 기준과 시스템을 벗어난 제안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더욱이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인 상태에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산도, 인력도, 업무 수행 방식도 공공도서관의 기준 이상을 요구하는 space T가 지자체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 어려운 일을 1년간 힘차게 해내고 있는 그린대로 운영팀을 만났습니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믿음으로 설득의 연속이었던 1년을 버텨내셨다는데! 1년간 7,285명의 청소년이 14,428시간을 그린대로에서 보내기까지 운영팀의 희노애락에 대해 들었습니다.
해보니 별것 아닌 일, 시간이 약인 일, 아직까진 숙제인 일
Q. 작년 10월에 문을 여셨으니, 벌써 1년이 되었네요! 축하합니다.
다같이 감사해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1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Q.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가장 도전적이었던 혹은 어려웠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송이 아무래도 작은 것 하나부터 계속해서 설득하고 설명해야 했던 게 어려웠어요. 하다못해 물건을 하나 사도, 설명이 필요했어요. 예를 들어 space T에서는 아이들한테 전문적인 경험을 주기 위해서 재료 도구 하나하나 브랜드까지 고려해서 선별하잖아요? 그런데 공공기관에서는 보통 특정 브랜드를 지정해서 구매하는 경우는 없어요. 그러니 왜 이런 게 필요한지 하나하나 설명이 필요했죠.
보람 저도 비슷한 것 같은데, 초반이 특히 어려웠어요. 본격 오픈을 하기 전에 도서관 내부 직원 투어를 진행했는데, 칼이나 글루건같이 위험해 보이는 만들기 도구들이 공간 안에 있다 보니까 안전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컸어요. 저희는 콘텐츠 기획학교를 통해 도구들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는데, 위험한 건 다 빼는 방향으로 말씀하시다 보니까 하나하나 설득하느라 꽤 난감했어요.
Q. 안전에 대해서는 운영자분들은 걱정이 없으셨나요?
송이 사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니까,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 보니까 저희도 신경을 좀 더 썼죠. 오픈 전 마지막 공간 감리하고 나서, 아이들 머리 부딪힐만한 곳에 안전 가드를 다 설치했었는데요. 저희가 돌아다니면서 위험성이 있는 곳에 좀 더 설치한다든지.
보람 맞아요. 장갑도 더 튼튼한 것으로 추가 구비하고요.
송이 근데 오픈하고 1년 정도 경험을 해보니까 아이들이 생각보다 공간을 안전하게 이용하고, 위험한 상황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희가 계속 장갑 착용해야 한다고 권유를 하기도 하지만 자주 오는 친구들은 알아서 안전 수칙을 잘 지켜주거든요. 또 저희 공간이 12세부터 이용할 수 있는데, 12세 친구들 정도면 안정적으로 도구를 다루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이런 건 해보니까 알게 된 것이죠. 이제는 안전에 대해 걱정하시면 할 말이 생겼다고나 할까?
Q.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된 문제네요! 혹시 초반엔 난감했었는데, 안전 문제처럼 자연스레 해소된 문제가 있을까요?
보람 아무래도 공간이 너무 좋다 보니까, 초반에는 저희 교육청 분들도 이 공간을 활용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해서 지정된 방문일이 아닐 때 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송이 저희가 월요일만 기관 방문이 가능한 날로 지정해 뒀는데, 그날 외에 오실 경우에는 방문이 어렵다는 아내를 열심히 했어요. 사실 유관기관에서 높은 직책을 가지신 분들이 오시면 거절하기가 어려운데, 그때도 일관적으로 거절했던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1년 동안 수많은 어른들에게 설명을 열심히 드리기도 했고요.
Q. 반대로 아직도 어려운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보람 아무래도 파트타임으로 근무하시는 분들께 관찰 기록의 중요성을 안내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린대로는 로테이션 근무를 하고 있어서 주말에는 메인 운영자는 1명과 파트 타임 근무자 2명이 근무를 해요. 메인 운영자인 저희는 재단을 통해서 관찰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기도 했고, 아이들을 오랫동안 보다 보니까 어떤 장면이 중요한지 선별하는 게 가능한데요. 이걸 잠깐 근무하시는 분들께 전달해 드리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나영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올해 7월부터 그린대로 메인 운영자로 근무를 시작했으니 아직 적응 중인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관찰 기록 같은 경우에는 파트타임 운영자 분들께 명확하게 안내하기가 곤란하더라고요. 어떤 장면이 적을만 한 장면인지 기준이 모호하기도 하고요.
