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9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
LUCY - 낙화 함께 들으며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내가 풋살을 사랑하는 이유를 늘어놓자면 끝이 없지만. 그리고 그것이 곧 풋살이 가진 장점이 되겠지만 풋살에는 불문율처럼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부상이다. '한 골을 넣기'(다섯 글자로 표현하기는 참 쉽다.) 위해서는 온몸을 사용해서 공의 움직임을 따라 자세를 바꿔야 하고 동그란 공이 언제 어디서 날아와 신체 어느 부위를 가격할지 모른다. 또 승부욕을 자극하는 운동인 만큼 사람과 사람 간의 충돌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지라 팀원 모두가 한 번씩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다닌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는 워낙 평소에도 다치는 것을 싫어하고 몸싸움은 더더욱 기피하기에 부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느 겨울, 12월이었다. 우리 팀을 포함하여 총 4팀이 참석했던 그 경기에는 참석 전부터 코치님이 "배울 것이 많은 팀이니 즐겁게 다치지 말고 경기하고 오면 좋겠다."고 말하셨다. 이 말을 해석하면 우리와 실력 차이가 깨나 날 수 있으니, 이기는 것보다는 즐기다 오라는 말과 같았다. 꽤 추운 날씨였지만 여느 때처럼 구장에 도착해 꺄르르 농담을 주고 받으며 경기를 준비했다. 돌아보면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팀이 지향하는 바는 승리보다는 안전이었다.(물론 조금씩 승리를 향해가고 있기도 하나..) 늘 우리는 경기 전 ‘다치지 말고 즐기자’라는 다짐을 서로에게 불어 넣는다. 그 날도 역시 그렇게 서로를 다독였다.
첫 경기 골레이로(풋살에서는 골대를 지키는 골키퍼를 골레이로라고 한다.)로 경기에 출전한 나는 한 골을 막는 것이 한 골을 넣는 것과도 같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골문 앞을 지켰다. 시작한 지 몇분 쯤 지났을까, 상대팀의 공격수가 가까운 거리에서 올려찬 슛이 새끼 손가락과 골피커 장갑을 꺾으며 골대에 들어갔다. 공을 주워 우리팀한테 토스를 해줘야 하는데 손이 이상했다. 정확히는 손가락이 이상했다. 떨어진 공을 줍지도 못하는 상태로 연이어 2골을 먹히면서도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손이 왜 안움직이는 거지?'
필드에서의 나는 꽤 미련했고, 그렇게 경기 시작 30분도 채 되지 않아 교체 멤버로 벤치를 지키게 되었다. 다른 클래스 지도가 끝나고 오신 코치님은 현장을 보고 '아수라장'이라고 표현하였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이유 없이 아드레날린이 돋는 날. 그 날은 12월 초였지만 이상하게 따뜻했고, 난생 처음 해본 촬영은 즐거웠으며 별 거 아닌 농담들로 팀원들은 자주 웃었다. 그런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 경기만에 속절없이 부러져버린 손가락과 처참한 경기 결과. 예정되어 있었던 골절 엔딩과 반깁스행. 나는 당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운동과 활동을 금지당했고 여러 일들로 힘들었던 나를 치유하기 위해 빡빡하게 계획해둔 12월의 일정들 또한 불투명해졌다.
23년의 겨울이 유독 아렸던 이유는 다시 생각해 봐도 이날 얻었던 부상도 한 몫했던 것 같다. 나는 또 내가 선택한 일들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일까? 그 때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어떤 부정적인 말 뒤에도 저 말을 갖다 붙이면 문맥은 반전된다. 회사를 그만두기를 결심했을 때에도,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에도, 사소한 일로 마음에 생채기가 날 때에도 나는 혼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되뇌이곤 했다. 12월의 나에게는 저 말을 사용할 일이 자주 있었다. 입밖으로 뱉어져 세상에 나오는 말은 실체가 있어서 힘을 가진다. 그래서였을까? 정말 마법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먹고 잘 움직이며 약 한 달 여만에 손가락을 빠르게 회복했고 팀원들은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손가락이 부러진 이후로 내가 얻은 습관이 하나 있다면, 바로 풋살할 때 주먹을 쥐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누구보다 씩씩한 마음과는 상반되게 나는 그날 이후 골문 앞에 잘 서지 못한다. 손가락은 원래 약한 부위라 한 번 골절이 되면 재골절이 쉽게 발생하는 부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공이 무섭다. 이 두려움은 앞으로의 훈련을 통해 차차 회복하는 것으로. 손가락이 골절되었음에도 여전히 풋살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참 힘들었던 2023년의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본 운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작은 행운이 곳곳에 숨어있는 해여서
그런 행운들로 인하여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만족감이 더 높아집니다.
호기심이 왕성해지고, 자신만의 개성을 가꾸며,
기존의 주변 환경을 탈피하여 새로운 환경을
추구하게 되는 영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척박했던 겨울과 흐드러지게 핀 꽃을 볼 여유 따위 없었던 봄, 지겹게도 더웠던 여름의 반환점을 돈 이 시점에 다시 풋살의 장점을 되뇌인다. 몸과 마음의 건강. 풋살은 함께하는 운동. 누구보다 나약하다고 믿었던 내 몸과 마음은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더 단단하고 건강해지고 있다.
p.s 기다려 준 사람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