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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l 06. 2020

그날엔 진한 커피 한 잔이면 좋겠다

어머님의 1주기를 보내고



1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조금 큰 신발을 끌며 무릎 수술을 위해 병원으로 떠나셨던 어머니는 그 길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수술이 잘 끝나서 병실로 옮겨졌다던 어머니. 포괄간호서비스가 있던 병원이라 남편이 다음날을 기약하고 늦은 저녁에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집에서 나와 함께 기다리시던,  함께 70년 가까이 사셨던 시아버님과는 수술 당일 아침에 나눈 대화가 마지막 말이 되었으리라.


그날 이후 어머니의 삶은 삶이 아니었다.

한 달 가까이 혼수상태로 깨어나시지 못하는 시간 동안 중환자실에서 하루 두 번의 면회 시간밖에 만나지 못하던 때, 애통해하시던 시아버님을 달래 드리던 시간. 기관 절개를 하시지 않으면 곧 돌아가신다는 의사의 말에 당신의 지인이 절개 후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더라 말씀하시던 아버님을 그저 손 잡아 드릴 수밖에 말을 할 수 없던 시간. 차라리 편하게 가시도록 마음을 잡으셨다가 끝내는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다며 아버님께서는 망설이고 망설이다 기관 절개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기적처럼 눈을 다시 뜨셨다.

그 후 1년 가까이 종합 병원에서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결국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시지 못한 채 그렇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을 다시 이어가시게 되었다. 가끔 가장 사랑하던 큰아들만을 알아보시는 듯 눈을 맞추고 아는 듯한 표시를 하실 때, 당신은 알아보지 못한다며 서운해하시던 아버님께서는 그래도 살아 있어서 끝까지 함께 다시 마지막을 함께 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셨다.


투병의 시간은 참으로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아버님이나 자식들도 힘들었겠지만 가장 힘든 것은 어머님의 시간이었다. 병원에서는 그만 다른 곳으로의 전원을 권했고, 결국은 요양병원으로 어머님을 전원 시켜야 했다. 더 자주 어머니를 볼 수 있도록 우리 집 근처의 요양병원을 권했지만 남편은 시골로 내려가 우리는 따로 사는 삶을 택했다. 남편은 근처의 자식들도 더 자주 가볼 수 있는 병원을 찾았고, 시설이 큰 병원을 찾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시골에서도 우리 집에서도 2시간 거리에 있는 비교적 크고 새로 생긴 요양병원을 택했었다. 그렇게 자체 간병인에 더해서 낮시간 동안 따로 간병인을 고용해서 어머니를 돌보는 것으로 우리들은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러나 초기 거의 매주 서너 번씩 들르던 면회는 다들 사느라 바쁘다 보니 한주에 두 번이 되고 한 주에 한 번이 되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요양병원에서 오히려 낯선 이들 속에서 2년 반을 더 사시다가 3년 반 만에 돌아가신 지 1년이 된 것이다.

사람이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를 지키면서 실감해야 했다. 나의 엄마와 형부 그리고 뒤이어 아버님 , 내 반려견의 죽음까지 그 몇 년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고통의 시간이 아니었을지.


가끔 움직일 수 있었던 손으로 콧줄을 뽑곤 해서 두 손을 침대에 묶인 채로 가래를 제거하느라 하루에 몇 번씩이나 썩션을 할 때마다 괴로워하시던 어머님. 무엇보다도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면역력이 약한 어머니가 요양병원에서 옮은 옴 때문에 고생하시던 것이었다. 워낙 상황이 좋지 않으시다 보니 다른 곳으로의 전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병원의 치료를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오히려 그 병원에서 옮은 병임에도 더 큰 병원에서의 진료를 위해 이동했다 돌아가려 할 때 그 병원에서 보여주던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기도 했다. 온몸에 난 종기 상처마다 칠한 약으로 얼룩진 모습으로 가려움에 머리를 흔드시던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아마 지옥이 있다면 그런 모습일 것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옴은 전염성이 심한 질환이라 그 괴로운 시간을 위로하려 맘 놓고 손 잡기도 힘든 시간이 얼마나 괴로왔는지 모른다. 그래도 남편은 항상 어머니의 그 손을 잡아 드리곤 했다. 난 그 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대상포진의 후유증이 남아있던 나에게 함께 지낼 때마다 나는 남편의 손이 무서웠었다. 장갑을 끼고서야 잡아볼 수 있던 어머니의 그 손.