송이 저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저희가 하고 있는 일들의 성과를 조직에서 인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게 어려워요. 전통적으로 도서관에서 살펴보는 통계 지표는 이용자 수와 대출권 수에요. 그런데 그린대로는 대출이 안 되다 보니 오로지 이용자수만이 조직에서 인정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중요하게 보고 있는 아이들이 얼마 만큼의 시간을 그린대로에서 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등은 아직 조직에서 반응하는 지표는 아닌 거죠.
이용자 데이터를 활용하는 재미
Q. 모두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게 되면서 생겨난 어려움이네요. 고생이 정말 많으세요. 혹시 숱한 어려움이 있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면서 찾게 된 재미 같은 것도 있으실까요?
송이 재단에서 데이터를 굉장히 강조하시잖아요? 요즘에는 데이터 보는 맛이 좀 있어요. 예를 들어 이번 달에는 중학생이 너무 안 오는데? 하는 감이 있을 때 데이터를 뽑아 보면 진짜로 중학생이 적거든요. 이럴 때 되게 뿌듯하더라고요. 최근에 1년 기념으로 최다 방문자 최장 방문자를 랭킹으로 뽑아서 ‘랭킹 쇼’라는 걸 진행했었어요. 이때도 감으로 아마 최다는 초등에서, 최장은 중등에서 나오겠지 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뽑아보니 진짜 그런 거예요! 그럴 때 쾌감을 느껴요. 이런 구체적인 데이터는 생각보다 아이들 반응도 굉장히 좋은 편이에요. 랭킹 뽑아서 문자로 보내주니까 우승한 친구들이 다음 날 곧바로 그린대로에 찾아오더라고요. (웃음)
이용자 데이터 기반으로 재배치한 그린대로의 공간 보람 저는 아무래도 공간을 제대로 이용하는 단골로 아이들을 잘 유치(?)했다는 점일 것 같아요. 자주 오는 5~6학년 여자 친구들 무리가 있어요. 이 친구들은 학교가 가까워서 학교 마치고 자주 오는 친구들인데, 처음에는 뭘 할지 몰라서 방황했었어요. 제가 이 친구들이 그린대로를 잘 이용하게 도와주자! 라는 목표를 가지고 관심을 많이 기울였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공간 구석구석의 다양한 콘텐츠를 알차게 이용할 뿐 아니라, 본인들이 만나보지 못한 그린즈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활동까지 시작해서 엄청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본인이 좋아하는 네이버 웹툰 이렇게 목록 추천하고, 빈 종이를 하나 붙여서 ‘여기 추천해 주세요!’ 이런 식으로요. 특정 사안에 대해 찬성, 반대투표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요.
Q. 방황하던 친구들을 그린대로 우수고객이 되게 하시다니 비법이 궁금해요!
보람 비법(?)이라면, 그냥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계속해서 제안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보니 아이들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냥 ‘마라탕 그리자~’ 이런 식으로 주제를 하나 던져주고 그리는 걸 1~2주 정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후에 이제 그린대로에 어떤 그리기 재료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어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그린대로에 어떤 종이가 있는지, 어떤 채색 재료가 있는지 같은 걸 좀 알게 됐고요.
또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드라마에 관심이 엄청 많은 거예요. 그래서 좋아하는 드라마 대사를 원고에 적어보기도 했어요. 진짜 달달 외우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제가 이어서 드라마의 원작 웹툰 있는데 이런 책 봤냐? 하고 보여주기도 하고, 드라마 OST LP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같이 가서 들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한 번씩 보여주니까 할 수 있는 활동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만들기는 거의 안 했었는데 최근에는 지점토 작업을 시작했어요. 워낙 자주 오다 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은 어디까지 이런 식으로 이어서 쭉 작업을 하고, 말려서 채색까지 해서 완성했어요. 이런 모습이 굉장히 뿌듯했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오래도록 공간을 잘 이용하는 주축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space T 제대로 이용하게 만드는 보람의 비법
익숙한 작업을 새롭게 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를 제시해요
공간 안에 익숙한 작업을 위해 준비된 다양한 재료 도구를 탐색해 보도록 유도해요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관심사와 작업을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해요
관심사와 연결점이 있는 낯선 형식의 콘텐츠를 찾아 제안해요
추천, 만들기 등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수시로 알려줘요
그린즈와 함께, 직접 만들어가는 즐거움
Q. 그린대로에서 쌓여갈 친구들의 시간이 정말 기대되네요. 이런 일상적인 운영 외에도 거의 매달 빠짐없이 새로운 일을 하셨더라고요! 축제 참여 같은 큰 행사부터,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등 시즌별 인테리어, 꼬리책 큐레이션까지 그 종류도 참 다양합니다. 여러 가지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송이 아무래도 5월에 있었던 공공도서관 축제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아이들과 다 같이 뭘 한 첫 번째 일이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가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그때 참여했던 친구들이 그린대로에 자주 오기도 하고, 애착이 커서인지 새로운 친구들이 오면 직접 그린대로를 설명해 주기도 하거든요? 애들이 직접 해주다 보니 저희가 공간을 안내해야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고요. (웃음)
보람 저도 바쁘긴 했지만, 5월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요. 5월에 <가족 오목대전>이랑 <공공도서관 축제> 두 가지가 있었는데, 둘 다 굉장히 즐겁게 마무리한 이벤트였어요. <가족 오목대전> 같은 경우에는 예상보다 신청도 많이 해주셨고, 평소 활발히 오는 그린즈의 부모님들이 공간에 함께 오셔서 아이들이 어떤 공간에서 지내는지 직접 보시고 안심하실 수 있는 자리가 되어서 되게 뿌듯했어요.
