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밤에 우리 영혼은〉이 건네는 위로〉

마음의 산책로 2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 넷플릭스 포스터.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서로를 다정하게 안고 있다. - ©넷플릭스]





2016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파란빛 밤을 닮은 표지, 어둠에 묻힌 집들 사이로 희미한 조명이 켜진 그림이 마음에 남아 그 책을 집으로 데려왔다.


밤에우리영혼은.jpg 밤에 우리 영혼은 / 켄트 하루프 저 / © 뮤직트리 출판


책을 읽으며 남은 감정의 여운

책을 펼쳤을 때 처음 떠오른 감정은 ‘신선함’이었다. 홀로 된 노년의 남녀가 성적인 관계가 아닌, 단지 같은 침대에서 밤을 함께 보내기로 한다는 설정이 그랬다.


좁고 깊게 사람을 사귀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책이 주는 자유로움 덕분에 그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소소한 일상을 함께 나누고 대화하는 모습은 읽고 난 뒤에도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다만 두 사람의 의지가 아닌, 결국 가족 제도라는 틀에 부딪혀 그들의 관계가 끊어질 뻔하는 장면에서는 안타까움이 남기도 했다.



9년 만에 다시 만난 이야기

그로부터 9년의 시간이 흐른 이번 주말, 넷플릭스에서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게 됐다.

원작이 좋으면 쉽게 칭찬하기가 어려운데,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만들어낸 작품은 원작에 아쉬움을 떠올리지 않을 만큼 책과 잘 어울렸다. 아무래도 두 배우의 연기가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들게 했다.



외로움 끝에서 시작하는 영화

영화는 사랑의 시작이 아니라 외로움의 끝에서 시작한다.

애디(제인폰다)와 루이스(로버트 레드퍼드)는 작은 마을에서 한 블록을 사이에 두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서로 얼굴을 알고,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계절을 오래 겪어왔지만 이제는 그 삶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


각자의 배우자는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은 각자의 삶을 살며 더 이상 매일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친구들 역시 하나둘 세상을 떠났거나 본인과 같은 처지다. 특별한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들을 버린 것도 아니다. 다만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하루를 함께 지켜보던 존재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뿐이다.



애디의 제안

그래서 그들이 겪는 외로움은 관계가 끊어져 생긴 아픔이 아니라, 관계가 사라지고 난 뒤 남은 부재의 고요에 가깝다. 그 고요 속에서 애디는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프러포즈 같은 거예요. 청혼은 아니고요. 청혼 비슷한 느낌도 좀 있지만...
긴장되네요. 괜찮으시면 언제 제 집에 오셔서 같이 주무실래요?
우리... 둘 다 혼자잖아요.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죠. 그래서...
난 외롭거든요 당신도 그럴 것 같은데요.
섹스를 하자는 게 아니에요.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 그냥...
침대에 함께 누워서 잠들 때까지 얘기하면서 밤을 보내자는 거죠.
밤은 정말 끔찍하지 않아요?
그래도 누군가 곁에 있으면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라면요. “

사랑이 아니라, 곁에 있어 달라는 것.

나는 애디의 제안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곁을 나누는 존재가 되어보자는 용기 있는 제안으로 보였다.



외로운 영혼들, 서로 다른 결의 외로움

이 영화에는 애디와 루이스 외에도 외로운 영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외로움은 애디와 루이스의 외로움과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긴 세월, 관계의 상처를 지나 이제는 관계 자체가 사라진 뒤 남은 부재의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면, 다른 이들은 아직 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그 관계가 무너지거나 닿지 않아 생긴 외로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진(애디의 아들) 은 어릴 적 물장난을 하다 도망치는 여동생 코니를 차 사고로 잃는다. 슬픔을 제대로 보듬지 못한 채 엄마와 감정적 단절을 겪는다. 그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소통되지 않아 고립된 외로움을 품고 있다.


제이미(진의 아들)는 부모의 별거로 할머니에게 맡겨진다. 관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해 안정적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홀리(루이스의 딸)는 어릴 적 아버지의 불륜으로 신뢰가 무너진 관계의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 관계 자체는 남아 있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을 경험함으로써 연인과의 관계를 경계하게 만든다.


이들은 아직 관계라는 그물 위에 서 있으면서도 서로 닿지 못해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반면 애디와 루이스는 그 그물이 이미 사라지고 난 뒤의 허공에 홀로 남은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애디와 루이스는 잊힌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주변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연결을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의 시도가 유난히 고요하면서도 대담하게 느껴졌다.



작은 변화들, 느린 위로

이들은 누구도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애디와 루이스처럼 새로운 관계를 처음부터 만들지도 않는다.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외로움의 무게를 아주 조금 덜어내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진은 술기운에 묻어둔 상실과 분노를 터뜨린 뒤, 처음으로 어머니의 진심을 들으려 애쓴다.

제이미는 애디와 루이스와 함께 지내며 개를 돌보고, 캠핑을 가고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의 모습을 되찾는다.

홀리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지 않고 거리를 조율하며 있기를 선택한다.


그 변화들은 작고 미세하지만, 바로 그 느릿한 움직임 속에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조용한 위로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랑이 아닌, 나란히 서 있는 다정함

애디와 루이스의 관계는 사랑의 열정보다는 서로 기대지 않고 나란히 서 있는 다정함에 가까워 보였다. 그들은 서로의 과거를 듣고도 크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고치려는 충고 대신, 따뜻한 미소로 그저 조심스러운 위로를 건네는 모습을 보인다. 누구 한쪽이 다른 쪽의 중심이 되려 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곁을 함께 통과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의 관계는 의존보다 존중에 가까운 온기로 보였다. 사랑이라기보다, 외로움의 무게를 함께 들어주는 동반자 같은 모습이었다.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

두 사람은 삶을 거창하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의 곁을 지켜봐 주며 오늘을 살아간다.


그들의 선택은 눈부시지 않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깊게 느껴졌다. 외로움을 숙명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지금 모습 그대로 내 주변을 채우고 곁을 메우려는 그 마음을 보여주는 영화 같았다.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감에도 따뜻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있는 건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는 아직 사회로부터 내몰리지 않은, 관계라는 그물망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애디와 루이스의 외로움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도전에 응원을 보내며, 저 또한 연결하는 마음을 쉬이 내려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덜 외로워졌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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