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도착해서 호수며, 교회며 양치기 개의 동상을 돌아보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작은 길의 끝에서 해 질 녘 황금빛으로 빛나는 봉우리를 발견했다.
멀리서 보이는 황금빛 봉우리. 숨이 확 멎을 만큼 나를 잡아당긴 풍경이었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어도 그 길의 끝은 그 땅이 개인의 소유임을 표시하는 울타리에서 끝나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을 그냥 가슴에 담아야 했다.
다음날 후커 벨리 트레킹 길에서 마운트 쿡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그 봉우리를 제대로 인지 하지 못했다. 반대편 만년설이 쌓인 쪽이 아닌 곳을 바라다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봉우리가 마운트 쿡이 었을 것이다.
나는 처음 본 그 황금빛 봉우리에 홀려 버렸다.
마치 첫눈에 반해 버린 첫사랑을 만난 듯.
떠나고 싶은 욕망이 들끓던 시기에 여행기를 사러 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펼쳐 본 책에서 내가 마음에 담아 두었던 그 풍경과 만났다. 마음속 그 풍경이 사진 속 구름 너머에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설산을 보고 싶은 열망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설산을 마주 하고 싶은 열망이 다시 샘솟았다.
네팔로의 여행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설산과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일까
내게 온 두 번의 기회가 모두 닿지를 않았다.
첫 번째의 도전은 병상에든 엄마를 두고 힘들게 쉼을 꿈꾸었지만, 연이은 형부의 급작스런 대수술로 접어야만 했다. 가지 않은 것은 옳은 선택이어서 그 이후 엄마와의 이별을 맞았다.
두 번째의 도전은 엄마를 보내고 몇 년 뒤의 일이었다. 비행기 티켓이며 숙소의 일부. 네팔에서의 스케줄과 그에 따른 제반 사항들을 거의 마무리하고 떠날 날 만을 기다리던 중의 일이었다.
아마도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4월의 끝 어느 토요일.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들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지진 소식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렇게 큰 지진 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뉴스를 통해 바라본 지진은 너무나 무서웠다. 지인의 결혼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그때 네팔에 있을 예정이었지만 며칠을 미루어 스케줄을 조정한 덕에 다행히 그 혼란에서 비켜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함께 떠나기로 한 친구와 5월의 끝자락에 제주를 향해 떠났다.
며칠을 올레길을 걷고 한라산을 오르는 계획을 세웠다.
네팔 대신 제주로, 설산 대신 한라산으로.
이전 며칠 동안의 올레길에서 훈장처럼 얻은 발가락의 물집을 지닌 채로 나는 한라산을 올랐다.
2015년 한라산을 다녀와서 쓴 글을 다시 읽는다.
그동안 일어 난 많은 일들 속에서 이루지 못한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면서...
-한라산 가는 길
다른 이의 강요가 아닌 나의 의지로 시작된 산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돌산은 힘들어서 참으로 많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였다.
나의 준비성 없음과, 내 허술한 건강과 날카로운 나의 신경과, 그를 거슬리는 외부로 노출된 핸드폰을 통해 울려 나오는 여러 장르의 음악들과, 수많은 등산객들이 쏟아내는 소음들 속에서 일관성 없이 이리저리 모난 돌길을 올라가는 산행은 고행의 길이었다. 가장 힘들다는 오르막을 입을 꾹 다문채로 오르며 생각은 왜 그리도 많은지. 주변에 핀 천남성, 굴거리나무, 대숲, 그리고 고도를 알리는 표석들을 그냥 바라보며 오르기만 한다.
돌길에 지친 다리를 속밭 휴게소에서 쉬게 하곤 사라오름 입구를 향해가는 오르막 돌길을 말을 잊고 오른다.
진달래 휴게소에 오르니 멋진 풍광과 달콤한 휴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컵라면에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나누면서 쉬어간다.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서는 더 불규칙한 돌길의 연속이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숲은 그 그늘을 벗는다.
구상나무 숲을 지나는 길
구상나무 숲을 지나간다. 기후 변화로 인해 스러진 나무들이 안쓰럽다. 그들은 죽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살아있는 나무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구상나무들
기후변화로 스러진 구상나무들
이후에 펼쳐진 나무길을 따라 고산매자나무, 개벚지나무며 여러 종류의 고산 식물들이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꽃을 피우고 있다. 내려다 보아도 올려다 보아도 그리고 옆을 둘러보아도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풍경. 그 거침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산을 오른다.
고산 지대의 개벚지나무
고산매자나무
귀룽나무
숲은 사라지고 작은 풀들만이 자라는 정상으로 향하는 나무계단 곁으로 작은 야생화들이 피어있다. 멀리 무리 지어서, 때론 바로 곁에서. 곱게 핀 어여쁜 모습을 바쁘게 카메라에 담는다. 키 작은 구름미나리아재비, 제주양지꽃, 각시붓꽃, 흰그늘 용담, 설앵초, 큰앵초, 세바람꽃, 노랑제비꽃들이 바람 속에서 더욱 곱다.
