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속닥속닥'
무어라도 속닥이고 싶은 어느 봄날 오전 아홉 시.
둑길로 들어섰다. 길 끝 주유소까지는 바람, 햇살, 까만 칠을 한 들판, 아기 고양이들, 논밭 사이에서 꼼작거리는 낮은 지붕들 이 모든 마을 풍경이 내 것인 양 걷는다. 한 발작 걸을 때마다 햇빛이 머리, 어깨 위로 파사삭 웨하스처럼 부서진다. 눈이 아른 대며 등허리는 따끈하다. 내가 '바람세탁소' 라 이름 붙인 나무 앞에 도착할 쯤 'I Love' 란 영자 박힌 빨강 옷을 입은 코코아색 강아지가 불쑥 나타났다. 생뚱맞은 만남이다. 우리 집 강아지들이랑 달라 보인다. 고가의 미용실도 다니는 것 같고 거의 사람 취급을 받는 녀석인듯싶다. 내 발뒤꿈치에 킁킁거리며 따라붙었다가 어디선가 주인의 부름에 코웃음 치듯 주둥이를 쳐들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냉큼 돌아갔다.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둑길 아래 들판은 아까부터 속닥속닥거렸다. 쏙쏙 여기저기서 키 작고 보송보송한 쑥들이 유치원 아기들처럼 작은 손을 다투어 흔든다. 봄. 봄물이 꼴깍꼴깍 저 땅속으로부터 넘어오는 중이다. 무어라도 하고 싶어 간질거리는 흙이 기침하듯 보슬거리고 움츠렸던 벌레들이 깨어난다. 화려하게 치장하는 나비의 날개와 벌들 모두 Spring처럼 팡팡 튀어 오르고 싶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