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로 2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 영화 《치히로 상》 공식 포스터 - ⓒ Netflix ]
※ 본 글은 영화 《치히로 상》의 줄거리와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참고해 주세요.
이번 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를 고민하며 넷플릭스를 열었다. 방향키를 옮기며 눈길이 멈추길 기다리던 순간, 아리무라 카스미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의 연기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닌다는 인상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 일까 싶어 시놉시스를 찾아봤다.
영화 <치히로 상>은 전직 성 노동자(마사지 업소)였던 치히로(아리무라 카스미)가 작은 해변 마을에서 과거를 숨기지 않고, 도시락 가게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녀는 외롭고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무심한 듯 조건 없는 따뜻함으로 관계를 맺는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치유와 관계에 대한 영화였다.
줄거리를 보고 잠시 의심도 했다. 일본 영화 중에 종종 있는, 작정하고 교훈을 주려는 식의 작품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아리무라 카스미 배우의 진중한 얼굴과,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의 미묘한 결을 잘 풀어내는 감독이라는 평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이번 주는 이 영화다. 자세를 편안하게 잡고는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영화 속 치히로는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어떤 기대감도 실망감도 품지 않는 채 관계를 맺으며 스스로를 지키는 듯했다. 그 태도는 깊은 좌절과 아픔의 결과에 다다른 이의 반동처럼 보였다. 본명인 아야로 살던 시절, 진심이 외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상처를 냉소나 무관심으로 표출하지 않고, 오히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타인의 부족함이나 실수마저 평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노숙자 할아버지에게 도시락과 목욕을 건네고, 자신의 팔목에 상처를 입힌 꼬마 마코토에게 화 대신 맛있는 도시락을 대접한다. 또한 자신을 스토킹 하듯 사진을 찍는 여고생 세오 쿠니코에게도 이유를 묻지 않고 마음을 열어주었다. 치히로의 이러한 행동은 상대방에게 어떤 보상이나 감사를 기대하지 않고 순수한 연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쳤다.
(무례한 장난을 가한 꼬마 마코토는 치히로 상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다 그녀의 팔목을 컴퍼스로 찌른 뒤 장면이 바뀌고 그런 마코토에게 도시락을 제공한다.)
“팔은 괜찮아?”
“별 것도 아닌 걸 처음도 아니고”
“전에도 찔려 본 적 있어?”
“응, 등을 찔려봤지. 볼래?”
“아니, 누가 찔렀어?”
“음.. 날 너무 좋아했던 사람이었나 봐”
“좋아하는 데 왜 찔렀대?”
“그러게 말이야, 왜 그랬을까?”
(도시락을 먹으려다 말고)
“미안해요”
“그게 뭐야, 사과할 때는 상대의 눈을 봐야지”
(눈을 바라보며)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착하네, 용서할게 그만해”
영화를 보며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숨겨진 차원』에서 주장했던 인간관계의 거리를 떠올렸다.
측량기사가 되어 머릿속 줄자를 꺼내 그녀가 관계 짓는 사람 간의 거리를 재어봤다. 도시락 손님과의 대화에서는 사회적 거리를, 고독을 지닌 이들과의 대화에선 개인적 거리 그 사이 어딘가에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 『숨겨진 차원(1966)』 - 에드워드 T. 홀: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공간과 거리에 대해 설명한 책
- 친근한 거리: 0m ~ 45cm 가족, 연인, 아이 등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만 허용
- 개인적 거리: 45cm ~ 1.2m 친한 친구, 가까운 지인과 대화할 때 유지되는 거리
- 사회적 거리: 1.2m ~ 3.6m 직장 동료, 공식적인 대화, 비즈니스 관계에서 주로 사용
- 공적 거리: 3.6m 이상 강연, 연설, 군중을 대상으로 할 때의 거리
대부분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는 능력은 자신이 겪었던 관계의 상처를 통해 터득되는 경우가 많다. 그 아픔을 알기에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치히로는 고독을 삼키는 이들 앞에서는 개인적 거리를 좁히듯 따뜻함을 건넸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고독과 상처는 마주하지 않고 외면하는 듯 보였다.
