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을 모르는 사람의 느린 배움

마음의 산책로 2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파란 하늘 아래 STOP 표지판과 보행자 횡단 표지판이 함께 서 있는 모습. 멈추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장면. - 출처: 픽사베이 © pexels]






또다시 몸이 나를 불러 세웠다.

이런 패턴이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일주일 전 병원에서 “족저근막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실 몸은 이미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몇 주 전부터 달리기를 마치면 왼쪽 발바닥이 욱신하며 불편함을 알렸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침에 바닥을 디딜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몇 걸음만 걷고 나면 괜찮아지기에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넘겨버렸다. 몸이 보내는 메시지를 또다시 놓친 것이다. 며칠을 쉬고 다시 달려도 발이 아팠고, ‘아니다’ 싶어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진료실 의사가 “당분간 달리기를 중단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생각이 스쳤다.

‘아, 이번에도 또... 나는 왜 늘 극과 극만을 오갈까.. 왜 적당히를 모를까’.


내가 떠올린 말은 오래전부터 친구들과 동료들이 내게 해온 말이기도 했다.

“넌 왜 적당히를 못하니?”

“너 또 그렇게 무리하다 탈 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문제없다는 듯, 적당히 잘하고 있다는 말로 웃으며 넘겼다. 정말이지 나는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금처럼 몸이 멈춰버린 다음에야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늘 끝까지 가는 사람이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겠다고 결심한 뒤 9년 동안 여름철 장마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거나 한겨울 빙판 길이 되지 않는 이상 영하 11도, 12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전거를 탔다.


2년 전에는 운동 습관을 몸에 배게 하겠다며 하루도 빠지지 않고 1년 365일을 채웠고, 그 기록을 인스타그램에 매일 올렸다. 건강상의 이유이긴 했지만 술도, 커피도 단번에 끊었다.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가까이하게 되면서 손에서 책을 놓지 않겠다 마음먹고 4년 동안 해마다 평균 100 권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마음먹은 일은 반드시 해내는 나를 확인할 때마다 내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자라났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도 올해로 4년째다.

달리기도 처음엔 재미를 느껴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건강한 몸을 만들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뛰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숨이 가빠오는 걸 견디기 힘들었지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벗 삼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달리는 맛을 알게 되었다. 몸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다. 달리면서도 고른 호흡 가능 하다는 걸, 뺨에 닿는 바람을 가르며 뛰는 감각에서 묘한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크고 작은 자기 효능감의 경험이 쌓이면서,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포기하지 않으면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해낸다”

이 믿음은 지난 시간들이 내게 안겨준 확실한 선물이다.


그 믿음은 포기하고 싶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생각해 보면 동시에 그 믿음은 늘 ‘조금만 더, 그래 조금만 더, 거봐 할 수 있잖아’라는 나를 다그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하려면 제대로”라는 생각으로 나를 몰아붙였고, 그러는 사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놓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번 족저근막염처럼 몸이 무너지고 나서야 “아, 너무 갔구나”를 깨닫는 식이다.



그렇다고 끝까지 해내는 힘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분명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섣불리 마음먹진 않지만, 일단 결심한 일은 결국 해낸다는 믿음. 그 믿음은 수많은 포기와 좌절의 순간마다 다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힘이 언제나 축복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번처럼 매일 하루 10km를 달리기를 하는 동안,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듣지 못했다.


의지와 끈기가 나를 이끈다는 믿음에 익숙해지면 어느 순간 나를 몰아붙이는 채찍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나를 몰아붙이는 방식으로 작동해 ‘해야 한다’는 의지에 매달리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꼭 이렇게 놓치고 만다.


깨달음이 늘 뒤늦게 찾아온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제는 안다. 멈춰야 할 때를 알아차리는 것 또한 용기라는 것을.



문제는 나는 아직도 ‘중간’을 지키는 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고, 나 자신과의 약속은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와는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끝까지 달려가며 생기는 크고 작은 불편함들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는 것.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기분을 재차 느끼면서도, 배워가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성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지속이고, 달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멈춤이라는 것을. 그 감각이 내 몸 어딘가에 켜켜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지속을 위해 멈춰 숨 고르는 법을, 나는 지금 몸으로 배우고 있다.


이제는 바란다.

이런저런 ‘영광의 상처’를 통해서가 아니라, 몸이 신호를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멈춰 설 수 있기를. 긴 안목으로 지속 가능한 길을 택해 나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기를.


아직은 중간이 어렵기에, 한 발 내딛는 끈기만큼이나 한 발 멈추는 용기를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족저근막염이란 말을 듣고 기껏 달리는 재미를 느꼈는데, 자칫 제 무딘 감각 때문에 만성으로 이어져 달리기 자체를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며칠을 우울하게 보냈답니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 상심을 하다가, 문득 이 마음을 글로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곧 '내 넋두리를 적자고 브런치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닌데...'라는 생각에 다다랐고, 귀한 시간 내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독자분들께도 이건 도리가 아니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찬찬히 돌아보았습니다. 변화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 사이에서 내가 얻은 것과 놓친 것,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알았다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요.


그런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멈춤도 배움의 일부라는 걸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멈춰야 할 때를 알아차리시나요?

아니면 저처럼 그 순간을 찾아가는 중이신가요?


아직 찾아가는 중이시라면 저처럼 많이 헤매지 않으시기를,

이미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를 아는 분이시라면 그 지혜를 저 또한 배워나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올해는 유독 긴 추석연휴라 여유로움이 더욱 묻어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공간에서 좋은 분들과 즐겁고 행복한 추석 연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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