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Jul 07. 2020

채송화와 아기 고양이



직장생활을 하다가 수도권의 도시로 이사를 오면서 잠시 일을 접은 때가 있었습니다. 벌써 26년 전의 일입니다.

큰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20개월 정도이던 늦둥이를 키우면서 2년 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농대 교수님 댁의 별채에 세 들어 살던 시절이었지요. 늘 고양이들이 큰 정원을 오고 갔습니다. 어느 날은 새끼를 낳아서 우리는 창 너머로 고양이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파트도 있고, 쇠락한 기와집도 있고 다세대 주택도 있던 대학 곁의 조용한 동네에서 보낸 시간은 참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일에 쫓길 이유도 없고, 아이들과 맘껏 시간을 보내던 때.

아들은 친구들을 매일 집으로 데려와서 나중엔 월 수 금 3일만 데려 오라고 이야기하던 때였습니다.


그 시절에 아이들에게 제가 만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저 나의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며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곤 했습니다.

이제는 아들들이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이야기들 중 하나를  한번 고쳐 써 보았습니다.


채송화는 제가 어릴 때는 학교나 시골집의 꽃밭에 흔하디 흔하던 꽃이었습니다. 7월부터 10월에 이르기까지 빨강, 노랑, 다홍, 주홍, 분홍, 살구색, 흰색의 꽃들이 꽃밭 가장자리에 피어있곤 했습니다. 채송화는 하루만 피고 지는 꽃이라고 하지만 계속 다른 꽃이 피어나므로 늘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어로 채송화는 rose moss입니다. 장미같이 예쁜 이끼라고나 할까요? 다육 식물이고 더운 지방에서 온 꽃이라 건조하고 양지바른 곳을 좋아한다네요. 옥상 정원을 만들 때 아주 좋은 꽃이라고 합니다. 꽃이 지고 나면 조그맣고 불그스름한 씨방이 자라납니다. 익어가면서 그 모양은 꼭 작은 보석함처럼 생겼습니다. 보석함의 위 뚜껑을 열면 까맣고 반짝이는 씨앗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보기가 힘들어진 꽃이지만 아이들에게 장미나 백합 튤립 등의 꽃들만이 아니라 정감 어린 이런 꽃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쁘지 못해서, 예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이런 이야기를 썼나 봅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요즘에도 예쁘지 못해도 귀여운 아이들을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을 참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참 예쁩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모자란 글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동화를 좋아하거든요.





[채송화와 아기 고양이]


송이는 열 살 3학년입니다. 송이가 사는 동네는 멀리 역이 바라다 보이는 동네랍니다. 몇 동 되지는 않지만 높은 아파트도 있고 연립 주택도 있고 기울어져 가는 낡은 기와집도 있습니다. 엄마 아빠는 늘 송이가 제일 예쁘다고 하지만 송이는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아영이가 하늘하늘한 예쁜 분홍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왔을 때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거든요.

 "나도 저런 옷을 입으면 아영이 처럼 예뻐 보일까? 아니야, 난 아영이 처럼  얼굴이 얗지 않은걸"

집에 돌아온 송이는 괜스레 엄마에게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랬구나, 우리 예쁜 송이가 속이 많이 상했네.

엄마가 재미난 이야기 해줄까?"

송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이야기인 것을 아는 엄마는 송이를 달래려고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엄마 이야기보따리 속에는 참 재미난 이야기가 많거든요.




크고 예쁜 꽃들을 부러워하던 채송화가 있었단다.

채송화는 장미, 백합, 해바라기, 나리, 봉선화처럼 키 크고 예쁜 꽃들을 늘 부러워했단다.

채송화는 아주 키가 작았거든.

채송화가 살던 집은 네 동무 웅이네 집 같은 기와집 정원이었데.

어느 날 우리 송이처럼 다세대 주택에 사는 아줌마가 그 집에 돌러오셨거든.

"아유. 너무 뜰이 예쁘네요. 우리 주택은 지은 지 얼마 안 돼서 아주 보기가 싫거든요. 얼마 안 되는 땅에 장미를 심었는데 잘 안 자라네요. 땅이 나쁜가 봐요, 혹시 옮겨 심을 만한 좋은 꽃이 없을까요?"

"얘 들을 한번 심어 보세요. 메마른 땅에도 아주 잘 자라고요, 꺾어서 심어도 잘 자란답니다. 게다가 꽃 색깔도 여러 가지랍니다."

기와집 아줌마는 채송화를 더러 꺾기도 하고, 뽑기도 해서 그 아주머니께 주셨단다.

채송화는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게 너무 슬프고, 또 아프기도 해서 잉잉 울면서 그 집을 떠났지.

친한 동무랑 헤어질 때 너무 슬펐거든.

한 달쯤 시간이 지났단다. 몇 번인가 비도 내렸지.

채송화는 자라서 자꾸자꾸 줄기를 뻗어 나갔지. 아줌마도 자주 오셔서 가지를 꺾어 옮겨 주고 해서 제법 많은 채송화 무리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단다.

힘들게 자라던 장미도 꽃 봉오리를 달기 시작할 무렵이었지.

채송화도 뾰로통한 얼굴로 꽃이 피기 시작했단다.

노랑, 분홍, 빨강, . 흰색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지.


그날도 채송화는 잔뜩 심술이 나있었단다.

못생긴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그 꽃밭에 쉬러 왔어.

누르스름한 털에 밤색 털이 섞인 아주 마른 고양이였단다.