축제 때는 운영자랑 그린즈 친구들이 다 같이 그린대로 모형을 만들기도 했고, 홍보 부스에서 그린대로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고요, 개막식 MC로 활동했던 친구들도 있었고요. 실은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까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하게 해줘서 그게 정말 보람찼어요. 특히 홍보 역할을 맡았던 친구가 정말 호객 행위를 잘해줬거든요? 지나가는 분들한테 “여기로 오세요~” 이러면서, 설명했는데 그 장면은 정말 못 잊을 것 같아요.
Q. 청소년들이 주축인 행사가 많지 않은데, 경험이 없는 그린즈들이 그렇게 까지 해내게 하는데 운영팀은 어떤 판을 깔아주셨을지 궁금해요!
송이 우선 저희가 그린즈 클럽이라고, 일종의 청소년 운영단을 2월에 선발했어요. 초등, 중등 각 12명씩 총 24명 정도를요. 이 친구들을 데리고 축제에 나간 건데, 홍보 부스를 계획하면서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을 미리 나눠뒀죠. 홍보부스에서 게임을 진행할 수도 있고, 그린대로에서 투어를 진행할 수도 있고, 개막식의 MC를 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요. 그린즈 클럽 모임 날 이런 것들을 알려주고, 하고 싶은 일에 자원할 수 있도록 안내했어요. 또 ‘그날은 너희가 매니저가 되는 거다.’ 하면서 매니저 앞치마를 딱 입혀줬죠.
놀라운 건 자원받을 때만 해도 ‘저요! 저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친구들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부스가 재밌게 운영이 될지 걱정을 했거든요. 그때 쭈뼛쭈뼛했던 아이들이 당일에는 완전히 달라진 게 정말 신기한 일이죠.
보람 두 달 정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본인의 역할을 확실하게 정해줬던 게 좀 먹혔던 것 같고요. 저희한테는 티를 안 냈더라도 본인들이 준비한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행사 당일에 저는 그린대로랑 행사 부스를 왔다 갔다 했는데,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이 모여서 이제 다시 밖에 나가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상의까지 하더라고요. 또 매니저 앞치마를 입혀준 것도 유효했던 것 같아요. 굉장히 좋아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걸 입는 순간 책임감을 엄청 가지게 된 것 같아서 하나의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송이 특히 개막식 MC 맡았던 친구들은 정말 잘했어요. 아무래도 사회 보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저희가 좀 말을 잘할 것 같은 친구들에게 권유했어요. 근데 이 친구들도 시험 기간이 겹쳐서 연습할 시간이 많이 없었거든요. 근데 당일에 행사 시작 시각보다 일찍 와서 연습까지 하면서 열의를 보이더라고요. 아이들이 메인이 되는 행사다 보니 부모님도 굉장히 좋아하셨고요.
나영 저는 그때는 아직 그린대로 소속이 아니었는데, 저희 도서관에도 소문이 났을 정도였어요. 저는 못가봐서 당시 참석했던 과장님께 “어땠어요?” 하고 여쭤봤었는데, 제일 첫 마디가 “그때 사회를 학생들이 봤는데 너무 잘했고, 그림이 너무 좋았다.”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되게 인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오게 되어서 좀 좋았죠.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 만들기
충분한 기간을 두고 아이들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연습할 수 있도록 한다
운영자 앞치마처럼 상징성/명예를 가진 물건을 제공해 하고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아이들이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지켜보고 크게 칭찬한다
애씀, 기준, 럭키비키의 삼박자
Q. 최근에는 1주년 맞이 행사를 성대하게 하셨죠. 그중에서도 제3의 어른으로 <샌프란시스코 화랑관> <계룡선녀전> <율리> 등 다수의 작품을 네이버에 연재하신 돌배 작가님과의 대화 시간이 화제였어요. 어떻게 마련된 시간이었나요?
