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의 작은 새를 찾아서

개를 키운다는 것은.

by 샛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희미한 기억 너머에 눈부신 빛깔로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산딸기의 붉은 열매, 푸른 다래 넝쿨의 반짝이던 잎새, 사각거리며 흔들리던 옥수숫대를 스쳐가던 바람소리, 나뭇가지 위에 살포시 앉아있던 고추잠자리며 색시 잠자리의 붉은 꼬리의 움직임, 집 앞 흐드러지게 피었던 봉숭아의 붉은빛, 산을 넘던 뽀얀 은하수와 반딧불이의 반짝이던 불빛까지.

아이의 마음은 늘 자연 속으로 열려 있어 보고 듣는 것들은 끝없는 호기심과 사랑으로 채워져 있었다.

언니 오빠들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혼자 놀아야 했던 늦둥이 막내.

나는 늘 비밀스러운 나만의 세계 속에서 이런 것들을 쫓아다녔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사내아이처럼 뛰어놀았어도 집에서는 혼자 뒷방 한구석에 앉아 밥 먹는 것도 잊고 책을 읽곤 했다. 아이들이 보는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언니 오빠들의 교과서나, 너덜너덜 해진 방정환 님의 동화집, 만화책들을 보고 또 보면서 지냈다.

지금도 어렴풋한 기억 속 한 장면.

조금은 엉뚱한 면이 있던 나는 어느 책의 한 귀퉁이에서 읽은 메를 캐는 장면이 꽤나 근사했던가 보다. 메꽃이 어떤 것 인지도 모르면서 꼬챙이를 들고 메를 캐러 들판으로 나가서 여러 가지 흙 묻은 뿌리들을 캐서 맛을 보기도 했다.

그 소설이 무엇인가를 잊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불현듯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어린 내가 읽은 것은 "창랑 전기' 유진오 작가의 글이다.




사랑의 기억은 오래 남는다.



유년의 많은 기억들이 희미해져서 그 조각들만이 남았어도

키우던 개와 함께한 시간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다.


집에 돌아오면 늘 혼자였던 꼬마에게 새 친구가 생겼다.

엄마가 어느 날 20여 일 만에 엄마를 잃은 포인터 강아지를 외갓집에서 데려온 것이다.

꼬물꼬물 작은 강아지.

살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하며 데려온 강아지를 방 안에서 보살폈다. 시골에서 방안에 개를 키우지 않던 시절이었다.

이십여 일을 아직 젖도 못 뗀 녀석을 위해 흰 죽을 만들어 강아지에게 먹였다. 살겠다고 녀석은 그 죽을 넙죽넙죽 받아먹었고, 다행히 잘 자랐다. 좋은 품종 이어서인지 스스로 자리를 찾아서 똥오줌을 가렸다. 똑똑한 강아지였다. 모두들 일터로 학교로 가고 나면 녀석을 케어할 사람이 나뿐이어서 이른 시간 학교에서 돌아오면 녀석을 먹이고, 변을 치우고 안아주는 모든 일은 막내인 나의 몫이었다. 여느 막내들처럼 정말로 동생이 갖고 싶었던 나는 정성을 다하여 녀석을 돌보았다.

몇 달 만에 녀석은 금세 자라서 멋지고 늠름한 개가 되었다. 둘이 함께 들로 산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녀석의 이름은 해피였다.

행복한~~~~

형용사로 이름 붙여진 강아지.

둘 사이에는 아무도 끼어들 수 없는 끈끈한 사랑이 싹텄다. 해피는 매일 아침 등굣길 집 근처 다리까지 배웅을 나왔지만 그 다리를 건너는 법이 없었다. 하굣길이면 다리 옆 콩나물 공장 근처의 풀숲 속에서 가슴 부분이 하얀 검은색 포인터가 얌전히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모든 요일을 아는 것처럼, 늦게 끝나건 일찍 끝나건 녀석은 나의 하교 시간에 늦는 법이 없었다. 함께 산을 오르내리고, 풀밭을 뛰어다니고 물가에서 놀았다.

당시에는 학교에서 옥수수가루가 섞인 빵을 급식으로 주었다. 옥수수나 감자, 산딸기, 다래 등 자연에서 얻는 것이 아닌 간식이 참으로 귀하던 때였다. 나는 그 빵을 절대로 혼자 먹지 않고 늘 녀석과 반을 나누어 먹었다. 어쩌다 아주 가끔씩 생기는 과자며 사탕도, 고추장으로 비빈 밥도 녀석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녀석은 나의 친구이자 동생이 되었다.

제법 심부름도 잘하던 명민한 해피는 2년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당시에 흔하던 쥐약이 든 음식을 먹은 것이었다.

처음 만난 죽음이었다. 죽어가는 녀석을 바라보며 엉엉 울었다.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녀석은 숨을 거두었다.

둘이 놀던 산에 녀석을 묻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평상시처럼 손에 빵을 들고 그곳에 올라가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그렇게 큰 슬픔이 나의 작은 가슴속에 가득가득 채워졌다.



