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엄마의 시간을 돌아보며

너를 돌보며 배운 것들

by 샛별





- 동물병원 가던 길


개들에게는 내비게이션 유사한 장치가 머리에 장착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예방 접종을 하던 00 동물 병원을 가는 날 병원 근처에 가까워 오자 뭔가 낌새를 챈 걸까 산책할 때와는 달리 몸을 차도 쪽으로 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이후에 00 동물 병원의 앞 글자 00만 이야기하며 나가자고 해도 꼬리를 내리며 도망을 간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며 병원을 다녀올 때마다 한 가지씩 배우는 것들이 있었다.

멀미를 하는 녀석이라 병원에 데려가는 일이 힘들다 보니 한 가지씩 녀석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관심 있게 보고 배우기 시작했더랬다.

항문낭을 짜고, 귓속 털을 제거해 주고, 발톱을 깎고, 눈가의 털 잘라주기, 발바닥 털을 잘라주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케어해 주는 일등을 하나하나 배우게 되었고 실습의 대상이 되어 한 가지씩 처치를 받을 때마다 간식 선물을 주었다. 물론 살을 집기도 하고, 삐뚤빼뚤하게 자르기도 하고 피를 보기도 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녀석은 느긋하게 케어를 즐기게 되었다. 다음에 받게 될 간식을 기다리며.




- 개의 미용 쇼크


개의 첫 미용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바닥의 털을 자르고 어린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아주 조금만 털을 정리하는 것으로 끝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몇 달 동안 미용을 하지 않은 개의 모습은 마치 까까머리를 어설프게 기른 가출한 소년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새 집으로 이사하던 날 제대로 된 첫 미용을 했다. 이사할 동안 맡길 곳도 확보하고 더불어 미용까지 하려고.


모든 애견인들이 한 번쯤 겪는 일일 것이다.

개를 찾으러 갔더니 우리 용이가 없다. 울타리 안에 있던 몇 마리 개들 중 왠 낯선 개가 나를 보고 어쩔 줄 모르며 울고 달려든다.

응? 얘가 우리 강아지라고?


태어난 지 3일 만에 황달로 아이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산모의 몸으로 매일 병원에 가서 먼발치서 아이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15일이 지나 퇴원하던 날. 병원에서 아이를 안고 나오던 때가 생각이 났다.

얘가 내 아이가 맞나?(보름 정도의 기간 동안 아이는 너무도 많이 자랐다).


강아지의 털이 갖는 힘은 매우 크다.

강아지의 털은 녀석의 자존심이자 삼손의 머리칼과 같은가 보다. 개를 개답게 하는.

집에 돌아온 강아지는 자꾸 구석진 데를 찾고 우울한 모드였다. 옷을 입혀주었더니 그나마 조금 안정을 찾는 눈치였다.

몇 번의 미용을 거치며 녀석의 자존심을 지켜주기로 했다. 예쁜 것보다는 자존심을 지켜주는 쪽으로. 샾에서는 길게 자르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기에(노력이나 시간 대비 수지가 맞지 않았던가) 셀프 미용을 시작했다. 사내인 용이를 어설프게 단발머리 똑순이를 만들기도 하면서.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가위로만은 부족해서 미용기를 사고 인터넷으로 개미용 수업을 듣기도 했다. 처음에는 더위를 덜어주려고 배부분만 깎았지만 점차 시간을 늘려 전체 미용을 하기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촌 개를 만드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단지 엄마를 믿어주어서 긴 시간 어설픈 손길을 꾹 참고 기다려주는 녀석 덕분에 실력은 점차 늘어가고 녀석도 미용 후 주어지는 간식타임을 더 많이 즐기게 되었다. 몇 번의 셀프 미용 후에 아주 가끔 애견 미용실에 다녀오면 용이는 차도남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지만 겉모습만 차도남일 뿐 속은 영 아니어서 며칠간 옷을 입어야만 했다.


차도남 용이와 똑순이 용이

늘 가는 애견샵에 주인의 개( 나는 마담 개로 불렀으니)가 있었다. 자주 탈출을 해서 삐용(빠삐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로, 그곳이 싫지만 삐용이의 환대 덕에 용이는 그곳에서는 그나마 잘 적응을 했다. 어느 날 둘이 울타리를 넘다 인대를 다쳐 수술을 하게 되어 고난의 길로 접어들게 되지만 않았더라면.




