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 그대로 사랑합니다.

당신을 나의 주인으로 할래요

by 샛별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말을 아시나요?

플라스틱 바가지가 나오기 전, 박으로 바가지를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뒤웅박이란 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 가까이에 주먹만 한 구멍을 뚫고 속을 파내어 만든 바가지를 말한다. 뒤웅박에 부잣집에서는 쌀을 담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았기 때문에, 여자가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느냐, 아니면 가난한 집으로 가는 가에 따라 그 여자의 팔자가 결정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여행 중 오클랜드에 들른 어느 날 길에서 홈리스와 강아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주인은 허술한 옷차림에 가진 거라고는 없이 아주 낡은 차에서 사는 사람이었다.

같이 길을 걷던 지인은 혀를 끌끌 차며 나라에서 집을 준다고 해도 삶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렇게 사는 것이 좋아서 스스로 홈리스로 사는 것이라 했다.

개 팔자 뒤웅박 팔자로구나!

저런 주인을 만나서 저 개는 저렇게 길에서 사는구나.

우리 집 개를 떠올리며 애처롭게 그 개를 바라보며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참을 그 개와 주인을 눈여겨보니 비록 길에서의 삶이지만 개는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다.

개 주인 또한 사랑스러운 눈길로 자기의 개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개는 주인이 어떤 사람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비록 홈리스여도 그는 진정 자신의 개를 사랑하고 있고, 그 개 또한 그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 홈리스가 그 개의 진정한 주인인 것을..






개의 진정한 주인으로 간택받았어요.


용이를 처음 데려 오던 날이었다.

용이는 다른 두 마리의 형제자매 강아지와 엄마 아빠 개, 다섯이 3개월여를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 둘 다른 강아지들이 떠났을 것이고, 녀석이 마지막으로 그 부모의 곁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와이셔츠 상자에 담겨 낯선 곳으로 와서 어리둥절해 있던 녀석을 만났다. 그날 다시 차를 타고 먼길을 떠나야 했던 녀석. 차의 바닥에 앉아 있기도 하고 나에게 안겼다가 두 형아에게 안겼다가 그렇게 네댓 시간을 달려온 길은 얼마나 낯설고 힘들었을까! 오는 내내 혀를 쭉 내밀고 헥헥 대서 아이들은 녀석을 행맨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어린 강아지를 차를 태울 때는 소주를 한 숟갈 먹여서 잠에 떨어지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후에 그렇게라도 했더라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냥 긴 시간을 차를 탄 것은 강아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심한 개 멀미가 그 후유증으로 남았기 때문이었다.


용이가 우리 집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난 첫 번째 추석에 우리는 용이를 태우고 시골로 떠났다.

시내를 벗어나 미처 톨게이트에 진입도 하기 전부터 심한 멀미가 시작되었다.

거품을 물고 누런 액체를 뱉는 녀석을 데리고 가느라 추석 귀향길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우리는 사이사이 휴게소에 들러야 했고, 다시 국도를 택해서 자주 녀석을 돌보아 가며 이동해야만 했다.

가는 내내 그 뒤치다꺼리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골집에 도착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음식을 만드느라 쉴 새 없이 일하는 나의 곁에서 내내 녀석은 내 주변만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도 녀석은 내 곁에 누워서야 잠이 들었다.

추석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또한 엄청 막혔고, 녀석의 멀미로 힘든 전쟁을 치르며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녀석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를 자신의 마스터로 받아들였다.

몸의 덩치로 본다면 더 큰 남편이나 큰 아들도 아니요, 가장 많은 시간을 자신과 시간을 보내는 막둥이가 아닌 키 작은 나에게 최고의 지위를 준 것이다.

트로이 전쟁을 위해 율리시스가 이타카를 떠난 뒤 10여 년을 힘들게 고생하며 그를 기다린 충성스러운 개 아르고스의 이야기가 그렇고(거지꼴로 돌아온 율리시스를 알아본 것은 그 개뿐이었다고 한다), 더 좋은 집에 맡겨졌어도 그곳을 탈출해서 결국은 가여운 주인 네로와 함께 천장의 벽화를 바라보며 얼어 죽은 어린 시절 동화 '플란다스의 개' 속의 파트라슈가 그렇고, 아주 먼길을 달려 고향집을 찾아온 '돌아온 백구'의 이야기 속 진돗개가 그렇듯 개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대한 깨어지지 않는 믿음을 가진다.

