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만남

너의 이름은 용이

by 샛별



이 글은 16년을 살다가 떠난 개의 이야기입니다.
별이 된 아이.
벌써 4년이 다 되어가네요.
별 같은 아이와의 행복했던 시간은 순간순간 떠올라 저를 슬프게 하곤 했습니다.
꽤 진하게 펫로스를 경험했지요.
하지만 쓰는 일이 갖는 치유의 힘을 통해 이제 그 시간들을 곱게 접어 마음 한편에 좋은 추억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기억들


살아서 꼬물꼬물 한 예쁜 개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행복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웃음 지으며 라이킷을 누르게 된다. 이야기 속 강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사랑스러움에 흠뻑 젖어들고 만다.

노년의 개에 대한 글을 읽으면 지난 시간이 오버랩되면서 어느새 나는 그 개의 주인이 되어있다.

아픈 그 마음을 함께하며 또 라이킷을 누른다.



누군가의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행복은 외부의 상태가 아니라 내면의 상태라고.
오랫동안 나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본다.


유년의 행복은 기억의 저편에 있어 강하지만 길게 기억되어 있지 않다.

긴 시간 행복했던 기억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던 때였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아이를 보살피고..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느꼈던 모든 것들은 세상 무엇보다도 나를 행복하게 했고, 내가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좋았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게 긴 행복을 전해주던 또 다른 시간은 무한한 신뢰를 내게 전해 주던 개와의 만남이었다.

어린 나에게 '주는 사랑'을 일깨워 준 시간으로부터, 섬세하고 예민하던 젊은 날의 내가 점차 어른이 되어가며 딱딱해져서 굳어가던 때에 나를 덜 딱딱해지고 말랑말랑해지게 해 준 반려견과의 만남이 그랬다.

어른이 되어 처음 다시 개를 키우게 되었을 때는, 유년의 내가 그러했듯이 아이들이 엄마기 일을 하는 긴 시간 동안 그 허허로움을 반려견을 통해 채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실제로 개를 키우며 아이들보다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았다.

개를 키우며 유년의 시간을 반추하게 되었고, 내 어린 시절의 시간들을 기억해내어 사랑하게 되었으며, 사람들 속에서 힘들 때 속 마음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늘 함께 하는 친구를 얻게 된 것이다.


용이가 없이 내가 그 시간을 지내왔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을 케어하며 일을 할 때 다가오는 압박감들이 누적되어 쌓여가던 시간을 나는 어떻게 챙겨갔을까?

혼자 있는 아이의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아이들이 자라나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던 시간, 외로워진 마음을 추스르는데 녀석과의 긴 산책의 시간들이 없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군가 나를 백 프로 믿어주는 존재, 그저 사랑만이 함께하는 말없는 존재와 함께 걷고 생각하는 시간들은 나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바쁘게 사느라 삶의 한 복판에서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늘 그러하듯 돌아보면 우리가 찾던 보석 같은 순간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 있었음은 왜 꼭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되는지...



나는 그의 마스터였다.

아이들이 그의 마스터이길 바라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녀석은 아이들을 가장 사랑하는 동무들 또는 형들로서만 대접하고 오로지 나를 이 세상 하나뿐인 마스터로 받아주었다.

그의 영원한 마스터인 나에게 있어 용이는 종이 다른 또 하나의 나의 아이와 같았다.


왜 죽은 개의 이야기를 쓰는가?

누군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눈 내리던 추운 겨울날 내 곁을 떠난 아이를 잃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나를 위로한다고.

그 시간들을 진정 사랑했었다고.

또한 이미 반려견을 보낸 이들과, 앞으로 떠나보내고 펫로스의 슬픈 시간을 보낼 이들과 함께 위로를 나누고 싶어서라고.. 긴 시간 아플 수도 있는 거라고.


상실의 시간들을 위로하는 마음은
아무리 길어져도 나무람 없이 그저 등 토닥이고 싶다.
맘껏 손잡고 함께 울어주고 싶다.







