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날의 그 때가 생각날 때가 있다.
22년 3월 16일. 코로나 감염환자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우리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났고, 아이와 우리 부부는 하루차를 두고 PCR검사결과 양성 결과를 받고 격리에 들어갔다. 아이랑 격리를 따로 하게되면 회사 출근도 그렇고 아이 케어에 어려움이 있으니 차라리 다같이 격리하는게 좋겠다 생각했는데 나름 잘 됐다며 우리는 슬기로운 격리생활에 돌입했다.
며칠 후 어떤 일이 닥칠지 까맣게 모른 채.
격리 삼일째였던가?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등이 빡!하는 느낌이 들어 잠이 깼고, 가끔 어깨와 등 통증이 있었던 터라 좀 더 심해진건가 싶어 진통제를 한 알 챙겨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도 세식구 세 끼 챙겨먹으며 나름 격리생활을 즐겼고, 약간 생리통 있을 때 처럼 골반 뒷면이 아리게 불편한 정도만 있었던 것 같다.
그 날 저녁 잠들기 전에 소변보기가 조금 어렵네 느꼈고, 화장실에 나오는데 걸음이 좀 왜이렇지? 다리가 좀 피곤한가싶어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쉬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는데, 다리가 너무 무겁고 뭔가 감각이 없는 느낌? 어? 머리로는 발을 움직이고 싶은데 눈에 보이는 내 두 다리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병원에 가야겠구나 생각했고 119를 눌렀으나 나는 격리 환자라 보건소에서 병상을 지정해줄 때까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증상은 밤 10시쯤부터 그랬고, 폭증한 코로나 환자들 때문인지 보건소 전화 연결조차 쉽지 않았다. 새벽동안 몇 번을 부탁도 해보고 호소도 해보았지만, 기다리라는 말 뿐...
아.. 뉴스에 나오는 그런 상황이 된건가? 내가?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열까지 나서 오한에 오들오들 떨기시작했다.
결국은 다음날 오후 2시에 병원이송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대기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디스크 걸릴만큼 내가 운동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던가? 의문을 품으며 지금 겪고 있는 이 증상이 하반신 마비증상이라고 볼 수 있나싶어 심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음날 오후 2시 보건소에서 사설 구급대원을 보내오기로 했기에 침대를 벗어나 나도 현관까지는 나가야되지 않나 싶어 남편이 아이디어를 내어 나를 바퀴달린 의자로 옮겼다.
나중에 신랑이 그랬다. 그 때 바닥에 끌리는 니 다리를 보면서 처음으로 심각함을 느꼈다고... 나도 그랬다. 의자에 실리기는 했으나 다리는 마치 남의 다리처럼 내가 하고자하는 행동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땅에 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곧 무장한 구급대원분들이 와서 현관에서 나를 들어올려 의자차에 실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구급차 뒷칸에 나를 옮겨놓았다.
그날의 하늘은 흐렸고, 어둡고, 비가 왔다.
어차피 아이때문에라도 같이 못 왔겠지만 우린 다 격리자 였으므로 나는 그 때 부터 철저히 혼자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호송된 병원에서도 내 상태를 정확히 몰랐으니 일단을 나를 휠체어로 옮겼고, 폐 CT부터 찍었어야 했는데 남자 직원이 나를 겁없이 일으켜세웠다가 나는 낙상할 뻔 했다.
사실은 나도 내 상태가 어떤지 몰랐으므로 내가 잠깐 정도는 딛고 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하반신은 그야말로 힘이 하나도 안들어가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 남자 직원과 놀라서 달려온 다른 여자직원이 나를 들어올려서 CT를 찍고 격리병동으로 이송되었다.
침대로 옮겨지고, 전날 잠들고부터 못 본 소변이 차서 배가 부풀어있어 소변줄부터 좀 해달라고 말했던 것 같다. 마비되는 느낌은 다리,골반 점점 상체로 올라오는 것 같았고, 그 때 부터 소변,대변도 멈춰버린 모양이었다.
오후 3시쯤 소변줄을 꽂고, 이제 입원짐을 푸나 했더니 다른 간호사가 헐레벌떡 와서 전하는 말이 타 병원 전원. 큰 도시 대학병원으로 나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이송하러 온 119구급대원 세 분과 인턴선생님 한 분까지 우리는 큰 도시 대학병원으로의 그렇게 짧고도 긴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