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구독으로 가는 ‘애플’ vs 광고를 지키려는 ‘페이스북’
#아이패드 신제품보다 더 주목받은 ‘애플 원(Apple One)’
작년 9월, 애플은 신제품 발표 이벤트를 개최했고 늘 그렇듯 애플워치와 아이패드 등 신제품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아이패드보다 더 주목받은 건 ‘애플 원(Apple One)’이라는 콘텐츠 구독 상품이었다. 애플 TV플러스, 애플 뮤직, 애플 뉴스플러스, 애플 피트니스 등 애플의 콘텐츠 서비스들을 하나의 구독 상품(월 14.99달러, 한화로 약 16,000원 - Individual 모델 기준)으로 통합한 것인데 미국 현지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은 이후 애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러한 반응이 이해가 되는 건, ‘애플 원’의 런칭은 기존 하드웨어 기업이었던 애플이 콘텐츠 서비스로 전환되고 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애플이 꿈꾸는 건 분명하다. 애플에서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구축하여 고객이 애플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플이 가장 노력하고 있는 것이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다. 넷플릭스가 ‘왕좌의 게임’ 같은 오리지널 콘텐츠로 소비자를 락인(Lock-in)시켰던 것과 같은 방식이다. 예를 들어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그레이하운드>는 애플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TV플러스’를 통해서만 시청이 가능하다. 영상 외에도 뉴스, 음악, 운동 등 ‘애플 원’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는 이제 애플의 주력 서비스가 될 것이며 콘텐츠 때문에 아이폰을 구매하는 모습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애플이 자사의 비즈니스 체제를 ‘디지털 구독’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면,
페이스북은 ‘디지털 광고’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 플레이어다.
#디지털 광고 시장을 주도하는 페이스북
미국 디지털 광고시장 매출이 사상 최초로 TV와 신문 등 전통 매체를 모두 합친 매출을 앞질렀다고 한다. 특히 구글과 페이스북, 아마존은 디지털 광고시장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이스북은 광고 불매운동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난 3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광고수익이 22% 증가했다. 코로나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사람들의 디지털 거주 시간이 늘어나면서 페이스북의 광고수익도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으로도 기업들의 마케팅 비용에서 디지털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마케터는 없을 것이다. 페이스북도 디지털 광고 시장의 확장에 집중하고 있는데 인터넷기업협회가 공개한 정기현 ‘페이스북 코리아’ 대표의 인터뷰를 보면, “기업에서 광고를 투자 대비 수익률의 관점으로 타겟팅 기술을 더 정교하게 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 또한 소비자들의 데이터 보호에 더 힘쓰는 방향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향후 관심사가 ‘타겟팅 기술의 정교화’와 ‘개인 정보 보호’라는 것인데, 결국 디지털(퍼포먼스) 광고의 핵심 가치인 ‘타겟팅’을 더 정교화하여 광고주의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말이며 개인 정보 유출에 대한 소비자 우려를 해소시켜 안정적인 광고 시장 구축에 힘쓰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페이스북의 주요 매출이 광고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방향성이다.
#구독과 광고는 상호 양립할 수 없는 관계다
한 쪽은 ‘구독’을 주력 모델로, 한 쪽은 ‘광고’를 주력 모델로 디지털 세상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지점은 애플과 페이스북이 각기 다른 길로 걸어가는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 ‘구독’과 ‘광고’는 한 쪽이 상승하면 다른 한 쪽은 하락하는 상호 손익관계가 분명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이다. 쉽게, 한정된 파이를 나눠 먹어야 하는 모델이다. 무슨 말일까?
과거 아날로그 시대부터 소비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플랫폼은 광고를 시청하는 플랫폼의 역할도동시에 수행했다. 예를 들어 TV로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는 시청 전후로 광고를 시청해야 했다. 대중은 광고를 보는 대신에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고, 광고주는 플랫폼(방송국)에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들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광고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모바일 스크린 화면 안에서는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된다. 구독이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이용하더라도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월 구독료 9,500원)하면 광고없이 영상을 볼 수 있으며 ‘넷플릭스’, ‘멜론’, ‘밀리의 서재’ 등 디지털 콘텐츠 구독 서비스에는 광고가 없다. 소비자가 플랫폼(구독 서비스)에 비용을 직접 지불하기 때문에 광고를 안 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인터넷 유저라면 구독자가 되든 비구독자가 되어 광고를 보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튜브 프리미엄’에 가입하든 ‘유튜브’를 무료로 이용하든 선택을 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구독 모델’과 ‘광고 모델’은 상호 손익관계가 발생한다. 실제로 디지털 구독화가 잘 진행되었다고 알려진 ‘뉴욕타임즈’를 보면, 구독 매출이 증가한 만큼 광고 매출은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뉴욕타임즈’에서는 늘어나는 구독자만큼 배너 광고 지면이 사라지고 있다.
#광고 중심 vs 구독 중심, 향후 인터넷 생태계의 방향성은?