"얘, 너도 참 못생겼다. 나만큼이나. 그런데 너는 여기저기 다닐 수나 있지. 나는 이 마른땅에서 만 살아야 하다니. 아이 슬퍼."

심술이 잔뜩 묻은 얼굴로 채송화가 말했지.

"너는 네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구나. 키도 작고.. 참 많이 속상하겠다."

심술 묻은 채송화의 말을 듣고도 밝은 얼굴로 고양이가 말했지.

"그런데 얘! 내가 보기에 넌 참 예쁜데. 귀엽고. 이 꽃잎은 정말 부드럽고 예뻐 보여.  네 동무들이 지닌 여러 가지 예쁜 꽃 빛깔 하며. 난 네가 참 부러운데.

그런데 우리 엄마가 나에게 이야기해 주셨거든. 나도 자라면 점점 예쁜 털을 갖게 될 거래.

언젠가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나처럼 아직 털이 나지 않았을 때였단다. 안개꽃 밭에 놀러 갔었데, 그런데 너 안개꽃을 아니?"

"아니. 난 몰라.'  

채송화가 퉁명스럽게 대답했어.

" 아주 작고 하얀 꽃이란다. 많이 무리 지어 피면 그 이름처럼 안개 같은 꽃 이래.

그 꽃은 장미나 튤립 같은 큰 꽃들이랑 사이좋은 동무래.

예쁜 마음을 전해 줄 꽃다발을 만들 때,  큰 꽃들만 쓸 때 보다 안개꽃이 있으면 몇 배나  더 예쁘다고 해.  

아주 아주 아주 많이."

고양이가 말했단다.


(송이도 오빠 졸업식에서 본 꽃다발이 생각나니?  

엄마 말씀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 끄덕였습니다. 알 것도 같았거든요.)


"안개꽃은 자신이 다른 꽃을 더 예쁘게 한다는 걸 정말정말로 행복해하고 있었데.

요렇게, 가느다랗게 실눈을 요렇게 뜨고 웃는 안개꽃이 너무너무 예쁘더래.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우리 엄마도 늘 예쁘게 웃으며 지냈더니 고운 털이 잘 자랐었데.

우리 엄마 말씀이 항상 이렇게 웃으면 나도 우리 엄마처럼 예쁘고 고운 털이 자랄 거래.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내게 이렇게 웃는 모습을 가르쳐 주셨단다. 후훗."


고양이가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아까는 못생겨 보이던 고양이가 이제는 예쁘게만 보였어.

참 신기한 일이었단다.



"내가 예쁘다고? 밉지 않다고? 우리 동무들이 장미처럼이나 곱다고?"


그날부터 채송화도 아기 고양이처럼 실눈을 뜨고 요렇게 웃기 시작했단다.

웃으며 지내다 보니  매일매일 기쁜 마음으로 살게 되었단다.

올려다 보이는 키 큰 다른 꽃들 뿐만 아니라 채송화 동무들에게 더 많이  아주 많이 실눈을 뜨고 웃어주기 시작했지.

이렇게. 


채송화는 매일 동무들이랑 사이좋게 놀았단다.

비가 오면 깔깔 웃으며 맘껏 비를 맞으며 놀았지. 보슬보슬 보슬비도 맞고, 주룩주룩 세차게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신나게 뛰어놀기도 했지.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어깨를 쭉 펴고 쑥쑥 자라났단다.

달이 뜨는 밤이면 동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빙빙 돌며  강강술래를 했단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동무들과 손을 꼭 잡고 함께 덩실덩실 춤도 추었지.

으쌰 으쌰 신나게.


고운 꽃들이 더욱더 많이 피어나기 시작했단다.

알록달록 예쁜 채송화 꽃들이..


어느 날 채송화는 어깨가 간질간질해졌어.

그리고는 꽃이 진 자리에  무엇인가 작은 것이 자라나기 시작했단다.

그 모양은 뚜껑을 열면 열리는 보석함 같았어. 아직은 꼭 닫혀있었지만.

처음엔 연한 녹색이었다가 불그스름하게 익어가던 그 보석함은 여물면서 그 속에 작고 어여쁜 씨앗을 가득 품게 되었단다.

채송화의 너무나  예쁜 마음이 반짝이는 예쁜 보석들 자라난 거야.




"송이야! 그럼 이제 우리 그 보석함을 보러 갈까?"

송이네 연립주택 꽃밭에서 엄마가 잘 여문 보석함의 뚜껑을 조심스레 열었어요. 그 속엔 반짝반짝 동그란 까만 씨앗들이 가득했지요

"송이야! 내년에 이 꽃씨를 심으면 그 예쁜 꽃들이 다시 피어날 거야." 

"노랑, 빨강, 주홍, 분홍, 흰색 꽃이 피어나겠지? 엄마!

요렇게 웃으면 나도 더 예뻐진다고 했지? 엄마!"

실눈 뜨고 꽃을 바라보며 송이가 웃었습니다. 

엄마도 찡긋 실눈을 지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런 송이를 내려다보며 해님도 방긋 웃어 줍니다.

지나가시던 동네 할머니도 "아이고 예쁜 것!" 송이를 보며 활짝 웃으십니다.




뚜껑이 열린 보석함 속 채송화 꽃씨. 자라고 있는 씨방


 


- Main Photo : 핸드폰 촬영 사진

- 씨방의 사진은 인터넷상의 사진을 다시 찍은 것이라서  화질이 좋지 않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관계에서 사치를 부리던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