나영 1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그린대로 이용하는 친구들한테 포스트잇으로 만나고 싶은 제3의 어른을 적어서 붙여달라고 요청했어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나왔는데 아이브, 축구선수 등등. 그중 가장 가능성 있는 직군이 웹툰 작가였어요. 도서관의 틀에서도 너무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섭외를 시도해 볼만한 직군이어야 했으니까요.
Q. 섭외 과정이 수월하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웹툰 작가님을 섭외해야 한다고 하면 막막한 감정이 먼저 들거든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셨나요?
나영 우선은 정민 님께서 네이버 웹툰 통해서 제휴 문의할 수 있는 경로를 알려주셔서 그쪽으로 먼저 문의를 드렸어요. 그런데 답이 없으셔서, 약간 급해졌죠. 그래서 몇 가지 기준을 세워서 부랴부랴 웹툰 작가님들을 찾기 시작했어요. 강의 경험이 있되 강의만 전문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최근 혹은 현재 연재하는 작품이 있으신 분 중 비즈니스 메일을 오픈해 놓으신 분 이렇게 기준을 세웠어요. 그러다 돌배 작가님 인스타 계정을 보게 됐는데, 강의 경력도 있으시고, 현재 <율리>를 네이버에 연재하시기도 하고 해서 메일을 보내봤죠. 그런데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어요. 돌배 작가님과 연락이 닿기 전까지 과정이 정말 길었고 그 후로는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어요.
송이 아무래도 대구라는 위치도 있고, 저희가 공공기관이다 보니 강사분께 드릴 수 있는 강사료가 크지 않거든요. 해서 처음에는 대구에 오실 수 있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보고, 대구 구립 도서관 중에 웹툰에 집중하고 있는 도서관에 연락해서 아는 작가님이 있는지 문의하기도 했고요, 콘텐츠 진흥원에서 하는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분들을 쭉 찾아보기도 했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놓치마 정신 줄> 같은 웹툰의 작가님을 찍어서 연락드려보기도 했고요.
나영 근데 마침 돌배 작가님 고향이 대구시라는 거예요. 저는 그게 진짜 섭외 성공에 큰 포인트였다고 봐요. 친정 부모님들이 대구에 계셔서 원래도 종종 오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친정집에도 갈 겸 겸사겸사 잘됐다 싶은 마음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실은 메일 자체가 특별한 건 없었어요. 저희 공간 설명해 드리고, 청소년 전용 공간이라는 것,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서 대화하는 시간이라는 행사 취지 정도? 거기에 저희 공간 확인하실 수 있게 홈페이지 링크 정도를 보내드린 정도였는데 운이 되게 좋았던 거죠.
수당에 대한 부분도 미리 말씀드렸는데, 다행히 작가님은 청소년들이랑 대화하거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그런 것도 좋다고 하셨어요. 청소년에 대한 관심, 지역에 대한 친숙함 이런 게 잘 합쳐졌던 것 같아요.
막막한 제3의 어른 섭외 이렇게 시작해 봐요
할 수 있는 한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애써본다
나름의 기준을 마련해 우리 공간에 오면 좋을 분들의 리스트를 정리한다
공간 소개, 행사의 개요, 수당 등 궁금할 정보를 깔끔하게 담은 메일을 발송한다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 맞아떨어지길 기원한다
Q. 역시 두드리면 열리네요! 아이들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나영 작가님도 토크 말미에 말씀하셨는데, 원래 작가님 작품의 메인 타겟이 30대 여성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운영자들은 좋아하는데, 아이들도 좋아할까? 걱정이 많긴 했어요.
송이 그린즈 클럽한테 순차적으로 어떤 작가님이 오시는지 공개했었어요. 여기 작품 리스트 중 한 명이다, 그다음에는 네이버에 연재하는 작가다 이런 식으로 힌트를 주면서요. 결국 애들이 직접 돌배 작가님이라는 걸 찾아냈는데, 저희 예상보다 잘 모르는 거예요. ‘너희 <계룡선녀전> 몰라?’ 했는데, 아예 그 작품을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요.