향후 인터넷 생태계의 방향성은 두 가지로 나뉜다. 광고주가 비용을 지불하는 ‘광고 중심’의 인터넷 생태계와 소비자가 비용을 지불하는 ‘구독 중심’의 인터넷 생태계, 둘 중 하나의 방향성으로 인터넷 생태계 헤게모니가 움직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광고주로부터 비용을 받고 사용자들의 앱 사용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타겟팅 광고’를 서비스하는 기업이며, 애플은 월 14.95달러를 소비자에게 받고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기업으로 진화할 것이다.
두 IT 공룡이 그리는 방향성은 양립하기 힘들며, 인터넷을 바라보는 두 플레이어의 관점 차이는 향후 치열한 다툼을 예상케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것이 현실이 되고 있다.
#페이스북의 선전 포고로 시작된 인터넷 주도권 싸움
‘페이스북’은 미국 현지시간으로 16일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의 주요 일간지에 ‘애플’을 공개적으로 저격하는 신문광고를 게재했다. “소상공인들을 대신해 애플에 맞서겠습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광고는 1,000만 개의 기업과 매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하고 있는데, 애플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페이스북의 광고 도달을 제한하려 한다고 항의하는 내용이다. 전세계를 주름잡는 기업이 자신들만큼 거대한 기업에게 대놓고 저격 광고를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심지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회사 임직원들에게 아이폰을 쓰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감정의 골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깊어 보인다.
‘페이스북’이 ‘애플’을 저격한 이유는 애플의 ‘iOS 프라이버시 정책’ 때문이다. 정확히는 광고 모델을 사수하기 위해서다. 앞서 논했듯이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의 인터넷 사용 정보를 수집하여 ‘타겟팅 광고’를 서비스하고 있으며 ‘타겟팅 광고’는 페이스북의 대표적인 상품이다. 연령, 관심사, 지역, 기존 웹 방문 이력 등 다양한 정보들을 수집하여 정교화된 타겟팅으로 광고주가 원하는 대상(페이스북 유저)에게 광고 노출을 가능케 한다. 즉, ‘페이스북’의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디지털 상에서 수집한 ‘고객 개인의 정보’다. 그런데 ‘애플’은 내년 초(예정)부터 앱이 광고 등을 목적으로 이용자 데이터를 수집할 경우 이용자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기능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제 ‘페이스북’은 자신의 정보에 접근해도 된다고 동의한 소비자 만을 대상으로 타겟팅 광고를 노출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광고 목적으로 내 정보에 접근하는 권한을 쉽게 내어줄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애플’의 이러한 정책 변화가 자신들의 비즈니스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생존이 걸린 문제인 것이다.
다만, ‘페이스북’이 긍정적인 여론 형성을 위해 내세운 명분은 ‘소상공인’이었다. ‘페이스북’의 타겟팅 광고는 TV나 신문 등 다른 광고 상품 대비 저렴한 가격에 효율적으로 타겟팅이 가능하여 많은 소상공인이 이용했는데 애플의 정책으로 인해 타겟팅 광고가 어려워질 것이고 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애플’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용자에게 자신의 데이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확인하고 선택할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플’의 ‘팀쿡’ CEO는 최근 팟캐스트에 출연해 "우리는 고객들의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습니다. 그걸 위해 사업을 하지도 않고, 우리가 사업을 하는 이유 또한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데이터를 수집해 광고하는 ‘페이스북’의 비즈니스 모델을 부정해버렸다.
#향후 인터넷 생태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뉴욕타임즈는 “이 싸움의 핵심은 페이스북과 애플의 돈을 버는 방식이 정반대 방식이라는 점이며, 어느 회사가 이기는가에 따라 앞으로 수년간 인터넷의 모습이 바뀔 것”이라고 짚었는데 굉장히 공감이 가는 분석이다. 두 기업은 각각 소상공인과 프라이버시를 명분 삼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을 향후 인터넷 생태계가 광고 중심으로 전개될 지, 구독 중심으로 전개될 지에 대한 헤게모니 싸움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 헤게모니 싸움에 전세계 광고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 기업 ‘페이스북’과 전세계인에게 하드웨어를 팔다가 이제 구독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기업 ‘애플’이 제대로 맞붙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구독으로 향하는 ‘애플’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것에 한 표를 주고 싶다. 그 이유로는 개인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활용한 타겟팅 광고는 점점 설자리를 잃을 것이다. 또한 2020년대 핵심 소비층인 MZ세대는 광고 없는 콘텐츠 경험을 원하며,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저렴한 비용으로 ‘무제한 경험’이나 ‘맞춤화된 경험’을 제공해주는 구독을 선호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애플과 페이스북의 싸움은 기업 간 다툼을 넘어 향후 인터넷 방향성이 좌우될 인터넷 전쟁이 될 것이며, 결과를 예측함에 있어서는 더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필요해 보인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정보 보호 관점과 MZ세대 관점, 그리고 기업 관점에서 왜 구독으로 향후 인터넷 생태계가 전개될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하여 논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