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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n 04. 2020

뻐꾸기가 울면

먼 시간으로의 여행



5월이 오면 산에서 그리고 산과 인접한 들에서 뻐꾸기가 운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을 알리는 새.

'뻐꾹뻐꾹 봄이 가네' 어린 시절 배웠던 동요 속 친근한 여름 철새인 뻐꾸기는 아름답고 깊은 울음소리로 우리를 추억에 잠기게 하는 새이다.  한 때 청소차의 알림 소리가  뻐꾸기의 울음으로 사용되었던 때도 있었다. 뻐꾸기는 우리에게 친근한 새이다.


뻐꾸기는 알을 품지 않는다. 몰래 붉은 머리 오목눈이, 딱새, 검은 딱새 등의 둥지에 자신의 알 한 개를 낳고, 조금 일찍 부화한 어린 뻐꾸기 새는 둥지 주인의 알이나 태어난 어린 새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어 버림으로써 살아남게 된다. 결국 뻐꾸기는 탁란으로 다른 새에게 그의 양육을 맡기는 것이다. 자기보다 더 커져가는 어린 새를 키우느라 힘든 양부모 새의 둥지 근처에서 끊임없이 울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는 뻐꾸기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새의 울음 속에 깃든 깊은 소리가 달리 들리기도 한다. 어쩌면 아주 먼 거리를 날아 살아내야 하는 철새라서, 짧은 이곳에서의 시간 동안 키울 여력이 없어 택한 양육의 아픔이 뻐꾸기를 그리 슬프게 울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함 민복 시인은 뻐꾸기의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바라다본다.

저 목소리 들어봐선
아닌 것 같다

저리 곱고
깊은 소리

눈빛처럼 다급하게
알을 낳았으리라

염치머리 없다고
미안 미안하다고

울어 울어도
죄 가시지 않는다고

이 산 저 산에
무릎 꿇는 울음 메아리

- 함민복 <뻐꾸기>


하지만 나에게 있어 뻐꾸기 소리는 그의 삶보다는 울음소리와 함께 기억되는 추억들로부터 나온다.

시골집의 산 언저리에서 울던 뻐꾸기와 유년의 시간과 엄마의 기억.

젊은 나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




매년 5월 중순이면 우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지나간 시간으로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제는 인생의 겨울을 향해 준비하고 있는 나이에 들어서 일까. 희미하지만 사랑스러운 젊은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이 더 깊이 다가온다.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다가 생각이 떠올라 30여 년 전의 일기장을 펼쳤다.

30여 년 전 일기장 속에 끄적여둔 나의 습작시. 그때에 나는 자신이 꽤 나이 든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멀리서 뻐꾸기가 운다
내 젊은 날이
어리석다며 운다


얼마나 바보스럽게 살았던가
또 얼마나 무모했던가
또한 아프게 사랑했던가
지금은
그 어리석은 사랑이
그리워서 운다

어차피
젊음이란
그리도 무모할 수 있어서
더 아름다웠던 것을

오는 그 푸르른 신록의 시간보다
연초록 젊음의 봄이
더 애틋하게 그리운 것을  


얼마나 바보스러웠던가 얘야
그러나 또한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

 - 1986년 5월 어느 날의 습작시 <뻐꾸기 >



일기장 속에는 연둣빛 새순 같은 나의 푸릇푸릇한 이야기들이 꾹꾹 눌러쓴 필체 속에 남아있었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가슴 아픈 고민과 사랑 이야기도, 방황, 만남, 자유를 향한 이야기 들이.

때로는 그 시간들 속에 존재하는 때 묻어가는 나의 모습이 싫어져서 부끄러웠던 시간 속에서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슬퍼하는 모습들이.

그저 고향을 그리워하며, 막연히 엄마를  그리워한 시간들이.



막연했던 그리움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많이 달라졌다. 나이 들어가며 엄마의 노쇠해 가는 과정을 곁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죽음의 순간까지 마주하고 함께 하면서 남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진한 그리움이 되었다. 아직까지 글로서도 말로서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가슴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내 불효의 기억들. 아직도 끊임없이 엄마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저변에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남아있어 조금씩 엄마에 대한 글로 끄집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쯤에나 이 깊은 샘의 바닥에까지 다달을 수 있을지... 매년 우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리곤 한다.


60여 년을 살아오는 시간 동안 어찌 아름다운 시간들만 있었을 것인가.

그러나 이제는 내 바보 같은 삶도 나로 받아들여간다. 아마 다시 삶을 살아도 또 그리 살았으리라. 사랑했었다고. 최선을 다해 살았고 앞으로도 그리하리라고.  뻐꾸기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 했던 어떤 기억들은 희미하지만 빛바랜 나의 일기장 속에 곱게 잠들어 있었다. 나이 들어 오랜만에 그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부끄러우나 어여쁜 젊은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다보았다.


오늘

눈이 부시게 푸르른 신록의 계절, 우는 뻐꾸기 소리에 훌쩍  3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또 뻐꾸기가 운다!





Main Photo : by Valentin Salj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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