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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r 16. 2021

잊혀져가는 것들을 그리다

마음속 별이 된 것들






오후 6시가 가까워지는 시간 FM 라디오의 국악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곡이 흐르고 있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자네 자장자장
꼬꼬 닭아 우지 마라
멍멍 개도 짖지마라
...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옥을 준들 너를 사랴
...

어린 시절 내 할머니의 음성이, 손주를 재우며 조용조용 부르시던 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운 목소리들이다.





- 옛날 동요 그리고 순간의 풍경들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의 가사들이 가끔씩 머릿속에 맴돌 때가 있다. 그 노래들은 어딘가 숨어있다가 불쑥불쑥 나를 찾아온다.

그리운 날이 생각나고 느껴지는 순간에.

그 속에 담겨 있는 곡조만큼이나 아름다운 우리의 말들은 어린 시절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던 시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정서는 잊혀 간다. 문명의 이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살아야 찾을 수 있는 그림들 그리고 말들.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삶이 나날이 윤택해질수록 노랫말들은 잊혀져 다.


- 나뭇잎 배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 달마중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종일을 냇가에서 놀았다. 잔잔한 물가에 두둥실 구름이 떠있다. 고무신을 벗어 송사리 떼를 담다 본 물속 구름과, 궁금해져서 올려다본 하늘 위의 구름.


달이 휘영청 밝은 밤에 쏟아지는 달빛 아래  단짝 검정 강아지와 둘이 달을 올려다보던 시간.


나뭇잎배도, 검둥개도, 달마중도, 앵두도 무명실도 늘 우리들 곁에 있었다.

우리의 조그만 가슴속에도.


-고드름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삼한사온(겨울날, 삼일은 춥고 사일은 따뜻한 현상)이 뚜렷하던 때 눈이 내리고 난 후 날이 따스해지면 지붕에서 녹은 눈이 서서히 내려오며 얼어 줄줄이 긴 고드름을 만들었다. 그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도 하고, 놀다 목이 마르면 따먹기도 했다. 달밤이면  창에 어리던 고드름의 긴 그림자는 발을 드리운 듯, 그림자 사이로 부드러운 달빛이 작은 방안에 스며들곤 했다.

 

-반달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깍달깍 채워 줬으면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 버린 신짝인가요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쪽 발에 딸깍딸깍 신겨 줬으면


-봄맞이
산모롱이 양지쪽에 파르르
파란 풀잎 새싹들이 돋고요
하늘에는 종다리가 배쫑쫑
우리 모두 손을 잡고 봄맞이


좁은 산길을 따라 굽어진 산모퉁이를 이르는  어여쁜  말 산모롱이. 그런  길을 걸어 본 기억은 언제였던가 아득하고.... 겨우내 추위에 떨며 내던 산새들이 따스한 봄기운을 얻어 시끌시끌 지저귀는 길가의 양지 녘에는 새싹들이 움트고 있었다. 그 길 너머 보이던 하늘 끝에는 비칠 듯 말 듯 뽀얀 반달이 하늘에 떠있었다. 멀리 보이는 마을앞 다리 건너 나지막한 처마 밑 양지바른 곳에는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하신 당신의 얼마 남지 않은 날 따사한 봄빛을 즐기고 계셨다.


봄날 엄마가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어머, 벌써  봄이 왔나 봐요!

저 아지랑이를 좀 보세요."

봄빛이 눈부셔 엄마는 손을 펴서 눈썹 가까이에 대고서 실눈을 지으이야기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더워진 땅 위로 아른아른 열기가 보이는 아지랑이. 그걸 잘 모르는 꼬마도 실눈을 뜨고 먼데를 바라보며  엄마 흉내를 낸다.

"벌써 봄이네"

들판을 신발이 해지도록 쫓아다니던 우리들에게 도시에서 오신 선생님께서 책 속 장면을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우리가 이미 수도 없이 들판에서 보았을 그 아지랑이를.


