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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신이 안 움직여요 저 병원에 좀 들여보내주세요...

by 꿈꾸는댄서

00대학병원으로 옮긴다고 들었고, 출발하기 전에 구급대원들끼리 자못 심각한 분위기였다. 언뜻 들리기로는 상황 안 좋으면 세우자. CPR 할 수도 있다고..차라리 못 알아들었으면 좋았으려나?


그러나 나는 간호사고, 병원에서 일 안한지는 오래됐지만 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근데 내가? 내가 심폐소생술 대상이 된다고? 왜? 나 지금 상반신은 멀쩡한데?


나중에 알고보니 처음 간 병원에서 길랑-바레 증후군을 의심했다고 한다. 마비증상이 다리,골반으로 점점 올라와 심장에 다다르면 심장이 멈춰버릴 수 있다고, 그래서 심폐소생술을 해야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 전에 남편한테 전화해서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전화를 받은 남편의 심정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정도 되면 구급차에 같이 탄 분들이 얼마나 긴장하고 탔을지...


게다가 이송하는 중간에 상황 돌아가는 걸 보니 병원 입원도 쉽지 않아 보였다.


구급대원과 보건소 관계자가 통화하는 걸 들으니 병원이 완전히 정해진채로 출발한 것 같지도 않고, 알고 보니 00병원이 아니라 AA병원으로 가는 거였고, 그렇게 1시간 반 달려 저녁 6시가 넘어 AA병원앞에 갔더니 그 병원에서는 들은 바도 없고 입원할 자리도 없단다. 허허참...


넘쳐나는 코로나 환자로 병원들이 마비상태라는 걸 뉴스에서 봤는데, 내가 직접 겪을 줄은 몰랐네...


AA병원 앞에는 여러대의 구급차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고, AA병원 응급실 과장의사가 와서 자기네 병원으로 환자를 던져버린 보건소와 이전 병원을 향해 쌍욕을 하는 걸 나는 구급차 침대에 누워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다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왜 하필 자기네 병원으로 온거냐고 나한테 소리치는데 ....나 보고 어떡하라고?


구급대원 분들도 전국적 상황이 안 좋아서 여기서 발길 돌리면 다른 데 어디에도 입원이 어렵다고 귀뜸해주셨었고,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여기서 발길 돌린다고 할 수는 없었다.


몇 시간 기다리게 될 줄 모른다는 것,

기다리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기네가 책임 못진다는 것 등등의 현실적이고 협박으로도 들릴 법한 말들을 길게 듣고서는 나는 기약없는 기다림에 동의했고, 대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의료진이 와서 개인정보를 확인하고, 문진도 하고, 열도 재고, 하얀 천 덮어씌워서 카트 채로 응급실에 들어가 CT를 찍고 다시 구급차로 돌아왔다.

구급차 문이 열릴 때 잠깐 본 하늘은 깜깜했고, 또 비가 오고 있었다.


일이긴 하지만 오후 4시경 부터 깜깜한 지금까지 끼니도 제대로 못먹고 대기하는 구급대원분들과 인턴쌤에게 미안해서 중간중간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본인들을 괜찮다고 나를 위로해줬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밤 10시쯤 넘었던 것 같은데, 격리 응급실로 입원이 결정되고 정해진 입구로 나를 실어나르는 그 분들께 너무 고맙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건냈다.

간호사가 해열제와 항생제를 달아 주러 왔고, 그날 밤 12시가 넘어서야 신경과 의사가 와서 뇌척수액 검사를 했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검사를 해보는 구나,,,고무같은 다리를 만지면서도 생각보다 나는 덤덤했다. 의사 말대로 나는 굉장히 협조가 잘 되는 환자였기에 검사는 한번에 끝났다.


사지 감각이 어떤지 검사도 한참 동안 했고, 남편은 격리자라 올 수 없었으므로 친정아버지가 보호자로 오기 전까지 덩그러니 혼자였다.


아버지가 오고나서는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사이는 기억이 안난다. 호박죽을 사다달라고 해서 침대에 누운채로 조금 덜어 먹었다.

그 사이 아빠는 내 소변이 얼마나 나왔는지 소변줄 통에 양을 카운트했던 것 같다.


잠깐 아버지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때서야 집에 두고 온 아이가 생각이 났다. 눈 앞이 흐려지는 찰나, 문이 열리면서 의사 쌤이 들어온다.


신경과 레지던트였던 그.

첫 만남에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말을 건냈다.

"왜 울어요?"

급하게 눈물을 훔치고 정신을 차려본다.


신경과 교수님도 와서 검사 결과들을 말해줬고, 의심가는 진단도 알려줬지만 진단에 가장 중요한 검사는 MRI인데 내가 코로나 격리가 끝나야 찍어줄 수 있다고했다. 아직 며칠 남았는데..


며칠 후..격리 끝나는 날 밤 12시 보다 쪼금 앞서 MRI를 찍을 수 있었다.

땐 교대근무를 하고 병원으로 달려오느라 잠 한숨도 못자고 온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바톤 교체를 한 상태였는데, 그렇게 강해보이던 엄마는 누워있는 나를 보며 당혹스럽고 두려워했다.


검사실에 가야할 때는 투명 격리 카트에 실려 다녔는데, 뉴스에서 본 장면을 코 앞에서 자식이 겪고 있으니 엄마는 너무 충격받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괜찮다며 애써 웃어보였다.


그렇게 난생처음 MRI 검사였는데 2시간 반정도 찍은 것 같다. 머리에서 척추 끝까지.


온갖 좋아하는 노래와 가족 생각을 하며 버텼으나 막판에는 아이를 떠올려도 견딜 수가 없을 만큼 꽝꽝거리는 소리에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진짜 죽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다 끝났습니다.'라는 말이 들려왔고, 나는 실려오고 처음으로 펑펑 울고 말았다.


여차저차 해서 나온 진단은 시신경척수염.

2시간 넘게 찍은 MRI화면을 보니 위에서 아래로 척수를 타고 허연 염증이 선처럼 보였다.


학교 다니면서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희귀질환이다. 자가면역질환이며, 완치가 없고 평생을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며 재발이 잦다고 한다.


자가면역질환에 좌절 한 번. 평생이라는 단어에 좌절 또 한 번. 이렇게 나의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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