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로 2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 넘버(K-NUMBER)》 공식 포스터. ‘수출된 아이, 사라진 기록’이라는 문구와 함께 입양 아동 기록 카드, 번호, 사진 조각들이 배치되어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린 현실을 상징한다. © 르네상스필름 / 시네마달]
부모님이 나를 형제복지원에서 찾았던 과정을 얘기해 주셨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던 장면이 있다. 당시 온갖 미디어에서 그곳에서 벌어진 살인과 인권유린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되던 시기였다.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고 하니 “혹시 내 딸도...” 하는 마음을 품은 부모님은 밤잠을 설친 뒤, 이른 새벽 부산으로 출발해 형제복지원에 도착했다.
그 뒤 관계자가 내민 아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원생 기록 카드를 확인했지만, 그곳에서 내게 부여한 이름은 ‘김은영’이었기에 있을 리 없었다. “당신도 자식이 있지 않습니까. 한이 돼서 그러니 아이들이 있는 곳을 한 번만 둘러보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부모님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멈춰서 그렇게 사정을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용인되지 않았을 부탁이었겠지만, 당시 인권유린 사건이 크게 부각되었던 영향이었는지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은 나를 찾았다. 다시 말해 부모님이 형제복지원 측에서 보여준 조작된 원생 기록 카드만을 보고 발걸음을 돌렸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는 말이다.
최근 친구의 추천으로 함께 보러 간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케이-넘버(K-Number)>라는 영화를 통해 장소와 아이만 달랐을 뿐 비슷한 시기에 ‘존재가 지워진 채’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케이 넘버(K-Number)>는 한국에서 태어나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 출생부모를 찾아 나서며 겪는 상실과 벽,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구조적 폭력을 정면으로 다룬다. 영화의 중심에는 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성인이 된 뒤 출생 부모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미오카 밀러의 여정을 보여준다.
그녀 역시 1970년대 초 미국으로 입양돼 그곳에 살고 있었지만, 양부모가 입양 절차를 완료하지 않은 것을 성인이 된 뒤 확인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경제적 능력이 되었기에 거액의 변호사 비용을 치르고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다. 이후 어렵게 확인한 그의 입양서류에서 케이 넘버라는 숫자와 함께 기재된 김미옥이라는 이름을 발견한다. 그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케이 넘버는 입양기관이 해외로 보낼 아동을 관리하기 위해 붙인 일련번호다. 보호시설에 들어온 아이는 곧바로 이름을 지우는 대신 이 번호를 부여받았다. 이 번호는 입양 서류 관리 문서에서 이름, 출생지, 출생부모 정보보다 우선했다. 심지어 기록이 불일치하거나 조작된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해외 입양인들은 그 문서를 통해 뿌리 찾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조차 ‘개인정보 보호’, 기관의 ‘사유 재산’이라는 이유로 열람이 거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미오카의 경우 시설에 끈질기고 집요한 요청을 한 끝에 자신의 기록을 받아낼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 ‘찬란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라는 미사여구 뒤에서 한 개인은 ‘케이스 넘버’로 치환되어 “관리 가능한 상품”처럼 꼬리표를 달았다. ‘아동 수출’로 외화를 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국가를 포함해 그 누구도 제대로 문제를 직면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를 입양받은 국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국내 해외 입양의 90%를 차지했던 미국의 경우를 찾아보자. 케이 넘버를 부여받고 미국에 도착한 아이들은 또 다른 비극, 즉 국적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해외 입양이 시작된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입양기관이 부모를 대신해 대리입양 절차를 처리했다. 거칠게 말하면 양부모가 한 번도 아이들을 만나러 오지 않고도 물건을 사듯 사진만 보고 아이를 “배달” 받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당시만 해도 국적 취득 또한 미국 도착 이후 양부모가 입양절차를 마쳐야 가능했기에, 아이들은 '합법 체류자' 신분일 뿐이었다. 문제는 서류상 '합법 체류자'라 하더라도 아이들을 자신의 의료보험에 부양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었고, 학교에도 다닐 수 있었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 '문제없음'이 부모의 무지와 의도적 방치에 맞물려 성인이 된 아이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된다.
특이하게도, 수십 년을 같이 살았음에도 미국의 제도는 ‘부모가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는 시민이 아니다.’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양부모의 무지와 방관, 기관과 정부의 안내 부재 등이 맞물리면서 아이들은 성인이 되는 순간 불법체류자로 전락한다. 그 여파로 수십 년을 미국에서 살았음에도 수만 명이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한 채 실제 추방되었거나 추방될 위기에 놓여있다.
상상이 되는가. 미국에서 그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고 자란 사람이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으로 추방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책임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2001년 2월 27일 이후 입양된 아이는 자동으로 시민권 취득이 되었지만, 그 이전 입양된 아이들은 소급 적용되지 않아 지금도 2만 명 이상이 불안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정부와 입양기관 역시 해외입양을 국가 정책 차원에서 장려하고, 출생 기록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조작하는 등 심각한 잘못이 확인되었음에도 이를 바로 잡지 않고 있다.
미오카처럼 친부모가 있음에도 고아로 처리된 아동이 많았고, 정부는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 지금도 많은 입양인들이 케이넘버에 기대어 한국을 찾고 있지만, 국가는 충분한 사과나 제도 개선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영화를 보는 초입, 문득 “지방에 살아서 형제복지원에 잡혀간 불행이 그나마 다행이었나? 그 불행을 서울에서 겪었다면 나도 어쩌면, 저들 중 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영화는 그런 나에게 핵심은 그게 아니라고, 정신 차리라는 듯 알려주었다.
그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어떤 날은 유난히 복장을 체크하고, 주변을 대청소 시키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이면 의례 쉽게 만나지 못했던 노란 머리 키 큰 여성과 남성이 복지원 관리자와 함께 웃으며 우리를 훑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 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영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케이 넘버>에서 미오카는 “김미옥”이라는 이름을 단서 삼아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이름조차 지워진 채 번호로 불린 아이들이, 더 이상 ‘번호’로 남지 않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 이 영화 속에 있었다.
진실은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이 '지워진 존재들‘의 오래된 질문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 목소리에 응답해야 하지 않을까.
이들의 이름을 지워버린 지난한 시간 앞에서 우리는 이제 어떤 이름을 불러야 그들의 존재를 다시 불러올 수 있을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