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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04. 2020

이제야 당신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그 따뜻하던 엄마의 등



내일이면 아들은 호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지인 부부와 아들과 함께 뮤리와이 비치에 갔다. 내일이면 아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해안에서 떨어져 우뚝 선 바위 위에 가넷의 서식지가 있었다. 10월에서 3월까지는 수많은 가넷들로 절경을 이룬다는데 4월 초의 그곳에는 패잔병 무리들만이 남은듯했다. 어미가 죽어 결국은 살아내지 못하고 죽은 어린 가넷의 모습도 보인다. 이미 무리가 떠나고 얼마 남지 않은 가넷의 무리들. 어미는 새끼가 날 때를 기다리며 끊임없이 모이를 물어다 주었다. 끝까지 자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리는 어미의 모습이 장하다. 첫 비상을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날갯짓하는 새끼의 모습도 또한 장하다. 하얀 몸에 검은 무늬 노란 볼을 지닌 어미에 비해 새끼는 검고 볼품이 없으나 그들도 자라 저렇게 멋진 어미가 될 것이다.

늦게 부화에 성공한 탓인지, 어딘가 약한 구석이 있어서인지 아직 날지 못하는 꽤 자란 새끼에게 어미새는 어서 날아오르라고 몸짓하고 있었다. 어미 가넷의 마음이 어느새 나의 마음이 되어있다.


먹이를 얻기 위하여 날아오르는 멋진 어미새의 비상이 부럽다. 나는 어떤 엄마인가?

이제 나를 떠나 홀로 다시 서야 할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가넷 군락지와 비행하는 가넷



아프리카 야생 다큐에서 가넷을 다시 만났다.

케이프타운 근처의 섬에 그들의 집단서식지가 있었다.

뉴질랜드의 가넷 서식지에서 자세한 설명이 되어있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거기에 집중하지는 못하고 멀리 새들만을 바라보았었다. 저 수많은 새들이 어찌 자기의 자식을 찾아가는지 참으로 자연의 세계는 놀라울 뿐이었다.

가넷은 한번 짝을 만나면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단다. 한 개의 알을 낳아 부모가 같이 새끼를 부양한다. 먹이 활동을 위해 수면 30m 정도 위에서 시속 100km에 가까운 속도로 수면에서 8m 깊이까지 화살처럼 내리꽂는 그들의 비행이 너무도 근사하다. 2m에 가까운 날개로 날아오르는 가넷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니... 멋지다.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는 수많은 새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원칙이 있어 독신인 어린 새들은 군집의 바깥쪽에, 부화하여 자라고 있는 새끼들은 중심부에 자리를 잡는다. 100일 가까이 어미의 도움으로 자라난 청소년 가넷은 먼길을 떠나기 7일 전부터는 부모가 주는 먹이를 먹지 않는단다. 그리고 부모를 떠나  3년간 바다 위에서 살다가  다시 3년 후 돌아와 다시 그들 부모와 같은 삶의 여정을 살아가게 된다고.


그때의 나를 돌아본다. 처음으로 자신의 길을 향해 떠난 아들과 오십을 갓 넘긴 나. 편도의 비행 티켓 만을 들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내겠다며 떠났다 만난 지 20여 일.  아들을 다시 미지의 땅으로 돌려보내고 공항에서 8시간을 더 기다려 돌아오던 길이었다. 비행기 속에서 내려다 보이던 뭉게뭉게 구름 속에 언뜻언뜻 보이던  호주 대륙. 그 풍경을  내려다보며 내내 울음을 삼켜야 했다. 힘들어도 혼자 꿋꿋하게 잘 날아오르라고 끊임없이 기도를 보내며.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이제 아들은 훨훨 날아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조금 더 강해진 나도 나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약간 촌스러울지도 모르나 풀을 빳빳이 매긴 하얀 호청을 씌운 솜요 위에 누울 때가 가장 편안하고 좋다.

침대 위에 누울 때 느끼는 허공에 뜬 기분이 솜요 위에 누우면 무언가에 단단히 매어지듯 느껴지던 안정감.


그런 내게도 아주 푹신한 침대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엄마의 따뜻한 등.

중학교 1학년 입학한 그해 3월의 기억이다.  춥고 눈이 내리던 3월이었다.