아이의 동물 친구들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를 한 마리를 사 왔다. 작은 박스에 창문을 내고 급조한 박스집에서 병아리는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다.

이름은 '아리'.

어릴 적 밖에서 닭을 키운 적은 있지만 아파트 안에서 병아리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박스 집안에서 목을 뾰족하게 내밀고 삐약 삐약 우는 녀석. 박스 안이 갑갑할까 봐 아이가 가끔씩 병아리를 거실에 풀어 놓아두면 아리는 종종걸음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다.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아리를 관찰하던 아이가 병아리도 기지개를 켠다고 일러준다. 정말 한쪽 방향의 날개와 다리를 함께 펴서 기지개를 켠다. 신기하다.

누가 머리가 나쁜 사람을 닭대가리라고 했던가. 아리는 제법 사람도 잘 따라서 이리 오라고 하면 내게 종종걸음으로 와서 무릎을 파고들기도 했다. 그것을 본 친구가 " 자기는 동물이랑 교감을 잘하는 가봐" 하고 놀란다.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어 첫 출근을 하던 날. 부산스럽게 준비를 하는 내 발길을 따라다니던 아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발길에 차여 다쳐 목을 잘 가누지 못하는 아리를( 아이는 울고, 출근은 해야 하고) 어수선한 가운데 집에 뉘어두고 첫 출근을 했다. 퇴근해서 허겁지겁 돌아오니 누워있는 아리를 앞에 두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동물병원에 문의를 해보았지만 병아리를 치료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하루를 더 보내고 녀석은 하늘나라로 갔다. 아이와 함께 눈물 흘리며 아리를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에 곱게 묻어 주었다.

아리가 늦둥이 막내의 첫 번째 동물 친구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어린이 날이 돌아왔다.

시장 한편에 애완동물을 팔고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발걸음이 멈춘 아들 녀석이 넋을 잃고 동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이 토끼를 사주세요. 아리 대신 잘 키워 보고 싶어요"

밖에서 일하는 엄마를 기다리며 아직도 낯선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아들이 동물을 기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와 닿아서 또 거절하지 못했다.

아들의 간청에 못 이겨서 흰 암컷, 검정 수컷 한 쌍의 미니토끼를 철망에 넣어 사들고 집으로 왔다.

먹이도 잘 먹고 잘 자라지만 토끼는 병아리와 달리 사람과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냄새도 많이 나고 관리가 쉽지 않아서 결국은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으로 녀석들을 보내기로 했다. 시골로 가는 길, 시무룩한 아들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산 아래에 있는 아버님 댁 닭장 안에서 녀석들은 새 생활을 시작했다. 좁은 철망 안에서 자라던 녀석들은 넓은 땅 위에서 활기가 넘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흘러 시골에 내려가니 토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산으로 탈출하여 야생으로 돌아가 버렸다. 토끼는 아들의 두 번째 동물 친구였다.



강아지와 가족이 되었어요



말티즈, 아기 용이



일터가 멀다 보니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이모가 강아지 한 마리를 사두었다고 가지러 오라는 연락을 했다.

휴일에 아이들을 데리고 이모집에 가니 말티즈 한 마리가 와이셔츠 통 안에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서너 시간을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오는 동안 녀석은 혀를 길게 내밀고 몹시 힘들어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녀석은 그 이후 차만 타면 심한 멀미를 하는 개가 되었다.

녀석은 시골에 사시는 어른의 딸네 개였다. 오랫동안 아기가 없던 부부는 개를 너무도 잘 키워서 용이의 부모 개들은 세 번이나 새끼를 낳아 길렀단다. 그러나 어느 날 부부가 힘들게 아기를 얻게 되어 개들을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둔 터였다. 시골 어르신은 개를 밖에다 두었다가 딸이 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씻겨서 방안에 두었다.

