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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04. 2021

꽃을 따다 지쳐, 꽃을 심다.

일의 시간,  쉼의 시간



남편이 를 불렀습니다.

미처 손쓰지 못한 산마늘 밭 사이사이에 심어둔 고추냉이 꽃들이 예쁘게 피었다고...




종일을 꽃대와 씨름 중입니다.

봄이 왔다고, 꽃 피워야 한다고.

고추냉이들이 일제히 꽃대를 피워 올렸습니다. 올해는 왜 그런지 그 힘이 무서울 정도로 더욱 강합니다. 꽃대의 시작점을 찾아내어 바싹 잘라 더 이상의 꽃대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내내 고개를 바싹 숙이고 가위질을 합니다. 무성하게 피어난 꽃대를 다 솎아서 잘라내고 나면 잎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네요(정작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잎이랍니다). 그만큼 무성하게, 절실한 꽃대들의 행진은 강한 힘을 지녔습니다.


끝도 없이 일을 하면서도 꽃이 예쁘게 피었다며  환하게 웃으며 저를 부르던 남편.

저는 어떨까요?

작년 그 꽃이 어여쁘다며 좋아하던 저는 서서히. 지쳐가는 중입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보이는 하얀 꽃밭이  일의 중압감으로 다가 오기 때문입니다. 엉덩이에 방석을 달고 쪼그리고 앉아 반복적인 가위질을 하는 내내  마음속에 하나 둘 작은 돌을 얹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도시의 친구들은 "무념무상 노동을 즐기며 마음 수양을 쌓고  돌아오셔, 너무 일에 치여 무리는 말고"... 힘들다는 저를  이렇게 위로하곤 합니다만.

마음 그리 먹는 일이 쉽지 않네요. 몸 여기저기서 아픈 신호를 보낼 때면 말이지요. 허!


점심을 먹고 잠시 쉬는 시간. 호미를 들고 꽃을 심으러 갑니다. 작년에 심어 두고 돌보지 않은 채 겨울을 맞았던 샤스타데이지 꽃이 추운 겨울을 잘 견디고 살아남아 있습니다.  얼기설기 뿌리가 얽힌 포기들을 잘 나누어 하우스 주변에 돌아가며 꽃을 심느라 점심 휴식 시간을 모두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넉넉히 물을 주며 잘 살아나기를 기원합니다.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시며 심은 꽃들을 잠시 바라봅니다. 

꽃은 따는 일도, 심는 일도  다 흙과 함께 하는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을 심는 시간은 꽃 따느라 힘들었던 시간을 쪼개어하는 일이어도 힘이 들지가 않습니다.

참으며 하는 일이 아닌 까닭일까요?

그 마음은 고된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을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맘과 비슷한 것일까요?


노동이 정신수양에 도움이 려면 지나침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욕심이 없는 노동이라면... 농사일이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농사가 농산물 판매를 위한 일이 되어갈 때 그 크기가 커지는 만큼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수양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농산물을 키워내고 판매를 위해 수고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고단한 일 임을 이제는 조금 압니다. 선배 농사꾼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그럼에도 그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은  한계를 인정하고 맙니다.


꽃을 심는 순간은 쉼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일이 힘들 때마다 한 번씩 그 꽃들이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을, 꽃이 피는 것을 보러 갈 것입니다. 추위를 견디고 살아남은 식물들의 기운이  잠시 저를 웃게 하겠지요. 

그곳이 제 쉼의 장소, 그 시간이 쉼의 순간이 되어 주리라 믿습니다.


못하겠어. 홀연히 확 치우고 떠난다면... 정말 멋있을 겁니다(홀로 일어서기).

아니면 완벽하게 적응하기..(시간이 지나면)

그도 저도 아닌  저는 그저 꽃을 심으며 소박한 나만의 위로 처, 아주 작은 *케렌시아를 꿈꿉니다.

(*투우 경기장에서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라는 뜻으로, 자신만의 피난처 또는 안식처를 이르는 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읽은 짧은 글 중에 '나는 완벽하지 않다. 또 그렇게 살려고 하지도 않는다'라는 글귀가 오늘을 돌아보는 시간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시골에 오면서 채송화, 한련화, 만수국, 금잔화, 백일홍, 해바라기, 스피아민트 등 여러 가지 꽃씨를 챙겨서 내려왔습니다. 산 꽃씨도 있고, 여행길에서 채집한 씨앗도 있습니다.  잘 살아날지 몰라서 순차적으로 조금씩 파종을 하려 합니다.

주말 비가 온다는 소식에 어제 몇 개 꽃씨를 심었습니다. 혹시 야외에서 발아가 안될 것을 대비에 온실 속에서도 파종을 할 예정입니다.


마음에 작은 돌덩이가 얹힐 때마다 새로운 꽃을 주변 여기저기에 심기로 했습니다.

나리. 채송화, 한련화....

그리하여 내년이 될지. 후년이 될지...

온통 하우스 주변이 꽃으로 뒤덮이는 날이 온다면 그제야 남편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추위를 이기고, 제 무심함도 넉넉히 받아준 데이지 꽃처럼  그때쯤이면  무섭게 맺히는 꽃대들을 다시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요.


제 인내심이 더는 힘들다고 채근하는 날이면 아직은 도시의 제 공간으로  돌아가곤 하렵니다.

책도 보고 몸도 쉬어 충전이 되면 나의 꽃들이 궁금해질 것이고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들을 만나러, 아물어가는 상처들을 돌보러.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아직은 산 모퉁이에 잔설이 드문 드문 남은 이곳 산골짜기에도 긴 추위를 뚫고 봄이 진달래며 산동백 꽃과 함께 슬며시 왔습니다.

가장 바쁜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제 일상에도  슬며시 따스한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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