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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n 22. 2020

인간관계에서 사치를 부리던 순간

- 나에게 위안을 준 마음 나누기

더위는 많이 타지만 찬바람을 싫어하는 나는 에어컨 바람을 아주 싫어하는 편이다. 어지간히 더워도 찬물에 샤워를 하거나 시원한 그늘을 찾거나 그렇게 해서 여름을 나곤 했다.

그러나 나이 탓인지 재작년의 무더위에는 두 손을 모두 들고 말았다. 숲이 가깝고 비교적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 살고 있었어도 한밤중에 베란다에 찬물을 떠놓고 발을 담그고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은 더위를 무식하게 참고 참다가 에어컨을 달고야 말았다. 그것이 작년의 일이다.


에어컨 기사님은 너무나 많은 설치 분량 때문에 점심조차도 드시지 못하고 일을 하신다고 하셨다. 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일하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시원한 냉커피를 드립 해서 드리고도 무엇인가가 모자란 듯하여 집에 있는 백설기를 쪄서 내가 담근 산마늘 장아찌와 함께 대접해 드렸다.

사실 첫 해 지은 농사의 판로를 걱정하며 이웃의 친구와 여러 버전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보고 표준화된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터였다. 배가 고프셔서인지 아저씨는 참 아주 맛나게도 드셨다. 정성을 다해 설치를 마치시고  아저씨는 산마늘 장아찌가 아주 맛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시판을 준비 중이라는 나의 말에 당신이라면 사 먹겠다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용기를 주고 떠나셨다 (사실 나는 요리에 그다지 솜씨가 있는 편이 아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올봄 도시의 집에 왔다가 시골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기사님의 전화를 받았다. 산마늘을 주문하고 싶으시다고. 전화번호를 다시 찾느라 에어컨 판매한 곳으로 까지 연락하여 다시 확인해서 전화를 주셨다고 하신다.

그때는 이미 산마늘은 시즌이 끝나 버려서 우리 농장에서는 팔 산마늘이 없었다.

집에서 먹으려고 장아찌는 올해도 작년처럼 담아 본 것은 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그 장아찌를 사시고 싶단다.

아저씨는 산마늘 장아찌를 잊지 못했다고.

그 말씀을 들으며 너무 감사했다. 잊지 않고 애써 연락을 주셔서.. 내 서툰 솜씨라도 기억해 주셔서..

하지만 팔아 본 경험이 없으니 어떻게 팔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인터넷을 찾고, 가격을 알아보고 했지만 마음은 영 불편하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과연 내 물건의 가치는 얼마일까?

고민 끝에 인터넷상의 가격비교표와 함께 이렇게 팔면 괜찮을 듯하겠네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사실 산마늘은 딱 한 시즌만 나오고 제법 가격이 있는 편이다). 서두르시던 것과는 달리 빨리 답이 오지 않은 채 다음 날이 되었다. 비싸다고 느끼시는 가보다. 많이 사기엔 살림살이에 부담이 되시는가 보다. 남편이 애써 키운 것들이라 나도 생각이 많았다.


고민하다 많은 양이 아니라면 그냥 나누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시골에서는 이웃 간에도 많이들 나누지 않던가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음날 마침 전화가 왔다. 본인 혼자이시고 조금만 필요하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나누마 말씀을 드렸다. 그리곤 혼자서 몇 번 나누어 드시기에 적당한 양으로 예쁜 용기에 장아찌를 나누어 담았다.

아저씨는 음료를 사들고 오셨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게 아닌가 괜스레 미안스럽다. 탐정 놀이하듯 만나서 마치 물물 교환하듯이 서로 건네고 돌아섰다.

돌아서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이 편안한 마음은 왜일까? 막연한 허영일까? 가공하지 않은 나물을 팔 때는 느껴보지 않았던 이 기분은(남편이 팔았고 나는 돕기만 했으니)? 나는 장사를 낮게 보나?





이웃에 처음 만났을 때는 멀게만 느껴지던 젊은 엄마가 있었다.  

우리의 관계의 시작은 이랬다.

취미로 배우던 기타반의 수업 후 함께 돌아오는 길에 그 젊은 엄마가 다른 친구에게 이번에 담근 장아찌가 잘 되었다며 곱게 포장한 장아찌를 건넸다. 아직 나와는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지만 한 통로에 사는 관계로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언니도 좀 드려야겠네"

마음씨 고운 그 친구는 집에 돌아와서 문고리에 장아찌가 담긴 봉투를 걸어두었다. 남편이 그 장아찌를 맛보더니 정말 잘 담은 장아찌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농사 첫 해, 재배한 산나물들이 아직 판로를 찾지 못하고 남는 것들이 생겨 고민이 많았었다. 산나물들을 챙겨 도시로 돌아온 어느 날 그 친구가 생각이 났고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산마늘과 함께 아직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고추냉이로 장아찌를 담고 표준화된 레시피를 만들어 보는 일을 시작했다. 그 일을 그 친구도 아주 재미있어해서 시간이 날 때면 함께 만나 연구를 했다. 둘이서 각각 여러 버전으로 장아찌를 만들고 시간에 따른 변화를 체크하고 맛을 보는 일을 몇 달에 걸쳐서 하면서 우리는 서로 친구가 되었다.