요즘 초등학교 1학년 짜리 만한 키의  아주 작은 꼬마였던 내가 그  날 왜 혼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산골의 모퉁이들을 돌아 돌아 집으로 돌아오던 길. 큰 가방은 땅에 닿을 듯이 무겁고 내린 눈이 녹아 신발을 적시고. 집까지의 길은 한 시간여를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버스가 자주 없었으므로 우리들은 그 길을 늘 걸어서 돌아와야 했다.

너무 춥고 지쳐서 집으로 가는 길의 중간지점에 있던 엄마의 일터인 병원에 들렀다.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생활의 전선에 나서야 했던 엄마. 오들오들 떨며 찾아간 나를 엄마는 따뜻한 물로 씻겨서 병실의 푹신한 침대에 눕혀 주었다. 한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엄마의 오후 근무가 끝나서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바람찬 산 모퉁이를 돌아 난 길을 작은 나를 업고 가방을 들고 집으로 가던 엄마의 등이 얼마나 포근했던지.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따뜻하던 엄마의 등


돌아보니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아들과 헤어지며 눈물을 삼키던 나의 나이였다. 등에 막내를 업고 돌아오던 그때의 엄마, 우리보다 훨씬 살기 어려웠던 시절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아들과 헤어지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제야 그 시절 엄마의 삶의 무게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전에 노쇠한 엄마는 끊임없이 자식들을 걱정하셨다.

당신의 삶이 잘 사는 우리를 바라보는 기쁨이셨기에 늘 바라보다 보면 안쓰러운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일생에 마지막으로 키운 자손인 외손자를 바라보는 것이 좋아서 자주 오셔서는 늘 또 다른 자손들을 걱정하시던 엄마. 그 모습이 싫어서 퉁명스럽게 짜증을 내곤 했다.

90세 중반에 고관절의 골절로 일어나지 못한 엄마를 집 곁의 요양원에 모셨다.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딸이자 당신이 마지막으로 키운 귀한 손자가 있는 우리 집으로 오시고 싶어 했지만 남편에게 폐가 될까, 나의 일을 포기하지 못해서. 불효였다.

하루 걸러 하루를 들르던 때였다. 잘 드시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좋아하시던 팥죽을 쑤어서 들른 어느 날이었다. 다음 방문일이 며칠인지, 음력으로는 며칠인지를 물어보셨다. 집으로 오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알기에 무거웠던 마음은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나와 엄마의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당신이 이야기하시던 그날 아침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나 죽은 다음에 오려고?'마지막 말을 남기고.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를 했던 다음 날 다시 요양원을 찾았었다. 문 앞에서 보호사를 만나 엄마의 용태를 물었다. 괜찮으시다고. 집으로 못 모시고 오는 죄책감에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었


그날 한번 더 엄마를 만났더라면...

엄마가 죽음을 향해 걸음을 옮기시던 그 날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호숫가를 거닐었다..


그 이후에 만난 여러 죽음들을 마주하며

이제야 엄마가 의연히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계셨음을 안다.

다른 가정의 맏이라는 것 때문에, 내가 지켜야 하는 나의 가족 때문에, 나의 생활을 포기하지 못해서.

모든 어리석음이 너무도 아프다.

어리석은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바랄 뿐.




그 춥던 겨울날 엄마의 따뜻한 등.

그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했다.

그런 내가 이제 나의 자식들을 향한 마음을 통해 엄마를 본다. 엄마를 돌보는 일이 내리사랑이라는, 그 사랑의 힘을 거스르는 일임을 안다. 모자란 나여서 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슬퍼하며, 다만 이제는 나의 사랑이 자식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나를 가꾸는 일로 채워나가려 노력한다.


아직도 나는 엄마의 깊은 사랑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나이만큼 조금씩 그 마음을 알아가게 될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직면해서야 알게 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안다.

예전보다  더 배운 것이 많고 좋은 시대에 살아도 시대의 발전만큼 엄마로서 나의 사랑이 엄마만큼 자라지는 못한다.

이미 당신의 사랑이 최대치였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 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


네가 어렸을 땐

우리 사이에 다만

아주 조그맣고 어리신 신이 계셔서


사랑 한 알에도

우주가 녹아들곤 했는데


이제 쳐다보기만 해도

훌쩍 큰 키의 젊은 사랑아


너와 나 사이에는

무슨 신이 한 분 살고 계셔서

이렇게 긴 강물이 끝도 없이 흐를까


-문 정희 시인





Main Photo : by Phil Hearing on Unsplash

Photo : by Thomas Neckle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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