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자그마한 기적, 그건 사랑이었네
노래하는 우비개
사랑이 있으면 못할 게 없네.
- 용이는 우비개
거의 십 년 전으로 돌아가 세상에 하나뿐인 강아지의 우비 이야기를 쓰려고 인터넷으로 반려견 우비를 찾아보았다. 십 년 새, 이제는 멋쟁이 비옷만이 아니라, 바람막이 , 모자 일체형 우비 등등... 참 예쁘고 많기도 하다. 그사이 반려견 산업이 참 많이도 변했구나.,.
하지만 그 당시 용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비옷을 가진 강아지가 아니었던가. 엄마표 우비.
그때는 그랬다.
옷을 입은 강아지들은 있었지만 비옷을 입은 강아지는 보기 힘든 때였다.
산책길에서 만난 어떤 가족이 반갑게 인사를 보냈다. 당신도 개를 키우시던 분인지라 이미 비옷을 입고 산책을 하던 용이를 눈여겨보셨던 모양이었다. 그분들은 용이를 우비개라고 불렀었단다. 그리고 마주친 산책길에서 용이를 ‘우비개’라며 마치 연예인 보듯이 반가워해 주시는 것이었다. 용이의 이름은 몰랐어도 우비 입은 녀석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고.
사람들끼리는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친근하게 인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와 함께 산책하는 길은 참 다르다. 모르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선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아이들이 용이를 반긴다. 개와 만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용이가 놀라지 않도록 같은 눈높이에서 만지지 않고 다정하게 말을 걸도록 가르쳐주었다(말이 안 통하는 아기들은 미리 피해야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다정하게 손길을 내밀면 용이도 반갑게 꼬리 치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곤 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용이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엄마가 아닌 다른 이가 어쩌다 용이랑 산책을 나가면 아이들이 묻는단다."용이 엄마는 어디 가셨어요? 아줌마는 누구세요? 용이 엄마가 어디 아프시나요?" 용이는 나름 유명인사였다.
그렇게 아이들의 놀이터를 지나 공원에 가면 이젠 어른들의 시간이 된다. 공원 벤치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은 용이의 하얀 털이 예쁘다며 락스를 쓰느냐고 우스운 질문을 하시기도 했다. 집에서도 노인과 자주 접한 녀석은 어르신들께도 의젓하니 곁을 내주어서 나답지 않게 용이와의 산책길에서는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곤 했다(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아직 어르신들은 내게 묻곤 하신다. 개는 어쩌고 혼자유?).
산책길에 나서면 행복했던 성격 좋은 용이는 거의 모든 개들과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물론 그중에 용이는 다정하게 인사했지만 무섭게 달려들어 우리를 놀라게 하던 녀석이 있기는 했다. 그 녀석이 나타나면 우리는 멀리 돌아서 길을 걷곤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강아지들과의 반가운 만남의 장이 펼쳐지곤 했다.
할아버지 홀로 키우는 강아지 ‘민철’이는 용이랑 자꾸 놀고 싶어 해서 할아버지 꾸중을 듣고서야 아쉽게 집으로 돌아가고, 다른 강아지들과 영 어울리기 싫어한다던 행복이도 까탈 쟁이 아장이도 녀석과는 참 좋은 친구로 지냈다. 용이의 친한 여자 친구이었던 짱이는 엄마들끼리도 친구가 되게 다리를 놓아주었고 함께하는 산책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강아지들은 둘이서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공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짱이는 죽어서도 공원 마주 보이는 나무 아래 서로 잠들어 있으니 하늘나라에서도 서로 반갑게 뛰어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좌)친구랑 즐거운 시간, 우) 산책하고 행복한 용이:욕실에서
녀석을 매일 산책을 시키고 싶었어도 어릴 때는 시간이 허락지 않아서 생각만큼 자주 긴 산책을 시키지 못했다.
도심에 있는 아파트를 떠나 시 외곽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야 마음껏 산책을 하게 되었다.
숲이 있는 좋은 환경이라 이른 아침 출근 전에 산책을 시키기도 하고 퇴근 후에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주말이면 꽤 큰 집 뒷산을 녀석과 함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고, 눈이 오는 날이면 발에 뭉쳐진 눈이 붙어서 잘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도록 함께 뛰어놀았다. 눈 내리는 날 발에 화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염화칼슘 조차도 사용하지 않는 한적한 길을 뛰고 놀던 시간은 참 좋았지만 점차 단지가 커진 어느 날 눈 내린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와 씻으려 할 때 몹시 신경질을 부리던 날이 있었더랬다.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참 무지한 엄마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지 않은 도시 외곽의 생활은 개와 함께 살기에는 너무도 좋은 조건이었다.
Nature is calling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표현이라는데 개를 키우며 참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매일의 긴 산책이 필수가 된 것은 나이 들어가면서 집안에서 배변하기를 점점 싫어해서였고, 노화에 따른 것이었던지 그 현상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강해졌다. 그렇게 자연이 용이를 불렀다. 집안에서는 힘들던 배변이 자연 속에서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마침 나도 일을 그만두게 된 터라 매일매일 강아지와 긴 산책을 나갔다. 봄가을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 여름에는 더운 시간을 피해서 이른 아침이나 저녁 늦게, 겨울이면 가장 따뜻한 시간대를 택해 하루에 한 번 이상을 산책길에 나섰다.