아들이 글쓰기를 선물해 주어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여러 권의 예쁜 노트와 펜을 나에게 선물했다. 세상에나! 색상도 종이질도 내가 꼭 원하는 그런 것으로. 그 노트를 펼쳐놓고 무엇을 할까. To do list를 작성해 보았다. 노트 한 권 한 권에 라벨을 붙였다.

-두 아들의 어릴 적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워킹맘으로 50대 중반까지 정신없이 사느라 못했던 일. 키우면서 느꼈던 이야기들. 언제 걷고, 언제 처음 말을 하고, 기억나는 여러 이야기들을 써서 녀석들이 장가갈 때쯤 선물하고 싶었다.

-그리움으로 남은 16년을 살다가 별이 된 나의 반려견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필사해 보자. 생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를 골랐다. 1980년에 구입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그 책은 낡아서 부서질 듯 색이 바랬다. 1200원짜리 책이다. 2020년 2월부터 필사를 시작한 책은 농사일이 바쁜 때를 제외하고 꼬박꼬박 진행되어 이제 두 권의 노트가 만들어졌다.



나의 필사 노트



모든 것이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지만 작년부터 시작된 나의 날들은 마치 계획한 것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장아찌로 친구가 되고, 그 장아찌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아들의 글쓰기 선물과 그 일을 더 즐겁게 할 힘을 준 새 친구의 선물까지..






어떠한 직업이 위대하다 함은 어쩌면 무엇보다도 그것이 사람과 사람을 친밀하게 만드는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치란 실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간관계의 사치인 것이다.
물질적인 재화만을 추구하여 일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감옥을 쌓아 올리는 거나 다름없다. 삶에 보람을 줄 만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그야말로 잿더미와 같은 돈을 안고, 고독한 자기를 거기에 가두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추억 가운데서 오랫동안 기쁜 뒷맛을 남겨 주고 간 사람들을 찾아낼 때, 그리고 삶의 보람을 느낀 시간의 목록을 작성해 볼 때, 내가 발견하는 것은 모두가 천만금을 주고도 절대로 살 수 없는 것임을 나 스스로 확인할 수가 있었다.
아무도 메르모스 같은 사나이의 우정이나, 함께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영원히 맺어진 어느 동료의 우정을 돈으로는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저 비행을 하던 밤과, 그 밤의 수많은 별들, 그리고 그 청려하던 기분, 잠시 동안의 그 절대력들은 그 어느 것이나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어려운 비행을 한 후의 세계의 저 새로운 모습, 나무들도, 꽃들도, 여인들도, 미소도, 모두가 새벽녘에 마침내 우리들이 되찾은 생명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싱싱하게 보이지 않는가! 이 사소한 것들의 합주가 우리들의 노고에 보답해 주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도 돈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것이다.

 - 인간의 대지 '동료들' 중에서


그 노트에 생텍쥐베리의 '인간의 대지'를 필사하고 있었다.

글을 옮겨 쓰다가 내가 느낀 그 막연한 허영(팔기는 불편하지만 나눌 때는 편안했던)이 어디서 왔는 가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랬던 것이다! 나 스스로는 내가 요리에 서툴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내가 만든 장아찌의 어떤 점이 조금 모자란다고 내게 이야기해 주던 칭찬에 서툰 남편이 건넨 진심 어린 이야기도 내게는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내 서툰 일에 그 아저씨가 보내준 응원이 내게 용기를 심어주었고, 그것이 내게는 너무도 소중했던 것이다. 함께 장아찌를 만들며 보냈던 젊은 친구와의 흥겹던 시간에 대한 보상, 나의 아들들이 그저 엄마라서 서툴러도 최고라고 하는 것이 아닌, 좀 모자라도 나의 서툰 노력의 산물인 그 장아찌와 거기에 담긴 내 정겨운 마음을 잊지 않아 준 그 기사 아저씨의 마음이 내게는 힘이 되는 것이어서 기뻤던 것이다.


80년대의 책을 읽고 거기에서 작은 위안을 얻은 나.

돈을 버는 일에 서 있으면서도 거기에 푹 젖지는 못하는 나.

나는 어쩌면 돈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한참 먼 이야기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하던 엄마였던 시절 긴 시간 동안 나는 일터에서 늘 따뜻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거웠고, 그 소중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 인연들을 오랫동안 잘 가꾸는 일이 좋았다.


인간관계의 사치란 내게 너무도 소중한 가치이다.

매의 눈으로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으며 살아가는 내게 그것은 내내 나를 나답게 하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므로.


    


Main Photo : by Jakob Søb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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