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나 어렸을 적

옛날 극장

by 바람세탁소

할머니 댁으로 가기 위해 금촌행 시외버스를 탔다. 차멀미 심한 나를 위해 창가 쪽 자리를 내어 준 아빠는 창문을 열어주며 코를 대고 있으라거나 먼 산을 바라보라고 했다. 아빠의 말씀대로 좀 나아졌다. 연년생인 남동생은 차를 타자마자 신나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하며 창밖을 향해 노래를 불러댔다. 막 돌 지난 막내는 포대기 안에서 버둥거려 좁고 꽉 찬 시외버스 안에서 엄마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사 형제 중 셋째 여동생은 북실북실 하얀 얼굴에 속눈썹이 길었다. 나풀거리는 원피스에 파마머리가 귀엽고 예뻐서 어른들이 무릎에 잘 앉혀 주곤 했다. 터미널에서 내려 길고 좁은 시장 골목을 지났다. 들깻묵 냄새가 진동하는 기름 가게를 지나 반지르하게 참기름 바른 떡집 앞을 지나는 건 꿀맛이었다. 좁은 시장 길목마다 명절 대목 장이 서서 시끌시끌했다. 아빠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담배를 두어 보루 샀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음식 준비를 해야 해서 앉을 틈 없이 바빴다. 할머니는 큰 아들이 반가워서 이것저것을 물으시곤 했다. 동생과 나는 경로당에 말 가신 할아버지를 모시러 갔다. 할아버지는 친구분들께 손주들이라며 자랑스레 소개했다. 할아버지의 양손에 한 사람씩 매달려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커지셨다.


"예들 뭐 좀 먹을 것 좀 주지!!"


할머니는 컴컴한 다락방에서 뻥튀기며 센베 과자를 내어주셨다. 고모들이 사다 드린 사탕이며 연양갱까지 아껴두었다가 손주들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다. 큰집에서 차례와 성묘를 마친 친지들이 할머니 댁으로 모여드는 저녁엔 대문 밖 마당에 둥근 멍석이 깔렸다. 조그만 아이들부터 극성쟁이 녀석들까지 깔깔거렸다. 난 머리에 쪽 진 할머님들이 신고 오신 하얀 고무신들이 뒤엉킨 마루 밑을 정리했다. 아마도 어른들의 진짓상이며 술상을 엄마 혼자 감당하시는 것이 힘들어 보여 그랬나 보다. 큰 방으로는 연신 뜨듯하게 데워진 정종 주전자가 들어갔고 나중 도착한 고모들 고모부들이 모여 화투를 치는 작은방에는 나를 비롯하여 몇몇 아이들이 담요 위에서 오고 가는 동전에 눈이 반짝거렸다. 꽤 큰 용돈을 쥐여주시는 고모부들, 예쁘고 세련된 옷차림의 고모들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친지들이 하나둘 돌아가고 나면 엄마는 마지막 설거지를 끝내고 혹시 아깝다고 끓여 드실지 모를 먹다 남은 음식들을 할머니 모르게 치우곤 했다. 방 안이며 마루 마당까지 정리하고 나니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많이 늦어졌다. 북적이던 집에 두 분만 계실 것을 생각하니 엄마 아빠의 마음이 편치 않으셨는지 되도록 막차시간 전까지 더 머무셨다. 할머니는 한 가지라도 더 챙겨 주느라 자꾸만 생각을 더듬어 참깨, 미역, 호박 몇 개... 아껴둔 감자며 옥수수 몇 자루까지. 보따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우린 버스 대신 택시를 탔다. 큰 보따리 여러 개와 여섯이나 되는 식구들이 택시를 타는 건 결코 비싼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많으면 택시를 세우기 힘들어서 아빠가 혼자 택시를 잡고 우리는 나중에 한 사람씩 차에 꼭꼭 끼여 탔다. 일 년에 몇 번 탈까 말까 한 택시 타기는 대단한 즐거움이었다. 기사 아저씨는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명절이라 이해해 주었다. 요즘 명절 풍경이야 많이 달라졌고 간소해져서 내가 자란 어린 시절의 풍경들은 잘 볼 수 없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마치 누렇게 변색된 옛날이야기책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니 좀 쓸쓸하기도 하고 미소 짓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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