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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에 앉고, 서고, 걷다.

재활 그리고 무시무시한 장 트러블 사건

by 꿈꾸는댄서

일단 염증 치료로 세 가지 항생제를 10일 정도 맞을 꺼라고 했고, 주 치료제인 고용량 스테로이드 주사를 하루에 한번 5일 맞았다. 스테로이드는 다행히 내 몸에서 제대로 반응을 보여주었다.


맞을 때 마다 신기하게도 발과 다리가 따끔따끔하고 약간 움찔거리기도 했다. 약이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증상이라고 해서 그저 기뻤다. 그 대신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긴 했지만..


하루하루가 선명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루종일 침대를 떠날 수 없었는데 병원은 공사중이어서 내내 드릴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평소 성질 같았으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즉시 컴플레인을 걸었겠지만, 나는 침대밖으로 나갈 수가 없고 여기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였으므로,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드릴 소리와 함께 생활했다.


그 쯤 가장 괴로웠던 건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 꼬리뼈쪽이 찢어질 듯이 아픈 것이었다.

남편이 자주 자세를 바꿔주었지만 그러기 전에 이미 통증이 자주 나를 괴롭혔다.


밤에 잘 때는 더 심해져서 진통제를 맞아야 했고, 겨우 잠든 남편을 한번 씩 깨워서 "나 몸 좀 이쪽으로 돌려주라." 부탁했어야 했다.


그 사이에도 정상식사가 나왔고, 새 모이 만큼이었지만 계속해서 먹었는데 문제는 변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관장약이 들어가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 때 신경과에서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는데, 나도 뭐 괜찮아 지겠지 안이하게 생각했는데 이게 후에 그렇게 큰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시간이 지날 수록 배는 점점 불러왔다.


그 사이 나는 항생제 치료와 스테로이드 치료가 끝나고 앉혀놓으면 앉을 수 있게되어 휠체어 타는 연습도 하면서 신경과에서 재활의학과로 전과를 했고, 휠체어에 타고 재활치료실에가서 오전과 오후 재활을 시작했다.


재활을 시작한 기쁨도 잠시. 제대로 변을 거의 못보고 관장도 거의 반응이 없이 대변과 사투를 벌이다가 어느 날 항문쪽에서 선홍색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위장관 출혈은 꽤나 응급상황이기에 병동 간호사들이 모두 달려와 큰 바늘로 주사를 다시 잡고, 몸에 주렁주렁 모니터를 달아댔다.


난생처음 수혈도 한 팩 받았다. 복부 CT를 찍었더니 직장 쪽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있었단다.


큰 일 날 뻔했네..일단 금식을 하면서 출혈이 어느쪽에서 일어나는 지 모르니 대장내시경으로 보자고 했다.


배는 이미 가득찼는데 대장내시경 준비약을 물에 타서 먹으라뇨ㅠㅠ정말이지 너무나 울고 싶었다.


그 때 즈음 엄마아빠의 부재로 불안해하는 아이를 돌보기위해 입원한 후 처음으로 며칠 간 자리를 비우게 되서 간병사님에게 도움을 받았다.

대장내시경 약을 마시고 난 뒤 뒤늦게 쏟아지는 물변들을 참 프로페셔널하게 처리해주셨다.


이후 내시경 결과 다행히 장내 출혈은 아니라고 했다. 갖고 있던 치핵이 터진건가..?암튼 출혈은 멈췄고 더 이상 출혈은 없으니 다행이구나하고 사건은 마무리.


나는 재활치료시간엔 눈을 반짝이며 물리치료사님의 말씀 하나 놓치지 않게 주의집중했다.


나는 걸어서 여기서 나가야 하니까. 안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해봐야하니까.


장 상태 때문에 길어지는 금식에 관장이 일상이었지만 (주렁주렁 수액줄은 기본에 소변줄은 플러스..)그래도 기저귀를 차고도 참..열심히였다.


가끔 현타가 오긴했지만..

하루하루가 쌓여 보조기를 잡고 조금씩 걷기 시작했고, 골반이 흔들거려 매번 넘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있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보조기 안 잡고 걸었던 날이 아직 생생히 기억 난다.


재활하면서 누군가 나를 믿어주는게 정말 중요하구나 알게되었다.

물리치료사님이 옆에서 계속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매번 그렇게 해 나갔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재활치료 받는 나보다 어려 보이던 여자분이 두 분 있었는데 그 분들이 걷기하고 발판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운동하는 걸 보고 얼마나 부럽던지..


이후 내가 걸을 때 응원과 부러움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다른 환자분들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서는 걷는게 꿈이고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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