돌아가시려 하던 순간 "어머니 당신은 참 잘 사셨어요. 이제 편히 가셔요. 여기 걱정 놓으시고요". 마지막이 가까워 와서 인가 조금은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다시 생각이 났다.

오늘!


어머니는 6남매 중 장녀이자 9남매의 맏며느리셨다.

'참새가 작아도 알을 잘 낳고 제비가 작아도 천리를 간다'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하시며 당신의 긴 결혼 생활을 이야기하셨다. 거의 매달 있는 제사와 명절 제사 그리고 다섯이나 되는 아들들과 수많은 친정과 시댁의 친지들을 어머니는 모두 그러안은 분이셨다. 그 작은 몸으로 수많은 일들을 불평 없이 기쁘게 하셨던 어머니셨다. 내가 일을 하느라 나의 아이들을 돌보아준 나의 언니에게도 당신의 자손을 돌보아주어 고맙다며 고추장이며 산나물을 챙겨주시던 분이셨다. 좀 무뚝뚝하기는 해도 마음은 한없이 따뜻했던 어머니. 효자 아들이라 나에게 섭섭함이 많았던 남편에게 대한 불만도 푸근하고 따뜻한 아버님과 어머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받아들여졌었다. 단지 당신들의 생활에 좀 더 신경 쓰시고 돌아가신 분들보다 당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시기만을 바랐었다.

남편의 은퇴를 앞두고  나는 우리들이 함께 노년을 보낼 곳을 물색했었다. 어른들도 함께 생활하기에 괜찮은 곳, 무엇보다도 나에게도 내 노년의 삶을 이루어 나가기 좋은 곳으로.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 것인가. 노인들은 당신의 삶이 있던 곳이 최고의 땅이며 남편은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야 나는 내 어리석음을 깨달아야 했다.


그러나 나의 꿈은 어찌할 것인가?

노년의 나의 삶은?


어머니의 제사를 모시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어머니는 이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해 나가셨을까? 일하는 며느리라 명절이나 생신 때, 여름휴가 때나 방문하곤 했던 나는 매달 이렇게 많은 음식을 장만하고 많은 사람을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이제야 실감한다. 얼마나 힘드셨을 지도.

어머니가 가시고 네 달 후 떠나신 아버님의 장례며 명절과 제사를 보내면서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게 다가왔다. 이제 겨우 몇 번을 지냈을 뿐인데..

차츰 정리를 해나가야 하리라. 오래된 관습에 물든 남편이나 친척 어른들, 동생들과도 부딪치게 될 것이지만 이제는 나의 아들에게는 이런 무리한 일을 넘겨주지 않기 위해서도 잘 정리해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다.

머릿속이 참 복잡했다. 제사 뒷정리를 모두 마치고 서둘러 시골에 남편을 남겨두고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쉬고 싶었다. 피곤에 지친 몸을 기대고 돌아오던 차 창가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흐르던지.. 돌아가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일주일쯤 그냥 혼자 있고 싶구나.

그냥 나의 자리에서..










정동진에서




그 날엔 그냥 진한 커피 한 잔이면 좋겠다.



내 죽거든 아들들아!

나를 기억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그저 커피 한잔을 부탁한다.

그냥 커피가 아니라 아주 잘 내린

hand drip coffee를 마셔주렴.

꽃 향내 나거나 진한 초콜릿 향이거나, 과일 향이 나는

잘 볶고 잘 내린 아주 맛있는 커피를.

나를 위하여!


밖이 훤히 내다 보이는 창가

바다나 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이면 좋겠다.

우리 함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었던

정동진의 바다 이거나

너희들이 자라난 춘천의 강가

중도와 서면 나루터 그리고 소양 2교가 바라다 보이는

북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이어도 좋겠다.

아니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또는 가고 싶어 했던 곳

이국의 탁 트인 cafe라도 좋겠다.


그저 진한 향기의 에스프레소 한 잔이어도

행복하겠구나.

너와 아내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만든 음식을 앞에 두고

향 피우는 일 일랑은 잊어주렴.

그저 커피 한 잔이면 좋겠다.

그날엔


Main Photo :  Photo by Tim Foster on Unsplash

Photo : 정동진, 핸드폰 촬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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