 산모롱이, 꼬부랑 할머니, 치마끈, 쪽박, 아지랑이, 반달. 처마, 종다리가 배쫑쫑, 산새 모두가 우리에게서 잊혀져 가는 정감 어린 말 들이다.




-새 별과 함께 나누는 사랑


무엇을 배울 때 목적이 뚜렷하면 힘이 된다며 기타 반 선생님께서 배워서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겉장에 적어 보라고 하셨다.

기타로 이루고 싶은 나의 꿈은 무얼까?

- 100곡 완주하기(하아 욕심이 과했다), 가족과 함께 노래 부르기, 잘해서 봉사 활동하기.


이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내 손을 떠났으니 나의 작은 꿈은 미래에 손주들과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불러보고 싶은 거였다.


이미 젊은 나이에 나를 할머니로 만들어 준 아이가 있다.

윤이다. 녀석의 아빠는 나를 막내 이모라고 부르는 큰 언니의 막내둥이의 아들이다. 수없이 업어주며 자란 조카가 어느덧 아빠가 되어 나를 졸지에 할머니로 만들어 버린 거다.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자주 아이를 만났다. 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그 아이를 돌보게 된 것은 나였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비교적 나를 잘 따른다.

어느 날 함께 공원에 가서 잠자리도 잡고 미끄럼도 다. 손을 잡고 숲 속을 걷고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방 한편에 놓인 기타를 보고 아이가 좋아한다. 아이와 둘이 기타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내가 어렸을 때 부르던 동요를 들려주었다. 몇 개의 동요를 불러주었지만 아이는 잘 모르는 노래 란다.

"그럼 네가 아는 노래를 불러보렴. "

아이는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나는 거기에 맞추어 어설픈 반주를 한다.

처음에는 아이 혼자서, 나중에는 나도 함께 즐겁게 노래를 부른다.

"이번에는 할머니가 해보세요~~"

이번에는 내가 노래를 부른다.

아이는 나의 노래를 귀 기울여 듣는다.


아이는 나의 노래를 귀 기울여 듣고

나는 아이의 노래에 귀 기울여 듣는 시간.

함께 두 눈 맞추고 내 노래를 들어주던  아이가 말했다.

“할머니! 노래가 참 예뻐요, 너무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새로운 별이다. 

세대를 이어주는 별들.

윤이는 나에게 세대를 이어주는 한 순간을 전해준  새 별이 되었다. 내가 기타를 배우며 이루고 싶었던 꿈 하나가 이미 윤이를 통해 이루어진 이다.

그 새별 윤이의 마음속에도 함께 노래하던 시간이, 잊혀져가는 동요 속 풍경처럼 작은 추억이 되어 어느 날 문득 아이에게 찾아올  어여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될까?




별을 좋아하는 나는 밤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도시의 밤하늘엔 몇 개의 별뿐이지만 나는 마음속 하늘, 어린 시절 보았던 무수한 별들을 기억해낸다.


'한 사람은 작은 한 우주'다.

나의 우주 속 하늘에수많은 별들이 있다.

나는 별들에게 이름을 붙인다. 나만의 별들이다.

나를 떠난 사랑하는 이들은 큰 별들이다. 

늘 나와 함께 했던 또 다른 이들은, 운명으로 이어져 이 산등성이에서 저 너머로 함께 길을 이어간 은하수 같은 것일 게다. 

보일 듯 말 듯 흩어져 수줍게 반짝이는 작은 저 별들은 불쑥 떠오르는 희미한 나의 순간들의 추억 들일지도 모른다.


잊혀 가는 것들은 별이 되었다.

그들이 그리워지는 시간에  느끼는 아련한 그리움, 그 따뜻한 정서들은 반짝이는 큰 별들 사이에서 수줍게 한 번씩 나를 향해 눈 깜박여 줄 것이다.

비록 어느 날 나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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