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양복점
아빠는 양복점 사장님이셨다. 사거리에 위치한 2 층 건물 1 층에 세를 들었다. 상가 진열장은 두 면이 유리다. 완성된 양복이 토르소마다 멋지게 입혀져 있다. 엄마는 새 양복이 반짝이도록 새벽마다 유리를 닦아 놓았고 지나던 사람들이 이따금 발길을 멈췄다. 아빠의 재단 작업대엔 전지 크기의 재단 종이, 긴 줄자와 대나무 자, 여러 모양 곡자 그리고 연필, 인체모양 본이 인쇄된 주문서, 납작한 삼각 모양 초크가 색깔대로 있다. 또 가봉용 핀, 재단 전용 큰 가위가 있다. 하양 와이셔츠를 입고 귀에 연필을 꽂고 줄자를 목에 걸고 재단할 때의 아빠는 정말 멋졌다. 나머지 벽면엔 양복 옷감들이 계절별 색감별로 길게 죽 늘어뜨려 진열되었다. 양복점에서 문 하나를 열면 재봉틀 몇 대와 다리미 등이 있는 작업실이 나온다. 여기선 아저씨들이 각자 맡은 부분을 나누어 일을 한다. 천정에 걸린 전깃줄과 형광등. 여러 개의 다리미 줄이 어지럽다. 여름마다 쌩쌩 도는 일제 선풍기, 카세트 라디오, 작업 중인 양복과 풀 그릇, 여러 종류의 실과 재봉틀용 북실. 작업실엔 다림질할 때 나는 특유의 냄새가 항상 고릿하거나 구수했다. 작업실 지나면 방 또 문 하나를 열면 부엌이 나온다. 가족 6 명이 한 방에서 지냈다. 방이 비좁아 나와 여동생은 방에 딸린 다락에서 꽤 오래 지냈는데 바로 부엌 천정이다. 다락 공간의 반은 이미 잡동사니로 꽉 찼고 겨우 이부자리만 깔고 잠만 잤다. 양복점은 꽤 잘 되었다. 어느 날 방안에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새로 들였다. 돈을 번 아빠가 대단해 보였다. 냉장고의 냉기가 갇힐 새 없이 여닫다 혼나곤 했다. 엄마가 사 놓은 주스 가루로 하드 모양 틀에 셔벗을 얼려 먹고 엄마는 김치를 오래 둘 수 있고 얼음을 사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하셨다.
앨범을 뒤적이니 냉장고 앞 밥상 위에 분홍색 꽃 모양 크림으로 장식한 케이크를 놓고 식구들이 환하게 웃는 칼라 사진이 있다. 그 시절엔 맘껏 먹기 어려운 병 콜라, 사이다, 환타를 크리스털 잔과 머그잔에 따르고 짠! 건배를 한다. 크리스마스였나 보다. 막내가 안 보이는 걸 보니 예닐곱 막내가 찍은 사진이다. 30 대의 젊은 아빠는 줄무늬 잠옷 엄마는 베이지색 한복을 입었다. 난 단발머리에 체크남방에 조끼를 덧입었고 한 살 아래 남동생은 까까머리 중학생, 곱슬곱슬 긴 파마머리의 여동생. 이렇게 웃던 날이 있었다. 사진 한 장에서 꽤 오래전 시간이 손끝으로 줄줄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