- 하울링, 혼자 있기 싫어요.


어릴 때는 아이가 일찍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개는 나이가 들어가며 혼자 있는 것이 싫은 거였다.

어느 날 이웃에 사시는 분이 어느 집 개가 자꾸 슬프게 울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그게 우리 개의 이야기 인지는 잘 몰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출근길 집을 나서서 아파트 아래서 한참을 기다려 보았다. 누군가 슬피 우는 소리가 들려 자세히 들어보니 우리 용이의 목소리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녀석은 외로웠나 보다. 점심시간이면 집으로 돌아와 한 시간 가까이 녀석과 시간을 보내고 서둘러 일터로 갔다.

자주 오시던 친정엄마가 집에 오시는 날들이면 녀석의 하울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문제는 엄마가 개를 싫어하신 다는 것. 둘만 남은 시간 평상시 소파 위를 좋아하던 용이가 소파 위에 올라오는 것을 참으로 싫어하셨지만, 용이는 그런 엄마의 발밑에 슬그머니 다가가 처음엔 발 밑에 앉아있곤 했다. 그러나 홀로 집을 지키시던 엄마도 처음엔 싫어하시더니 점차 거기에 익숙해지셨는지 내치 지를 않으시게 되었고 어느 날부터인가 녀석은 슬그머니 소파 위에 올라가 엄마 곁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종일을 함께 집을 지키던 둘은 나중에는 아주 친해지게 되었고 아들 집에 돌아가시면 엄마는 늘 용이의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다. 외로운 두 노년이 만났으니 무릇 외로움엔 장사가 없는 가보다.


늙는다는 것은 그런 건가 보다. 외로움이 짙어지는 것!




- 내 개가 늙어 가는 것을 바라보며


어느 날부터였을까. 녀석을 불렀을 때 늦게 반응하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눈에는 부옇게 탁한 증상이 생겼다. 그 좋아하는 산책길에서도 어느 지점에서부터 더 가지 않고 돌아오겠다는 의사를 나타내게 되었다. 점차 산책길이 짧아지게 되었다. 날듯이 오르던 소파도 올라가는 일이 힘들어졌다. 계단을 설치해 주었지만 그마저도 오르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는 날이면 고통스러운지 힘들어하는 날이 많아졌다. 더불어 나의 외출도 줄어들고 만나야만 하는 일도 꼭 필요한 것 이외에는 자제하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거의 집에서 용이와 시간을 보냈다. 혼자 있으면 하울링을 하는 용이 때문에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지 않았고, 만나더라도 잠깐 만나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해서 친구들에게 원망도 많이 들었다.


꼭 만나야 하는 이가 있어 샵에 용이를 맡겨두고 꽤 먼 곳을 다녀오던 날. 녀석은 울타리를 넘다 인대가 끊어져서 큰 동물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 큰 동물병원에서 수익을 얻으려면 많은 수술을 해야만 해서였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키우고 싶어서, 혹시 용이 닮은 아이를 남기고 싶어서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았었는데 큰 병원 의사는 중성화를 하지 않으면 노년에 개에게 좋지 않다며 함께 수술하기를 권했다. 아픈 개가 또 다른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 다는데 누가 그걸 마다 하겠는가? 더구나 자식처럼 사랑하는 나의 개를.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수술의 후유증 때문이었던지 용이는 그 후 계속 소변이 새는 증상을 지니게 되어 집안에서는 기저귀를 차고 남은 생을 보내야 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강아지의 기저귀는 남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종이 기저귀는 피부에 트러블을 자주 일으켜서 면으로 된 헤어밴드에 패드를 넣을 주머니를 달아서 그 속에 패드를 넣고 허리춤에는 똑딱단추를 달아 고정시킨 기저귀를 채워 주었다. 그도 저도 힘들어하는 날에는 그냥 흐르는 대로 닦아주며 돌보아 주었다.


노년에 아프지 않은 것, 아프더라도 자신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를 나는 용이를 통해 다시 한번 배웠다. 돌보아 주는 손길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것도.




