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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y 24. 2020

외할머니와 국죽

너무도 소박한 나의 소울푸드

"내일 우리 꼬무 생일이구나. 뭐가 먹고 싶으냐? 우리 꼬무."

"할머니! 국죽."

"아이고 내일은 생일이라 안된다. 생일날 죽을 먹으면 물에 빠져 죽는단다. 내일은 다른 맛있는  해줄 테니. 국죽은 모레 해주마."

생일 즈음이면 반복되곤 했던 할머니와 나의 대화는 늘 같았다.


할머니 집에서 보내던 시간. 전기도 없는 호롱불 아래서 저녁을 먹었다. 군불을 때고 난 숯불을 담은 작은 화로 위에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끓고 하얀 무명 한복에 곱게 비녀를 꽂은 할머니는 우리의 저녁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할머니의 그림자가 일렁이며 움직이는 반대편 벽을 보며 재미난 상상을 하다가 밥 먹자는 소리에 얼른 밥상 앞에 앉던 시간들. 먹는 걸 그다지 즐겨하지 않던 아이 그래서 아주 작은 꼬마였던 나에게도 할머니의 밥상 앞에서는 모든 게 꿀맛이었다. 유년시절의 저녁 풍경은  그렇게 따뜻한 기억 속에서 참으로 풍요롭다. 신기하게도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그림은 이렇게 전기가 들어오기 전의 할머니와의 저녁 시간의 풍경이다.




국죽 : 국에 밥이나 쌀을 넣어 끓인 죽을 말하며, 강원도 정선에서는 나물이나 푸성귀를 넣어 끓인 죽을 말한다


'국'이면 '국'이고 '죽'이면 '죽'이지 국죽이라니. 

강원도 양양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가끔 국죽을 해서 드시곤 했다. 할머니의 딸인 엄마는 해주시지 않던 음식이었으나 할머니를 무척 따랐던 나는 그 음식을 꽤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생일 때면 매번 같은 주문을 읊은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비록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시골이기는 하지만 할머니의 살림살이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구황 음식에 가까운 국죽을 해 드신 이유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시 일흔 중후반의 연세였던 할머니는 치아가 좋지는 않으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가끔 별미로 국죽을 해서 드시곤 했었고 그것이 아이 치고는 좀 그런, 초식성인 내 입맛에 너무도 잘 맞았었던 것이다.


인터넷으로 국죽을 찾아서 만드는 법을 살펴보았다.

국죽은 이렇게 만듭니다. 우선 솥에 물을 부은 다음 막장을 풉니다. 그리고 곡식 종류와 나물을 넣습니다. 국죽에 들어가는 곡물은 대부분 메좁쌀입니다. 가정에 따라 보리쌀을 넣기도 하고 메밀쌀을 넣는 경우도 있고 감자를 함께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물의 종류로는 시래기, 곤드레, 취나물 같은 묵나물 들입니다. 봄철에는 새로 돋아나는 나물을 넣기도 합니다. 곡물과 나물의 비율은 가정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만, 곡물은 조금 들어가고 나물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바닷가 마을에선 미역 같은 해초류나 임연수, 양미리 같은 생선을 넣어 끓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두꺼운 큰 가마솥에서 서서히 고아지듯 끓여낸 국죽도 아마 같은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암 투병 중이신 형부가 이웃에 와 계실 때, 시어머니와 시아버님이 병중에 우리 집에 계실 때 참 여러 가지 죽들을 끓였다. 아픈 어른들을 위한 죽을 끓이며 할머니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70대 중후반이셨던 할머니가 치아가 좋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 치마꼬리에 졸졸 따라다니던 꼬마는 그저 할머니가 좋아서 어른들이 좋아하실 맛에 일찍이 길들여졌었나 보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들, 그러다 보니 지금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은 산나물 종류이다. 간은 조선간장이나 소금만으로 하고 들기름으로 무치거나 볶아 다. 참기름 조차도 나물에 따라 아주 조금만 넣는, 최소한의 양념을 넣어 조리해서 갖가지 나물 특유의  향이 살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마도 템플스테이에서 먹던 밥이 내게 잘 맞았던 것은 절집에서의 조리방법도 그러한 데서 오는 연유것이다.


나는 여전히 죽을 좋아한다. 몸이 아프고 난 뒤 힘이 없을 때에도 야채죽 한 그릇이면 금세 기운을 차리곤 한다. 누룽지를 끓여서 먹거나 시어머니께 배운 감자 콩죽을 끓여 입맛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든 순간을 살아내기 위하여 나를 위해 음식을 차려내야 할 때 (몹시 힘든 일을 만났을 때, 호되게 앓고 난 뒤 나를 위로해야 할 때) 나 스스로 내게 힘을 주기 위하여 엉터리 표 나만의  할머니가 끓여 주시던 국죽을 만든다. 내 혀와 마음이 기억하는 할머니표 국죽이 나의 마음과 입맛을 어루만져 주는 최고의 음식인 까닭이다. 다시마나 표고를 우린 물에 된장(막장이 있으면 더 좋다)을 풀고 철에 맞는 나물(아욱이나 취나물, 묵나물 등)을 한 가지 넣고 쌀 또는 밥을 넣어 뭉근하게 잘 퍼진 죽을 만든다. 때로는 할머니처럼  콩가루를 넣어 만든 국수를 조금 마지막에 함께 넣기도 한다. 

아프고 일어난 다음  날. 뜨끈하게 끓인 국죽 한 대접이면 아픈 몸의 세포들이 하나 둘 슬며시 되살아 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는 몸도 마음도 위로받고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날 힘을 얻는다.


곧 생일이 돌아온다. 

희미하지만 포근한 불빛 아래서의 열 살짜리 꼬마 때의 기억이 벌써 50여 년이 되었다.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누군가 맛있는 밥을 먹자고 이야기할 때면  늘  할머니의 국죽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별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수수한 맛, 뭉근하게 정성 들여 끓여진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할머니의 손맛, 내가 외할머니를 기억하는 법이다.


비교적 요리에 서툰 나는 상상 속 나의 자손들에게 어떤 음식으로 기억이 남을까?

그런 상상을 하니 갑자기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그들이 서툰 나를 기억해 줄.. 그것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Main Photo: Photo by Magic Bowl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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