이름도 예쁜 구름미나리아재비
설앵초 (인듯하다)
흰그늘용담
기운차게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바라본다. 남쪽에서 가장 높은 1950 고지. 잠시 숨을 고르고 고생한 발을 쉬게 하는데 다시금 돌아갈 시간이란다. 하산하라는 방송을 들으며 신발끈을 조여 매곤 하산길에 올랐다.
내려가는 길은 조심스러웠다. 아마도 올라가는 길에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긴 어려웠으리라. 내리막길에서는 약한 무릎이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대고, 스틱 두 개를 사용하여 아주 천천히 무릎을 달래 가며 하산했다.
오르막 길에서 꿈꾸던 정상을 향하던 설렘은 저만치 가버렸다. 너무도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돌길은 더 정확한 내발의 감각을 요하고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내려와야 했다. 오를 때와는 달리 진달래 휴게소까지의 길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다. 휴게소에서 잠시 충전을 하고 서둘러 하산길에 올랐다.
발은 점점 아파오고 무릎은 아우성을 쳐대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돌길.
조심스럽게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많은 이들이 내 앞을 질러갔다, 동행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 나는 괜찮으니 혼자라도 어서 내려가시라고, 천천히 내려가리라 이야기해도 두고 가기가 염려스러워 터벅터벅 걸으시는 친구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마음이 갑갑하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에서 본 어느 장면이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타인의 힘을 빌어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가 그 산속에서 그냥 얼음덩어리가 되어 썩지 않고 남은 이들, 그들의 이상주의가 생각난다.
나는 과연 이 산을 오를만했던 걸까.
혼자서가 아니었으므로 묻어서나 오를 수 있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나의 이상주의 성향을 못마땅하게 되새긴다.
어느덧 산은 벌써 어둠을 부르고 어둑어둑해진 산길을 동행과 둘이 먼발치서 걸으며 산을 내려왔다. 어느 지점에선가 어둠 속에서 노루가 사람들이 지나간 숲을 다시 거닐기 시작할 즈음에야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하였다. 11시간이 소요됐단다. 이미 휴게소는 문을 닫고 780번 버스에 선채로 터미널로 향했다. 지친 나도 말이 없고 나를 기다리며 걷느라 지친 동행의 어깨도 너무 무겁다. 둘 다 아무 말이 없다. 빈자리가 생겨도 서로 먼발치에서 그냥 각자 앉아있다. 이전 숙소에서 무거운 짐을 챙겨 들고 새로운 숙소로 지쳐서 돌아왔다. 씻고는 지친 심신을 막걸리 한잔에 풀고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문정희 시인의 책 속 글귀 속에서 - 만약에 이 세상이 이성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그것은 마치 돌만이 끝없이 펼쳐진 벌판처럼 삭막할 것이다. 감성은 중요한 것이다. 인간적인 것, 아름다운 것이 바로 감성적인 것이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될 때 우리의 삶은 완벽히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왜 이 이야기가 생각났을까.
그랬다.
내 힘에 버거웠던 한라산을 오르는 일은 내게 그와 같았다. 물집 잡힌 발로 오르기는 이성적으로는 힘든 참 먼산. 그러나 다른 이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올랐던 산은 아픔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끊임없는 돌밭을 지나 숲을 벗어나 내려다 보이는 지역에서부터 바라보던 아름다운 풍경의 감동, 그것은 젊은 시절의 첫사랑만큼이나 내개 오랜 기억으로 남았다.
다시는 이 길을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 힘들게 내려온 하산길의 수많은 생각들은 모두 잊혀 버렸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정상을 향하던 설렘, 거친 바람을 마주한 아름다운 꽃들, 바람 속에서 천년을 지켜온 하늘을 담은 백록담과 스러진 구상나무들에 대한 풍경들이다.
그리고 오늘 어리석은 나는 다시 이상주의자로 돌아와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르는 꿈을 다시금 꿈꾸어본다.
그때 그냥 네팔로 떠났더라면 한라산에서와 같이 동행에게 부담이 되는 내가 되지 않았을까?
젊은 시절 제법 산을 오른 기억만으로 오르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점이 많았음을 느꼈다.
그러나
아직도 내게 그 황금빛 설산은 그리운 곳이다. 내 전생은 그런 황량한 곳이었을까?
늘 내가 가고 싶은 곳은 그러하다.
그로부터 오 년이 더 지났다.
나는 어쩌면 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덧 내 몸이 나를 따라주어야만 무언가를 완성할 수 있는 나이로 다가가면서 조금씩 열망의 크기와 숫자를 헤아려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한다. 이것이 가능해? 어디까지를 꼭 원해?
나의 두 눈이 성해서 바라볼 수 있는 한, 한 번은 먼발치에서라도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싶은 나의 소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