- 내 사랑하는 개에게 보내는 편지


용아!
너무도 미안하구나.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저 곁에서 간호하다가 끝내는 참지 못하고 병원에 데려갔던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수술하면 괜찮을 거라던 말을 듣고 뛰듯이 좋아하며 병원에 입원을 시켜놓고 나는 며칠 밤을 새우며 지낸 탓에 지친 몸을 쉬었었지. 아마도 그날 수술 준비로 넌 참 괴로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피를 뽑고 아픈 부위에 주삿바늘을 찔러대고 힘들었던가 수술 전에 만났던 네가 눈빛으로 보냈던 말을 보내고 나서야 알 것 같았었다.
” 엄마 힘들어요. 그만하고 싶어요. 그냥 엄마 곁에서 떠나고 싶어요.” 너는 그런 눈빛을 계속 보냈는데 나는 네가 나을 거라는 기대에 쉽게 네 손을 놓고 수술실로 보냈었지. 그리고 이상하게 수술 시간이 길어지던 때 밀려오던 불안감. 그랬었나 봐 네가 나를 불렀었나 보다. 수술실은 2층이었다. 기다리다 왠지 2층으로 가고 싶었지. 2층에 있는 화장실로 가던 때, 수술실에서 나오는 선생님을 보았지. 그때 너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거야.

눈을 감지 못한 채로 떠난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너무도 슬퍼 울며 의사 선생님께 떼쓰듯이 말했었지. 눈을 감지 못했다고. 그분이 말하길 눈을 한번 못 감으면 안 된다고, 정 원하시면 눈에 본드를 발라서 감겨줄 수는 있다고 했지만 그냥 너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지. 네 자리에 누이고 밤새 울며 너를, 네 두 눈을 쓰다듬었지. 그리고 거짓말처럼 너무도 편안한 모습으로 너는 눈을 감았었지.

너를 통하여 사랑하는 이들을 보낼 때 쉽게 보내지 못하는 미련 가득한 마음을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단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못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보는 어리석음 조차도 보내는 이를 사랑해서 인 거라는 것을. 사람들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모두들 다르다는 것을.
나는 너를 욕심내어 힘들게 하지 않고 보내주었어야 했었다는 것을. 너처럼 놓아버려야 할 때를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 마지막 일 년이 지나고


용이와의 마지막 봄은 시부모님의 병환으로 참으로 어수선한 가운데서 지냈다. 자신도 아픈 몸이었지만 힘들어하는 나를 곁에서 늘 지켜주던 녀석. 둘이서 공원 한편에 앉아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며 보낸 일 년이었다. 그 봄이 우리의 마지막 봄이었음을 그때는 몰랐다. 다음 해 공원의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흘리던 눈물. 그 속에 녀석의 얼굴이 있었다. 함께 앉았던 벤치에 홀로 앉아 너를 참 많이도 그리워했었지.. 아직도 함께 지나던 길가 백일홍 무리를 보면 또 그리움이 살아나곤 한다. 백일홍의 꽃말은 그리움이다.



백일홍꽃밭에서
-백일홍 꽃밭에서

어느새 이름만 남고
모습조차 희미해져 가는
그리운 얼굴이
색색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피어나
내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리움
네 꽃말은 그리움
바라보면 떠오르는
행복한 시간들

누군가
또 그리움에
이처럼 많이도
가슴 아팠나 보다



어느 작가님의 사랑하는 개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슬픔을 풀어내는 글을 보며 잊고 있었던 시간들이 다시 살아났다. 함께 눈물 흘리며 글을 읽었다. 충분히 슬퍼하셔도 된다고, 맘껏 눈물 흘리셔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슬픔이 비록 나도 느꼈던 것이었을 지라도 그 크기를 다 헤아릴 수 없어서 그렇게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단지 나도 함께 많은 눈물을 흘렸다. 같이 마음 아파하며.


오늘 동물농장에서 순심이를 보낸 효리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맘껏 사랑하고 맘껏 그리워하는 그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종일을 눈물 바람이다.


나는 왜 이리 눈물이 많은 걸까.

나의 개가 또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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