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던 밤의 시간여행 : 기억의 조각들
잠 못 들던 밤을 위하여
박꽃
그날 밤은 보름달이었다.
건넛집 지붕에는 흰 박꽃이
수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밤의 달빛이 푸른 아우라로
박꽃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박꽃이 저렇게 아름답구나.
-네.
아버지 방 툇마루에 앉아서 나눈 한마디.
얼마나 또 오래 딴생각을 하며
박꽃을 보고 꽃의 나머지 이야기를 들었을까.
- 이제 자려무나.
- 네, 아버지.
문득 돌아본 아버지는 눈물을 닦고 계셨다.
오래 잊었던 그 밤이 왜 갑자기 생각났을까.
내 아이들은 박꽃이 무엇인지도 한번 보지 못하고
하나씩 나이 차서 집을 떠났고
그분의 눈물은 이제야 가슴에 절절이 다가와
멀어져 있는 것이 하나 외롭지 않고
내게는 귀하게만 여겨지네
잠을 자려는데 책상 서랍 안에서 나는 달가닥 달가닥 소리에 아이는 잠이 깨어 무서워진다. 갑자기 캄캄한 방 안에 환한 빛이 비치고 그 속에서 인형 아가씨가 나타났다. 처음엔 노란 옷 입은 아가씨가, 그리고 하얀 옷, 빨강 옷, 보라 옷, 연분홍 옷들을 입은 아가씨들이 차례로 나와 빙빙 돌며 춤을 춘다. 갑자기 어디선가 날개 달린 흰 옷 입은 천사들이 아가씨들의 머리 위를 빙빙 날고 있다. 천사들이 들고 있는 단지에 아가씨들이 무엇인가를 자꾸 담아 준다. 단지가 가득 차자 천사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빛도 아가씨들도 사라져 버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이는 잠이 든다. 다음날 자고 일어난 아이가 어젯밤 일이 생각나서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봉숭아, 해바라기, 분꽃, 채송화, 같은 꽃씨가 든 흰 봉투가 들어있다. 얼른 땅속에 묻혀 고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보고 싶어서 서랍 속 잊고 있었던 꽃씨들이 인형 아가씨들이 되어 어젯밤 서랍 속에서 나와 춤을 춘 것 같다고 아이는 생각한다. 예쁜 꽃들이 피어나는 꽃밭을 생각하며 아이가 누나와 꽃씨를 심는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같은 예쁜 동화를 쓰신 강소천 님의 '꽃씨'라는 동화였다.
누가 저 불빛 좀 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