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봄날의 기억
옷 벗은 나뭇가지에는 아직 봄이 피지 않았는데, 길가 마른 잔디 속에 꽃이 피었다. 그건 화려한 꽃도 아니요, 지극히 작고 빈약한 꽃이다. 무르녹는 듯한 봄날에 어우러져 피는 벚꽃이나 복숭아꽃도 아니요. 의젓한 자태로 자랑할 수 있는 모란이나 작약같이 남의 눈을 끌 수 있는 것은 더구나 아닌, 조그만 풀꽃이다.
하필 이름이 오랑캐 꽃일까! 자줏빛 작은 꽃은 마른 풀잎 새로 가냘픈 줄기를 뽑아 올려, 아가씨처럼 고개 숙이고 피어있다.
- 이 원수'오랑캐꽃' 중에서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나르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많이 야위였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 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 있고 싶어.
- 조 동진 ‘제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