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노년의 길목에서
나무들은 마치 고독한 존재와 같다. 나약함 때문에 현실을 피해 은둔한 자들과는 다르다. 나무들은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고도 고독하게 삶을 버티어 간 사람들 같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세계가 윙윙거린다. 나무뿌리들은 무한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무들은 모든 생명력을 끌어모아 오직 한 가지 만을 위해서 분투한다. 그것은 바로 나무들에 내재해 있는 고유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다. 나무들 본래의 형상을 완성해 나가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일이다. 아름답고 강인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더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 정원일의 즐거움 중에서, 헤세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씨를 품은 흙의 기적은 부드럽고 따습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 진다.
내 주름의 깊은 골짜기로 신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내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해도 어느 조촐한 툇마루, 깨끗하게 늙은 노인의 얼굴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