나는 여기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형제복지원에서의 경험, 부모님의 이른 부재는 나에게 타인의 아픔을 알아보는 눈을 주었다. 나에게 그 척박했던 아픔은 사람과의 관계를 개인적 거리와 사회적 거리 그 어딘가에 서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고독과 상처를 인정하며, 무턱대고 희망하지도 섣부르게 비관하지도 않는 시니컬함과 다정함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성향상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을 극도로 싫어하기도 해서, 깍듯한 예의 속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는 마음으로 관계를 맺는다. 치히로가 따뜻한 물이라면 나는 미온수에 가깝다.
더 나아가 그녀가 자신의 고독과 상처를 외면하고 있는 지점에 대해 얘기해 보자.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듯하던 어느 날 그녀가 심연을 연상하는 듯한 어두운 방 안에서 아버지로 감정을 투영하는 마사지 업소 점장의 전화를 받는다.
그때 치히로는 '물속에 있다'는 표현을 쓰며 홀로 고립된 시간을 보낸다. 다른 이들은 기대나 평가를 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그 마음들을 놓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과거의 본명인 '아야'를 버리고 '치히로'라는 가명으로 살아간다.
처음 낡은 구두를 신고 흔들리는 눈빛을 한 그녀를 보며 “이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다”는 점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어린 시절 늦은 밤 홀로 신사에 앉아 자신이 만든 김밥을 먹던 장면은, 돌봄이 부재한 환경에서 외롭게 자랐음을 짐작하게 했다.
실제 가족과는 왕래하지 않고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가지 않는 모습은, 그녀가 그동안 관계에 얼마나 짓눌린 삶을 살았는지 가늠하게 했다.
새 이름으로 살지 않으면 버틸 힘조차 없었던 그녀는,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두 명의 특별한 인연으로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만난 진짜 치히로였다. 늦은 밤 어린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주고 꼬마 치히로가 만든 엉성한 김밥을 맛있다며 치켜세워준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꼬마 치히로가 건넨 도토리 선물, 그리고 술집 명함을 부끄럼 없이 건네던 그녀의 자유로움은 어린 치히로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세상의 편견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깨달음을 주지 않았을까?
두 번째는 도시락 가게 사장 타에 씨였다. 그녀 앞에서 만큼은 유일하게 본명인 ‘아야’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타에 씨와 차 안에서 비 오는 광경을 지켜보며 어머니의 죽음에도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는 고백을 한다.
그런 그녀에게 타에 씨는 "지금 그대로의 네가 정말 좋다"라고 대답하며 그녀를 안아준다.
치히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해 주는 타에 씨를 통해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슬픔도 후회도 외로움도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거예요
눈물도 안 났어요"
"타에 씨가 우리 엄마였다면 전 어떤 어른이 됐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지금보다 멋진 어른은 못 됐겠지?"
"네?"
"나는 말이야 지금 그대로의 네가 정말 좋아"
"와... 말문이 막히네요"
영화는 정착하며 함께 살기를 제안하는 타에 씨를 떠나 다른 새로운 목장에서 일하는 그녀를 비춘다.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는 목장주의 질문에 “도시락 가게에서 일했다”라고 답하며 환하게 미소 짓는 그녀의 모습으로 열린 결말을 맺는다.
치히로와 나의 인간관계는 다른 듯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녀는 타에 씨의 진정한 위로와 이해 속에, 타인에게 그러했듯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살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 또한 여타의 우여곡절 끝에 나를 받아들였다. 치히로처럼 새로운 곳을 떠날 수는 없지만, 비관보다는 시니컬함으로, 대안 없는 희망보다 대책 있는 긍정성을 갖추고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유로운 주말 따뜻한 영화 한 편이 마음에 주는 위로가 참 다정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를 본 후, 여러분은 스스로와의 관계는 물론, 타인과의 거리를 어떻게 맺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치히로'는 어떤 모습인가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