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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Sep 21. 2020

나무처럼  살고 싶다.

 어설픈 노년의 길목에서

나무를 좋아한다.

올려다보면  하늘을 향해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뻗어나간 가지도 꽃들도 잎도 아름답지만  때를 알아 피어나고 버려야 할 시간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버릴 줄 아는 그 모습을 사랑한다.

오래오래 살아남은 나무들 속에는 새도, 동물들도 곤충들도 깃들어 함께 산다. 들은 정원에서, 숲에서, 들에서 묵묵히 허둥대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아주고 있는 듯하다.

나무는 늘 현재를 산다.


나무들은 마치 고독한 존재와 같다. 나약함 때문에 현실을 피해 은둔한 자들과는 다르다. 나무들은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위대하고도 고독하게 삶을 버티어 간 사람들 같다. 나무 꼭대기에서는 세계가 윙윙거린다. 나무뿌리들은 무한 속에 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나무들은 모든 생명력을 끌어모아 오직 한 가지 만을 위해서 분투한다. 그것은 바로 나무들에 내재해 있는 고유한 법칙을 따르는 일이다. 나무들 본래의 형상을 완성해 나가면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일이다. 아름답고 강인한 나무보다 더 성스럽고 더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 정원일의 즐거움 중에서,  헤세



누구도 언제 세상을 떠날지 알지 못한다.

더 잘 살기 위하여 택한 길이 죽음을 향해 내딛는 길이 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살아생전에 내가 죽거든 여기에 묻히고 싶다고 한들 그것은 죽은 자의 몫이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죽은 나의 육신을 어찌해주었으면 하는 것을 미리 생각하고 그 뜻을 알려주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무엇보다 현재 살아있는 간의 '나'와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가를,  생각하고 배우면서 잘 가꾸어 나가며 살고 싶다.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느끼며...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의 삶을 바라보게 마련이다.

각자 자신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한 노인이 아프다.

간병 과정에서 노인의 형제자매들과 그의 자식들의 반응은 너무도 다르다.


나이 드신 어르신 들은 때로는 표정으로, 때로는 말로 자식들이 챙기는 것들이 마땅치 않음을 표현하신다.

우리가 너희들을 키우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는데.. 그 시절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데.. 너희가 너희 부모님께 그리하다니.

어르신들은 자식들이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헌신적으로 하기를 바란다.


자식들은 요즘 살기가 얼마나 팍팍한데.. 아이들도 돌보아야 하고, 그들이 남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가르치려면 열심히 돈도 벌어야 하는데.. 부모님들이 좀 더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시면 좋으련만, 왜 당신들의 관리를 소홀히 하시는지.. 알아서 하는 일에 왜 자꾸 관여하시는지..

그러다 병들어 간병에 발이 묶이는 순간 그들의 삶은 혼란에 빠진다. 그 와중에 그들의 속마음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아프기 전부터 자식들은 부모님들이 당신들의 삶을 스스로 잘 챙겨나가시기를 바란다. 건강도 스스로 잘 챙기시기를 바란다.


부모님의 입장을 이해한다. 나 역시 사랑하는 부모님의 살아오신 세월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저 말없이 잘해드리고 싶었다. 섭섭하시지 않도록. 그러나 말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를 많이 버려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부모님들은 왜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희생하시기만 하시는지, 노년에 이르러서도 왜 당신들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시는지가 지금 젊은이들보다 더 전 세대에 살아온 나로서도 답답할 때가 많았다. 오로지 과거로부터 지켜 내려오는 전통에 얽매여,  당신들의 삶을 옥죄어 온 구습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힘든 시간을 보내시는 것이 답답하곤 했다.

물론 모든 전통이 나쁜 것만은 아니며 좋은 의미도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수하고 삶의 만족도가 높은 지역을 조사해 보니 3대가 함께 는 가족관계 속에서 사는 노인들이 많더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노인이 살아온 삶의 시간이 긍정적으로 인정되는 곳에서 노인의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장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러 세대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질 수 있다면야 얼마나 바람직한 모습일까.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삶의 방식에 너무나 큰 변화가 있었고, 우리들의 사는 공간은 대부분 같이 살기에 부적합한 구조이다. 또한 세대 간의 큰 생각의 격차는 오히려 각자 사는 삶이 더 바람직하다고 나의 세대에서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설픈 노년의 입구에 들어서 있기 때문일까.

두 입장 모두에 공감하는 아이러니의 한 복판에 서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제 막 두 입장을 다 겪었기 때문이며 , 앞으로도 계속 겪어야 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은 혼란스럽다.

장차 나의 며느리에게는 이런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지만 한편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미리 그 나이가 되어 바라보는 아픈 어른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까? 하루는 띠동갑 되는 아픈 가족의  푸념을 들어주던 와중에 내 곁에서 어른들이 돌아가시기까지 받아야 했던   힘든 순간들이 떠올라서 순간 그만 제동을 걸고 말았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어떤가 하고..



돌보아야 하는 사람  돌봄을 받는 사람인가에 따라서도, 또 그들이 나이 든 이인가  젊은 이인가 그 중간에 서있는 사람인가에 따라서도, 노인의 질병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 듯하다.

따라서 같은 상황이라 하여도 위로는 참 어렵다. 그 위로가 받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힘든 상황의 아픔을 덜어내어 주는 좋은 의미의 칼이 될 수도 있고,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칼이 되기도 한다.






나이 듦이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일이니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질병 뒤에 따라오는 죽음은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많은 것을  알고, 또 보게 해 주었다.

가족들의 맏이로서 해야 할 짐을 지게 된 순간 어르신의 그늘이 참 소중했구나 느끼는 반면에 지금 내가 진 힘든 짐을 장차 어찌할 것인가에 대하여  세대를 넘어서까지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알 것 같다.

먼저 가신 그들 모두가 좋은 스승이셨음을.

그분들이 돌아가시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상황이 어떠했든 간에 그 모습들을 통하여  앞으로 나는 결코 고 싶지 않은 모습도, 아름다운 모습도 , 나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관해서도 많은 답을 주셨기 때문이다.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미리 걱정하지는 않기로 다.

더불어 자식들에 대한 섭섭함을 내게 전하는 이에게는 그의 마음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먼저 전화해서 외로운 마음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 마음 허전함을 진심으로 위로하게 된 것이다.

아직 아프지는 않아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나를 위하여서는, 무리하지 않는 가운데 사랑하는 일들을 꿈꾸고 실행하려 한다. 

하루가 더없이 소중하다.



가끔 혼잣말을  한다.

자식들에게는 잘 자라주어 감사하다고, 그러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나는 나 자신을 잘 돌보겠노라고.



나무처럼 나이 들고 싶다.

따뜻하게 생명들을 품으면서도 의연하게 자신을 위한 치열한 삶을 사는 나무처럼.

그리고 후박나무 아래 묻히신 법정스님처럼 좋아하던 나무 그늘 아래 뿌려질 수 있다면 더욱 아름다우리라.



작지만 지혜로우노년의 소망을 표현하신

박완서 님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 날 들이다.

씨를 품은 흙의 기적은 부드럽고 따습다.
내 몸이 그 안으로 스밀 생각을 하면 죽음조차 무섭지 않아 진다.

내 주름의 깊은 골짜기로 신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내 기억 속의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해도 어느 조촐한 툇마루, 깨끗하게 늙은 노인의 얼굴에서 내 어릴 적 동무들의 이름을 되살려낼 수  있으면 나는 족하리라.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Main Photo : Photo by Anastase Marag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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