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늦여름 속에서 가을 내음을 느끼며

by 샛별

매앰 매앰 매앰 맴 맴~~~맴


무더운 오후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매년 여름이면 간혹 길을 잘못 찾은 매미가 방충망에 붙어 울고 있는 때가 많았는데, 올해는 첫 매미 울음소리를 숲에서가 아니라 그렇게 들었다. 벌써 8월 하순에 가까워지는데 이렇게 늦게 매미소리를 듣다니.

같이 점심을 먹고 있던 아들도 같이 그 소리를 반가워한다.

긴 장마의 끝이다.


올해는 장마가 너무 길었다. 50일이 넘도록 하늘에 구멍이 난 듯 쏟아부어대곤 하던 장마가 가고 다시 햇빛이 반짝 나는 날을 만나니 더위 조차도 반가울 뿐이다. 눅눅해진 이불들을 내다 널고 바람이 부는 밖을 내어다 보았다. 매미들이 여기저기서 열심히 울고 있다. 생애의 거의 대부분을 땅속에서 살다가 마지막 남은 생, 짧게는 2주 정도에서 한 달가량을 사는 매미에게 이번 여름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우리가 코로나로 힘든 여름을 보냈듯이.

다행히 비가 그치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여름에 새 생명을 잉태해야 할 매미들에게는 일분일초가 아까운 시간일 것이다. 다른 해 보다는 훨씬 그 소리가 약하다. 우는 매미들의 소리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어둠이 내린 저녁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화단가에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 여름이 지나 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는다는 절기인 처서를 지났기 때문인가. 거짓말처럼 제시간에 계절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보니 더위속에서도 부는 바람 속에는 조금의 찬 기운이 서려 있는 듯도 하다. 올해의 첫 매미 소리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2020년은 참 이상하고 힘든 한 해구나.


올해, 절기를 잘 못 느꼈던 것은 긴 장마와 코로나가 한몫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숲에 가지 않은 것이 큰 이유이다.

숲에 가지 않게 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큰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동네는 5분만 걸어가면 숲과 만날 수 있다. 아기자기한 작은 공원이 자리 잡고 있고, 공원에서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우리 동네 '백사실 계곡'이라고 친구가 이름 붙인 숲이 자리 잡고 있다. 노린재나무, 콩배나무, 산수유, 참나무, 후박나무, 생강나무, 산벚나무 등의 나무들이 자라는 숲을 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산책을 다녔다. 어디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어디에 예쁜 야생화가 피는지, 새로운 꽃이 피었는지, 그렇게 숲의 구석구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숲에 있는 소롯길 가의 한편에 자라고 있는 후박나무 아래에 사랑하는 반려견의 재를 묻었다. 늘 함께하던 산책길이었다. 아침이면 짙은 꽃의 향이 내려앉는 후박나무 아래 서서 쉬었고, 거기 서서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바람을 느끼곤 했다. 볕이 따사로운 아늑한 자리였다.


코로나 때문에 잠시 산책을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한 어느 날이었다.

며칠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길은 완전히 다른 길이 되어 있었다. 몇 개의 산소가 있고 산소에서 조금 떨어져 난 작은 길로 이루어져 있던 그 길이다. 언젠가 중년의 남성이 쌓인 가랑잎을 치우고 하염없이 앉아 있던 그 무덤을 바라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던 그 무덤가. 아쉽게도 그 무덤 주위는 초록색의 철망으로 에워 쌓여 있었다. 작고 예쁘던 오솔길은 불도저로 밀어내어 제법 큰길로 바뀌어져 있었다. 새로이 심은 잔디와 철망 안에서 그곳은 미니어처 골프장의 모양새로 보였다. 만일 내가 저 무덤의 주인이라면 얼마나 갑갑할까( 죽은 이가 나와는 다른 이길 바라며)! 숲 속 고즈넉한 자리에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더 행복했을 것만 같은데.. 철망에 갇힌 산소를 바라보며 든 생각이다. 나도 몰래 그렇게 만든 그 누군가를 향해 중얼중얼 육두문자를 날리며 돌아왔다.

"죽은 자를 위하여 어쩌고 저쩌고... "

물론 그렇게 한 사람도 무언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자연 모습 그대로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산책을 접었다.

산책길의 훼손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편안하게 어울리던 그 후박나무는 길 한가운데 외롭게 섬처럼 서 있다. 베어내지 않은 것만으로 휴!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시에서 관리하는 그 숲은 계속해서 그 모습이 바뀌어 간다. 좋은 방향이 아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듬성듬성 베어져 나가고 길은 자꾸만 인위적으로 넓혀져 간다. 숲에는 아이들의 놀이터라며 작은 구조물이 생기고, 작은 굴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고, 인공의 언덕을 만들었다. 이름 붙이기를 '다람쥐 동산' 뭐 이런 것들을 만드느라.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원만 잘 가꾸면 좋으련만 그 손이 닿는 곳은 범위를 넓혀 숲으로 손길을 뻗치고,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점점 숲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 아이들이 그곳을 바라보게 할 수는 없는지. 숲 속에 자꾸만 쌓여가는 인공의 냄새가 서글프다. 이제 아이들은 숲 속에서도 저렇게 놀아야 하는구나 하는 사실이.

플라스틱 예쁜 장난감이 없이도 돌멩이며 꽃잎이며 나뭇가지를 가지고도 사물을 상상하며 놀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난다. 어설프지만 직접 연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새총이며 자치기를 만들던 그 시절에는 주변의 모든 사물이 상상을 통하여 현실로 구현되곤 했다. 자연에 가까이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던 안정감을 잊지 않도록 그러한 시간들이 우리의 아랫세대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 생각이 든다.




숲이 그립다.

눈으로 잘 보이지는 않아도 숲의 나무들은 벌써 조금씩 오는 가을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씩 초록이 옅어지고 감추어졌던 다른 가을빛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올해 가을에는 숲이 조금 낯설지도 모른다. 여름의 얼굴을 보아주지 않았으니.

낙엽이 가득 쌓인 그 길이, 겨울날 잎들이 떨어지고 난 뒤 느껴지던 그 여유로운 모습을 생각해 본다.

다시 산책길로 나서야겠다.

조금씩이라도 자연의 힘으로 치유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 어두워진 마음도 추슬러야지..

모두에게 힘든 이 한해의 고단함이 치유되어 가기를 기원해야지...


한낮의 때 늦은 매미의 절박한 울음소리, 저녁의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계절의 길목에 서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귀뚜라미는 그리움, 쓸쓸함, 가을의 상징이다.

더위속에도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깨닫는다.

어릴 적 부르던 동요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가을밤/ 이 태선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 밤 고요한 밤 잠 안 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Main Photo : Photo by Lukasz Szmigie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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