나영 그래서 걱정했었는데 아무래도 현재 연재 중인 작품 <율리>가 있다 보니까, 당일에 <율리>를 아는 친구들이 많이 와줬고, 작품에 대해서도 꽤 심도 있는 질문을 많이 해줬어요.
송이 또 그린즈들도 웹툰 작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그렇게 쉬운 경험이 아니라는 걸 알다 보니까, 그 경험 자체에 기대를 해줬던 것 같아요.
돌배 작가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그린즈들
Q. 아이들이 뜨거운 질문 세례를 해줬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질문들이 나왔나요?
나영 웹툰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질문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작품에 대한 질문들 절반이었어요. <율리>에 대해서는 세계관 중심으로 만화 상에서 아직 밝히지 않은 것에 관해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쿠무치 관장님이 머리가 잘렸는데, 이후에 머리가 다시 길면 이전 기억이나 지식을 다 찾을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머리가 길어진 이후부터만 기억하는 건지? 이런 걸 묻더라고요. 꽤나 진지하게 작품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송이 저는 애들이 했던 질문 중에 ‘평가가 안 좋을 때 어떻게 멘탈을 관리하는지?’ 이런 걸 물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게 꽤 인상 깊었어요. 작가님도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고 생각보다 깊은 대화가 가능하구나 싶은. 저희 인스타그램에 웬만해서 댓글이 안 달리는데 학부모님께서 아이가 정말 좋아했다고 댓글을 달아주시기도 했고 잘 된 행사라고 생각해요.
더 해보고 싶은, 지켜내야 할
Q. 초반에 있었던 일부터 최근의 일까지 쭉 돌아보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이미 많은 진화를 하셨는데 혹시 내년에는 이런 부분에 더 도전하고 싶다! 라는 것이 있으실까요?
송이 현재 트윈웨이브에서 하고 계신 여러 횟차로 연결된 글쓰기를 시도해 보고 싶어요. 실은 글쓰기는 저도 어려워하는 영역이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부담이 크긴 해요. 그래도 만들기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다른 것을 해본다면 글쓰기일 것 같아요.
또 전에 티티섬에 갔을 때 ‘감자’ 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음악이나 디자인에 전문적 지식이 있는 분들이 시간제로 상주하면서 아이들의 작업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이요. 그린대로에도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전문가 요일별로 오셔서 아이들에게 깊이 있는 설명을 해준다면 더 잘 즐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보람 저는 아무래도 글쓰기존 담당이다 보니까 완성도 있는 글 쓰기가 가장 욕심이 나요. 지금은 짧게만 쓰니까 엮어서 책으로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꼭 해보고 싶은 부분 중 하나에요.
나영 저는 아직 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지금까지는 저희가 ‘만들기’에 집중한 행사를 많이 했었거든요. 그래서 만들기 말고 다른 공간을 활용한 행사를 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듣는 대로에서 음악 관련된 걸 한다든지, 지난여름에 했던 것처럼 보는 대로에서 영화 관련 행사를 해본다던지 그런 식으로요.
나영 매니저가 활성화시키고 싶은 그린대로의 음악존 "듣는 대로"
Q. 현재 최강(?)이라고 느껴지는 그린대로 운영팀이 끝까지 갔으면 하는 소망을 저는 가지고 있는데요. 공공기관 특성상 발령이 잦은 편이잖아요. 혹 내가 더 이상 그린대로를 운영하지 못하더라도 ‘이것만은 지켜졌으면 좋겠다.’하는 것이 있을까요?
보람 추상적이지만 그린즈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초점을 아이들한테 두는 것. 어쨌든 애들한테 관심이 있어야 뭔가를 하려고 시도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여기에 누가 오는지 관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공간과 아이들한테 계속 애정을 가지고 뭐라도 시도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가 오시든 그린대로는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송이 저도 하나 더 하자면, 아이들이 생각보다 자주 오는데 ,공간에 1년, 2년 시간이 쌓일수록 변화가 없으면 아이들이 흥미를 잃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코너별로 조금씩 계속해서 변화를 주는데 이게 손은 굉장히 많이 가는데, 겉에서 볼 때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아요. 꽤 귀찮은 일이죠. 이런 일을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것 그런 게 되게 중요할 것 같아요.
책, 게임, 재료 구매 같은 것들 계속하다 보면 의무적으로 하기 십상이거든요. 그런데 뭐 하나를 사더라도 아이들한테 요즘 뭐가 관심이 있는지 더 물어보고, 어떤 공간을 좀 더 쓰게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면 달라지는 거니까. 그런 소소한 변화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