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블러 시대가 비즈니스에 끼친 영향의 본질
#나이키의 경쟁자는 인스타그램이다?
나이키의 경쟁자는 왜 아디다스가 아니고 인스타그램일까요? 넷플릭스는 왜 본인들의 경쟁자를 포트나이트라고 할까요? 보통 기업이 본인들의 경쟁자가 누구인지 이야기할 때, 같은 산업의 경쟁자가 아닌 새로운 관점에서 예상치 못한 경쟁자를 거론하는 경우를 흔치 않게 접해왔을 것입니다. 흔히 자신들이 더 넓은 시야를 가졌으며,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수법이죠. 실제로 2019년 1월 넷플릭스는 주주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우리의 경쟁자는 포트나이트라고 말했는데요. 고객의 시간을 놓고 경쟁한다는 측면에서 OTT 서비스가 아닌 게임을 경쟁 상대로 보는 자신들의 신선한 관점을 어필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산업의 경계를 넘나들며 경쟁자를 찾는 기업들의 모습을 마케팅 수법만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의 시대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빅블러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빅블러’란 미래 학자 ‘스탠 데이비스’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흐릿해진다는 의미의 블러(blur)에서 착안하여 ‘발전한 기술을 매개로 서로 다른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며 융합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스마트폰이 카메라, 오디오 등 기기나 콘텐츠, 금융, 인터넷 등 모든 산업을 흡수하면서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진 게 대표적이죠. 간편결제 시장을 예로 들어 볼까요? 현금, 카드가 아닌 스마트폰에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OO페이’라는 이름으로 간편결제 앱 서비스를 출시했죠.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KB페이, 배민페이, 당근페이, SSG페이 등 은행사부터 카드사, IT 기업, 심지어 유통사까지 앞다투어 페이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이제 간편결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모양새인데요. 모든 경제활동에는 비용을 결제하는 행위가 발생하다 보니, 어느 기업이나 기술만 있다면 자사의 간편결제 서비스를 출시하고 이용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간편결제 서비스는 특정 산업에 속하지 않은 빅블러 시대의 대표 서비스가 된 것이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은 어떤 산업, 어떤 기업이 우리의 적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DVD를 대여해주던 넷플릭스와 종이책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던 아마존, PC를 판매하던 애플이 OTT 산업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국내 금융사들은 카카오톡을 서비스하던 카카오가 본인들의 경쟁사가 될 줄 몰랐을 것이구요. 스포츠 용품 브랜드였던 나이키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다양한 앱 서비스를 출시하며 새로운 경쟁자와 경쟁하고 있는데요. 그 중 나이키가 선보인 ‘NbG(Nothing but Gold)’라는 서비스는 (*현재 베타 서비스가 종료되고 정식 출시 준비 중입니다) 스포츠와 스타일, 셀프케어에 관심 많은 Z세대 소비자들이 패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서비스입니다. 운동화나 의류 등 스포츠용품을 만들던 브랜드가 소셜 서비스를 만들었고, 이제 인스타그램이나 틱톡과 경쟁하는 사이가 된 것이죠.
빅블러 시대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무형의 디지털로 서비스가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옛 아날로그 시절에는 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진출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공장도 새로 만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유통망을 새로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큰 비용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유능한 기획자와 개발자만 있다면, 최소한의 비용 만으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으며 이를 디지털로 유통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역을 쉽게 넘나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 사업 아이템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장을 찾아 과감하게 피봇팅(pivoting)하는 전략은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필수 전략인데요. 최근 4050 여성을 겨냥한 버티컬 의류 커머스로 로켓성장 중인 퀸잇의 경우도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서비스를 런칭했다고 합니다. 경제뉴스를 모아서 요약, 정리해주는 비즈톡 서비스나 데이팅 앱 등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퀸잇을 통해 PMF(Product Market Fit, 시장 적합성)가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것이죠. 브이씨엔씨(VCNC)도 지금은 모빌리티 플랫폼 ‘타다’를 서비스하지만, 과거에는 커플들을 위한 SNS ‘비트윈’을 서비스했는데요. 이처럼 디지털 시대에는 산업에 구애받지 않고 경계를 쉽게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을 기업들은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빅블러 시대가 비즈니스에 끼친 영향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업계 중심에서 문제해결 중심으로
빅블러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업이라면 우리가 속한 업계가 어떤 업계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업계에서 통용되어온 관습, 업계 내 경쟁을 고려한 전략 설정 등은 중요치 않죠. 오직 고객의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줄 것인가만 고민하면 됩니다. 사실, 고객 입장에서도 내가 이용하는 서비스의 기업이 어떤 카테고리에 속한 기업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그 서비스가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해주는 지만 중요할 뿐이죠. 카카오가 원래 금융업이 아닌 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만족할 수 있는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지가 중요할 뿐이죠.
빅블러 시대는 기업의 시야를 업계 중심에서 문제해결 중심으로 넓혀주었습니다. 과거처럼 “나는 스포츠 용품 브랜드이니, 아디다스나 언더아머가 경쟁사야”라고 생각한다면 경쟁에서 뒤쳐질 것입니다. 우리 제품이 속한 산업의 관점에서 사고하지 말고, 우리가 해결하려는 고객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서비스에 집중하는 문제해결 중심으로 사고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나이키를 살펴볼까요?
나이키는 본인들을 운동화나 운동복을 만들어 파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여가 시간에 운동이라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NTC(Nike Trainning Club)나 NRC(Nike Run Club) 같은 앱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죠. 운동을 더 즐기기 쉽게 만들어 주는 앱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여가 시간에 넷플릭스 보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나이키는 본인들이 구축한 디지털 플랫폼에서 소비자에게 운동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해주고 건강을 관리해주면서, 어느덧 여가 시간에 소비하는 콘텐츠의 대표주자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카카오게임즈의 남궁훈 대표도 본인들의 경쟁사를 나이키로 꼽은 것이겠죠. 여가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콘텐츠로 게임과 운동이 겹친다고 본 것이고요.
빅블러 시대의 기업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안개 속을 걷는 듯한 기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식상한 멘트지만)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 했습니다. 모든 산업의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 그럴수록 산업을 넘어 우리 브랜드가 가진 문제해결 능력에 집중한다면 그 어느때 보다 시장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제 기업들은 본인들이 속했던 업계 중심으로 사고했던 습관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지 고민해야 할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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