개와 함께 걸으며 자연 속을 걷는 일은 개에게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게 좋은 휴식과 건강을 함께 가져다주었다. 둘이서 함께 숲을 헤집고 다니며 철마다 피는 꽃들을 관찰하고 함께 벤치에 앉아 구름을 바라다보기도 하고 바람을 맞으며 새소리를 들었다. 때로는 용이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혼자 건네기도 하고 메모장에 글을 쓰기도 했다. 녀석은 그냥 곁에서 즐겁게 놀고 따뜻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오랜만에 갖는 긴 휴식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둘이어서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세차게 오는 장마 기간은 우리 둘 모두에게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배변을 야외에서 하고 싶은 녀석은 배가 빵빵해지도록 참으며 종일 밖을 내어다 보고 있었고 그런 녀석을 바라보며 어서 날이 잠시라도 개기만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답답할 뿐이었다.
그날도 비 오는 밖을 함께 내다보다가 반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 비옷을 만들자!
비교적 크기가 큰 마트의 비닐봉지를 오려서 강아지 몸에 맞추어 잘라 묶어 입혔다. 지퍼백의 짚 부분을 얼굴에 맞춰 비닐옷에 옷핀을 써서 모자를 만들어 붙이니 아쉬운 대로 그럴듯했다.
빗속을 뚫고 산책을 나갔다. 비가 세차게 오니 사람이 없어서 다행! 부스럭 부스럭 대는 비닐옷 소리와 비닐에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우산을 든 채로 녀석의 우스운 꼴을 보면서 너무도 우스워 키득키득 혼자서 웃으며 아파트 둘레를 산책하고 있었다. 빗속에서 너무도 좋아하는 녀석을 보니 마음은 즐거웠지만 조금은 부끄러운 꼴이 아닌가. 그런데 아뿔싸 안면이 있는 관리소 직원과 마주치고 말았다. 강아지 한번 보고 나 한번 보고, 웃는 아저씨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얼떨결에 고개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길에 부끄러운 것은 나의 몫, 강아지는 산책이 즐겁기만 했었던가.
그날로
구체적으로 비옷을 만들기로 했다. 방수가 되는 비옷을 만들자.
아이가 쓰던 우산천을 잘라 손바느질로 우비를 만들었다( 상당히 조악하다. 하지만... 그 옷을 계기로 나는 중고교 시절 그토록 싫어하던 바느질의 세계에 발을 디밀게 되었고, 바느질의 즐거움을 하나둘 배워갔다는...)
그렇게 비 오는 날에도 엄마표 비옷을 입고 당당하게 산책을 하던 용이.
녀석이 지금 너무 보고 싶다. 그 비옷은 아직도 남아있는데...
- 개에게도 음악적 취향이 있다
어떤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아주 오래전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의 얼굴도, 함께 놀던 기억들도 희미하게만 남아있지만 어릴 적 부르던 동요, 그 시절에 듣던 노래의 기억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그런 노래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던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섬집아기', 그리고 '바위고개'이다. 언니와 오빠들이 부르던 구슬픈 가락이 아름다웠던 노래, 그래서 꼬마였음에도 내가 즐겨 부르던 ‘ 바위고개’. 그 노래들은 지금까지도 나를 흥얼거리게 만들고, 아이들을 키울 때 잠을 재우면서 토닥토닥 아이의 가슴을 두드려주며 부르던 노래였다.
가만히 그 노래를 읊조려 본다. 그 노래 속에 녀석의 얼굴도 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 ‘섬집아기’ 중에서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 ‘바위고개’ 중에서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멜로디온을 배우게 되었다. 그 멜로디온을 빼앗아 연주를 해 보았다. 어릴 적 좋아하던 노래를.
그 모습을 함께 앉아서 보고 있던 용이가 갑자기 웅얼 웅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애달픈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갈 때 녀석의 소리는 점점 커져서 이제 하울링에 가깝다.
우리는 모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함께 웃었다.
얘가 노래를 한다!
그냥 우리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 녀석은 노래를 따라 하지 않는다.
악기도 멜로디온 그리고 하모니카의 소리에만 노래를 부른다.
다른 노래를 연주해 본다.
A, B, C, D........ 노래하지 않는다.
다시 그 노래를 연주하면 웅얼웅얼 다시 녀석의 노래가 시작된다.
녀석이 부르는 노래는 단지 두 곡뿐이다.
섬집아기와 바위고개.
그 레퍼토리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함께 즐겁게 합주를 한다.
우~우~
우리는 녀석을 시인용이 라고 불러주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불러주던 반려견
녀석을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비옷을 만든 나
용이는 세상에 하나뿐인 비옷을 입는 노래하는 우비개가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건 우리 둘 사이의 사랑이 만들어 준 아주 자그마한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