개 공장이 아니라 세 번의 새끼를 낳아 기른 경험이 있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나고, 삼 개월을 엄마 곁에서 젖을 먹으며 잘 자라 서였을까, 녀석은 사람을 좋아할 뿐 아니라 다른 개들과도 잘 지내는 좋은 심성을 지닌 강아지였다. 처음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윗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를 바라보다가 엄마의 젖가슴이 그리웠던가 내게 성큼 뛰어와 가슴에 얼굴을 묻던 녀석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이야기하기 부끄럽지만.. 나의 가슴이 엄마랑 닮았나 보다).

응석받이 녀석은 가끔 나의 손가락을 엄마젖 빨듯이 빨고는 했다.

그 모습이 늦도록 엄마 가슴을 파고들던 막둥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막둥이의 강아지가!



강아지와의 숨바꼭질


땅 위에서 살아 본 경험이 있던 개는 흙의 냄새를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나 보다. 안고 처음 공원에 데리고 가던 날, 공원이 가까운 6차선 도로 앞길에서 갑자기 뛰어내려 우리를 얼마나 놀라게 했던지. 줄을 묶어도 천방지축 뛰고 싶어 하는 꼬맹이를 일주일에 한 번씩 넓은 공원에서 맘껏 긴 시간을 놀게 해 주었다.


풀밭에 함께 뛰어노는 시간이면 노루처럼 날듯이 뛰어다니던 녀석을 두고 어느 날 공원 안에 장식된 큰 바위 뒤로 우리 모두 숨어버렸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놀던 녀석은 잠시 후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너무 놀라서 두리번거리며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지나 울며 쩔쩔매는 녀석이 안쓰러워 나타난 우리를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이라니.

아주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녀석은 꼭 우리를 일정 거리에서 확인하고 놀기 시작했다.

조심성이 많은 강아지였다.



강아지도 점차 철이 들더라


아주 오랜만에 다시 개를 키우는 일이, 더구나 작은 아파트에서 같이 사는 일이 처음부터 적응이 된 것은 아니었다. 어미와 긴 시간을 같이 살던 녀석은 꼭 우리들 곁에서 같이 잠들고 싶어 했다. 따로 자기의 집을 두고도 밤이면 슬그머니 이불 위로 머리를 들이밀곤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기겁을 하는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이불 위에 변을 본 일이 생기고서 였다. 바쁜 와중에도 이불을 빨아야 하는 일이 생기자 배변훈련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 아파트의 화장실은 턱이 꽤 높아서 녀석이 드나들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한 구석에 배변패드를 깔아주고 자주 칭찬을 해주면서 배변 문제가 해결되고 녀석과의 생활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눈치껏 녀석은 이불 한 귀퉁이에 머리를 디밀고 아이들과 한 팀이 되어갔다.

어느새 나도 편안하게 녀석을 바라보게 되었다.

친구네도 비슷한 시기에 강아지 샾에서 개를 데려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건넜단다. 병원에서 이야기하기로는 아이들과 너무 놀아서 그게 스트레스가 되었을 거라고 했다는데, 녀석은 모두가 가고 나면 조용한 아파트 위층에 있는 집에서 푹 자고 이른 시간에 돌아오는 막내를 기다리며 무럭무럭 자라 서서히 한 식구가 되어갔다.

유치가 빠지고 새로 영구치가 날 때는 벽지를 뜯어 놓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 있기 싫다고 출근길의 나를 향해 짖기도 하는 때가 있기는 했지만 말썽이 별로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첫 접종을 위해 데리고 간 병원에서는 아이가 크지 않아야 예쁘다며 하루에 아주 조금씩만 사료를 주라고 했지만 우리는 맘껏 먹게 해 주었고 덕분에 좀 크기는 하지만 건강하게 자라서 그는 16년을 우리와 함께 가족으로 살았다.

그는 그렇게 우리 집 세 번째 아이, 용이가 되었다.



그에게서 나는 많은 선물을 받았다.

순수하고 끝없는 사랑을, 대가 없는 위로를 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더없이 소중한 위로를...


다정한 친구와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을 지닌 너.

나는 아직도 네가 그립다.



Main Photo : by Mpho Mojapelo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잃어버린 나의 작은 새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