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를 그리움으로 가슴에 담았다.
헤세의 ‘테신, 스위스의 작은 마을’ 속 헤세가 바람에 쓰러진 복숭아나무를 그리며 쓴 글이 있었다.
특별히 고귀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지만, 오랜 지기이자 친구였던 그의 복숭아나무.
그는 꽃이 피어나면 꽃가지를 꺾어 방을 장식했고, 열매가 열리면 주머니나 바구니, 혹은 모자에 넣어 테라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나무를 그리기도 하고 그 그늘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어느 계절에도 그 나무는 그의 세계 안에 있었다.
어느 날 강풍에 그 나무가 쓰러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로운 나무를 심을 수가 없다. 무척 많은 나무를 심은 그에게 한 그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리하여 그는 결정한다.
그 자리는 빈자리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나 역시 아직도 나의 가슴에 빈자리를 하나 남겨 놓았다.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때때로 찾아와 나를 울고 웃게 하는 그리운 존재를 위한 빈자리를.
한 인간으로서 살아나가기 위하여 내가 입어야 했던 여러 가지의 옷들.
딸로서, 어미로서, 며느리로 아내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 나가기 위해 입어야 했던 여러 겹의 옷들 속에 감추어졌던 여리고 약한 나를 온전히 나로 보아주던 존재. 용이 앞에서의 나는 다른 무엇인가가 될 필요가 없었다. 많은 이들 속에서 어울리기보다는 혼자의 시간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더욱 그러했을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울고 있는 나를, 상처 속의 나를, 기뻐하는 나를 , 일상 속의 나를, 어른이 되어도 감추어져 있던 어린 나를, 힘이 든 나를, 노년의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함께 슬퍼하고 기뻐해 주며 늘 공감해 주던 사랑스러운 존재.
함께하는 소박한 시간들이 주던 그 큰 위로.
많은 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펫로스의 긴 시간을.
바록 작은 반려견의 죽음이지만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며 늘 위로를 전해주던 존재가 사람과 똑같은 경로로 죽음을 겪는 과정을 곁에서 바라보던 시간. 그 시간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슬픈 마음과 그를 잊는 과정에서 겪는 아픔을 공감하는 힘을 얻게 해 주었다. 내 곁을 떠나간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의 죽음에서 배운 것과 마찬가지로.
가끔은 가족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펫로스의 시간이었다. 나 또한 그 시간이 그리 길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용이를 보내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 즈음, ‘섬’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그르니에의 ‘어느 개의 죽음’을 읽었다.
밤의 짙은 어둠 속에서 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주위의 보이지 않는 신들뿐이라고 여겨질 때면, 나지막하게, 이따금은 큰 목소리로 녀석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네가 없으니 중심을 못 잡겠구나.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아. 바로 옆에 깊은 구렁이 파여 있는데 현기증만 난단다. 비교적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네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는 달랐지. 나는 흐르는 물가에서 가지를 당당히 뻗는 나무처럼 안정되어 있었는데......"
-' 어느 개의 죽음' 중에서
그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잔 물결을 일으켰다.
그저 지나친 것이 아니야.
그럴 수도 있는 거야.
마음껏 슬퍼해도 괜찮아.
내가 무엇을 가져서도, 무엇이 필요해서도 아니었지. 그저 나로, 사랑으로 보아주던 친구를 잃은 거니까.
그를 잊으려, 아니 더 잘 기억하려
그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다.
녀석의 이야기를 글로 남긴다.
아직도 아이들과 나는 녀석의 모습을 함께 보며 그리워한다. 동영상속에서, 가족사진들 속에서 우리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아이.
그렇게 펫로스의 긴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그는 우리 가슴에 별로 남았다.
반짝이는 예쁜 별!
“이곳에는 허영심 없이 아름다웠고, 사납지 않게 강했으며,
인간의 악덕은 알지 못했으나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고 있던 한 존재의 유해가 묻혀 있다.
이런 찬사가 인간의 묘비에 적혀 있었다면 무의미한 아첨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에 대한 추억이기에 진정한 찬사가 되는 것이다.
-로드 바이런
책갈피속에 표현한 그리움:물망초와 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