잊힐 것 같지 않던 슬픔이 가시고 나에게 다시 따뜻한 강아지 친구가 생긴 것은 그로부터 2년쯤 뒤 중학생이 된 뒤였다. 언니가 발발이 한 마리를 입양했다. 조금 새침한 강아지였지만 나에게는 개와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나 보다. 녀석도 역시 나의 개가 되었다.

식구 중 누구도 나를 혼내지 못했다. 녀석이 몹시 짖어대기 때문에. 그것이 재미있어서 식구들은 일부러 나를 혼내는 모습을 보여서 녀석이 애타 하는 모습을 보며 웃기도 했다. 녀석의 이름은 쎈이었다.

더 이상 나는 아이가 아니라 사춘기의 소녀였다. 녀석을 많이 사랑했지만 해피만큼 놀아주지는 못했다. 녀석과 놀기보다는 혼자 책을 보거나 다른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더구나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하교시간이 점점 늦어져 밤이 되어야 돌아오게 되었다. 녀석은 혼자 나를 늘 기다리며 나이가 들어 서서히 노년의 시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쎈은 내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뒤 이 년쯤 지나 여덟 살쯤 되었을 때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기는 했지만 실체를 보지 못해서였을까 그렇게 그렇게 그를 잊었다.

내가 떠났을 때 그 아이가 얼마나 애타는 시간을 보냈는지 젊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마도 며칠쯤 밥도 먹지 않고 나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은 나이 들어 16년을 방 안에서 아주 가까이 개를 키워 보고서야 개가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지, 그의 긴 기다림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개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마음껏 좋아한다는 것.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는 사치의 감정이었을까.

그렇다면 사는 동안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삶, 동물과 자연을 사랑하는 것.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 바쁜 시간 중에도 들에 핀 꽃을 바라보거나 숲을 거닐었다.

한 번은 학교 안 온실 곁 아무도 잘 들르지 않은 곳에 피는 나만의 복숭아꽃 나무가 있어 매년 봄이면 그 꽃을 보러 갔다. 봉우리가 열리기 전부터 만개하는 순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어느 날 그곳에서 존경하던 교수님과 우연히 만났다. 선생님도 그 꽃나무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이 드신 그 선생님도 나도 같은 마음으로 그 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던 것이다.






다시 개를 키우게 된 것은 아들 때문이었다.

이웃 간에 격의 없이 드나들며 서로의 아이들을 케어해주던 소도시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양쪽 집 아이들이 서로의 집에서 함께 자랐다. 그 엄마도 나도, 오는 아이들을 자기 아이들처럼 돌보아주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더 큰 도시로 이사를 왔을 때 문을 꼭꼭 닫고 단절된 듯한 환경을 몹시 힘들어했다. 나도 잠시의 휴지기를 거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큰 아이는 중학생이라, 늦둥이 막내는 혼자서 그 외로움을 견디어야만 했다. 그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로 강아지를 키우게 된 것이다.

다시 개를 키우게 되었을 때 까지도 나는 어린 시절의 감정을 잊고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데 드는 힘도 늘 모자라서 그런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아이의 개를 키운다고 생각했다.



샘에서 물을 길어 본 이는 안다. 가물어 물이 귀한 때에도 바가지를 들고 조금 기다리면 물은 어느새 고여있곤 한다. 그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사랑은 샘물 같은 것이었나 보다.

어린 시절 내가 지녔던 무한한 사랑의 마음이, 감동을 주고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감정들이 아득한 세월 너머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흔적들은 천천히 다시금 살아나 나를 채우기 시작했다.

녀석은 나의 산책길 친구가 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사랑스러웠다.

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채워주었다.

그 후 점점 아이들이 자라나 내 곁을 떠나가고 여러 가지 어려운 시간이 다가왔을 때, 몹시 힘이 들어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 녀석의 존재가 내게 큰 위로가 되고 있었다.

어쩌면 어린 시절 혼자의 시간을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내 곁에 사랑하던 존재들이 함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혼자 있는 것이 좋았어도 누군가 내 외로움을 무한정 들어주는 그러한 존재가 있었기에 그 혼자의 시간을 더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혼자의 시간을 좋아하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개를 키우고 사랑하는 것은 상처 받지 않는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

그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

외로운 시간이면 그냥 곁에 있어주고, 그저 위로할 뿐이다.

원하는 것은 가장 소박하고 늘 어린아이처럼 작은 일에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를 기쁘게 한다.

늘 내편인 존재가 곁에 있음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가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나가야 한다는 일이 슬프지만.


개와의 진정한 교감을 경험해 본 나에게 있어서

다시 개를 키우는 일은

잃었던 마음속 유년의 작은 새를 다시 일깨우는

사랑의 샘을 찾아 맑은 샘물을 긷는 것과 같았다.

내 맑은 마음이 잠들어있던 그 샘은 마르지 않고 낙엽 속에 묻혀있던 샘물 같아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마음은 내 삶 속 깊숙한 곳에 곱게 살아 있었음을...


나는 내 사랑하던 개를 보내고 알게 되었다.




Main Photo : Photo by __ drz __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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