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산책로 2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넷플릭스 영화 〈목요일 살인 클럽〉 포스터. 네 명의 노년 인물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가운데 케이크 위에는 칼이 꽂혀 있고, 배경 벽에는 사진과 노트가 붙어 있는 범죄 수사 보드가 보인다. 배우 헬렌 미렌, 피어스 브로스넌, 벤 킹슬리, 셀리아 임리가 주요 배역으로 소개되어 있다.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영화〈목요일 살인 클럽〉을 보았다. 추리 소설이나 영화를 즐겨 찾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엔 단순히 출연 배우들 때문에 재생 버튼을 눌렀다.
헬렌 미렌, 피어스 브로스넌, 벤 킹슬리, 셀리아 임리.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을 주는, 영국의 연기파 배우들이다 보니 그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하다 싶었다.
보통 괜찮은 추리 영화를 보면 시간이 흐를수록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된다. 작은 단서 하나에도 집중하고, 다음 장면을 예측하며 마음이 조여 오는 경험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런 긴장감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덕분에 시간은 빠르게 흘렀지만, 그 이상의 몰입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들었던 생각은 “무료한 주말, 킬링타임용으로 보기 딱 적당한 영화”라는 것뿐이었다.
추리극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사건 자체에는 무게가 덜했고, 그렇다고 크게 웃음을 터뜨릴 만한 코미디도 아니었다. 왜 영화 장르를 코미디로 구분했는지 이해가 갔다.
이야기의 배경은 영국의 고급 실버타운 ‘쿠퍼스 체이스’다. 이곳에서 네 명의 은퇴자들이 모여 ‘목요일 살인 클럽’을 꾸린다.
그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미제로 남은 과거의 살인 사건을 꺼내놓고 함께 추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실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네 명은 각자의 삶에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경찰을 돕고, 결국엔 문제를 해결한다.
설정만 보면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해서 이런 생각이 맴돌았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을 데려다, 왜 이렇게밖에 찍을 수 없었을까.”
한국식으로 치면, 윤여정·김혜자·신구·이순재 선생님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적당한 교훈과 따뜻한 감동을 주려는 듯한 영화였다고나 할까. 배우들의 존재감은 여전히 빛났지만, 이야기 자체가 그 무게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찾아보니, 원작 소설도 같은 제목으로 존재했다. 소설은 노년의 외로움, 사회적 배척, 죽음, 존재의 불안, 공동체의 필요성 같은 주제를 무게감 있게 풀어낸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 깊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잠깐씩 수박 겉핥기처럼 스쳐 가는 장면만 있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초반에 쿠퍼스 체이스에서 진행된 홈 보안 강의 장면이 그렇다. 도나(여자 경찰)가 절도범에 대한 얘기를 했을 때, 노인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절도범이 오면 환영하겠어요. 손님이 오면 반갑잖아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노년이 되면서 사회로부터 점점 무시되고, 소외되고, 아무도 찾지 않게 되는 외로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나 영화는 그 가능성을 더 깊게 밀고 나가지 않았다.
결말도 비슷했다.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노년 부부의 장례식 추모사를 통해 원작을 읽지는 못했지만, 책이 전달하고자 했던 중요한 지점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무게감 있는 전달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역할에 맞는 부자, 모녀간의 사랑, 부부의 사랑, 친구들 간의 우정 등의 장면을 비추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따뜻한 마무리였지만, 원작에 없었다면 모를까 현실의 노년과는 다른 그 안에 담겨야 할 생각해 볼 지점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이 영화는 현실을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라기보다, 노년을 바라보고 싶은 방식으로 꾸며낸 판타지에 가까웠다. 따뜻함은 전해지지만, 깊은 통찰은 비워져 있었다.
나는 아마 그 지점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영화가 건네는 위로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면서, 오히려 그 빈 공간이 더 크게 느껴졌다.
주말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영화를 한편 볼까 하는 마음에 주연배우들을 보고 흥미가 돋아 봤던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나이 듦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그리고 현실의 무게와는 거리를 두는 영화가 더 나은 걸까요?
아니면 외로움과 상실, 존재의 불안을 좀 더 정직하게 마주하는 게 좋았을까요?
오늘의 글은 영화가 보여줬던 것처럼 가벼운 글이 되었지만, 영화를 본 뒤 들었던 이 생각들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있지 않았나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