그 짧은 며칠 간의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녀석은 나의 보살핌에 대한 사랑의 표시로서 최고의 신뢰를 내게 보여주며 나를 그의 마스터로 선택해 준 것이었다.



좋은 사람을 잊지 않는 마음이 있더라.


멀미 때문에 함께 여행을 하기가 너무 힘이 들어서 다음 명절에는 지인의 집에 용이를 맡기고 시골로 떠났다.

지인의 집까지는 한 시간여의 길이 었지만 그마저도 참 힘든 시간이었다. 이전에 개를 키운 적이 있다던 지인은 잘 돌봐 주겠노라고 걱정 없이 다녀오시라고 나를 안심시켰고, 그렇게 맡기고 떠난 집에서 녀석은 이틀을 잘 보냈단다. 용이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 있는 내내 그 누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던 녀석은 그 이후 그 누나가 우리 집에 오면 그렇게 반길 수가 없었다.

심지어 10년 정도가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도 녀석은 누나를 알고 반겨주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좋은 사람은 잘 알아보고 자신을 도와준 인연은 마음에 꼭 간직하는 모양이다.



멀미하는 개와 산다는 건


멀미하는 개와 사는 것은 함께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떠나는 일을 아주 어렵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그나마 지인이 근처에 살 때는 그곳에 맡기기도 했지만 더 먼 곳으로 이사한 후에는 용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명절이 다가오거나 휴가철이 오면 늘 걱정이었다.

마침 그때 애견호텔이 생겨서 한 번은 그곳에 맡겨두고 명절에 다녀오니 녀석은 집을 떠난 3일 정도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우리만 기다렸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명절은 피할 수 없는 일. 명절이 다가오는 것은 개를 맡겨야 하는 고통이 먼저 생각나는 시간이 되었다.

다른 것은 아무런 말썽이 없지만 혼자 두고 떠날 수는 없는 노릇.

그 이후에는 아이들 중 하나가 명절에는 집에 남아 개와 함께 있고 시골에서 명절에 해야 할 일이 많은 남편은 그곳에 있고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방법으로 우리는 16년이란 시간을 녀석과 함께 살았다.



소박한 행복을 얻고 싶다면


"좋아하는 동물들을 차례대로 3가지만 생각해봐"

이십 대의 우리들에게 유행하던 물음 중 하나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첫 번째 동물은 자기 자신을, 두 번째 동물은 자기가 되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세 번째 동물은 자기가 만나고 싶은 이상형이었던가? 아무튼...


내 첫 번째 동물은 개였다.

왜냐고 묻는 친구에게 개는 절대로 변하지 않아서 좋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답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비록 빨리 사람과 가까워지지는 못하지만 사람 사이의 믿음이 중요하고 한번 그런 관계를 이루면 오래도록 사랑하고픈 마음은 이십 대의 나나 지금의 나나 큰 변화가 없다.

근본적으로 제대로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요소중 하나일 것이다.

때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깊이 믿은 사람이라면, 그의 입장에서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들을 통하여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게 된다.


개의 믿음은 변하는 법이 없다. 변치 않는 신뢰를 유지할 뿐 상처를 주지 않는다.

내가 주는 사랑을 한 번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것, 그리고 함께 산책하는 것뿐 소박하다.

보이지 않는 목줄, 그건 그의 사랑이었네. - 반려견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더 웨이 홈'에서


그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

주인이 낮은 지위의 사람이건 높은 사람이건, 가난하건 부자이건 관계가 없다.

그냥 주인의 모습 그대로 항상 같은 마음으로 같은 크기의 사랑으로 우리를 지켜준다.

그래서 진정한 개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소박한 행복을 얻는 또 하나의 길이었다.


"용이야, 고마워.
아직도 널 생각하면 마음에 따스한 등불 하나가 켜지는 것 같아.
오래오래 널 기억할 거야!"


Main Photo : by dxian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