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존자다 – 형제복지원 편을 보고>

마음의 산책로 2 – 일상 속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따라 걷는 시간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넷플릭스 공식 포스터. 다큐멘터리 시리즈 〈나는 생존자다〉의 홍보 이미지로, 여러 인물 사진과 삼풍백화점, 과거 기록물 사진이 찢어진 종이 조각처럼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 ‘나는 생존자다’라는 제목이 크게 적혀 있다. 하단에는 공개일 2025년 8월 15일이 표시돼 있다.]






나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이자 생존자임을 내 글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며칠 전부터 넷플릭스 화면에 <나는 신이다>에 이은 조성현 PD(이하 조PD)의 두 번째 시리즈. <나는 생존자다> 예고편이 보였다. 형제복지원을 연상케 하는 예고 장면이 흘러나왔다. 미리 알림을 켜두고 주말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사건은 흘러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사건은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그 시간에 발목이 잡혀 오늘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실이 규명되고 해결되기 위해 기록은 반드시 필요하다. 기사를 찾아보니 제작기간은 2년이 걸렸다. 인터뷰 섭외와 가해자 집단의 방해 속에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영상을 보는 동안 여러 장면에서 불편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짧은 식견일 수 있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감상을 남겨 본다.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의 문제

형제복지원 1편은 과거 기록물과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인터뷰가 형제복지원을 떠올리게 하는 세트장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철제 침대와 수용복까지 재현하며 사실감을 살리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그러나 시청자로서 느낀 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다른 연출 방법은 없었을까?”라는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다.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공간을 보존하는 사례처럼,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건이 청산된 뒤라면 효과적 일 수 있다. 더군다나 생존자의 존엄이 회복되어 그 공간에서 증언을 한다면 이런 공간 재현은 강력한 기억 장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사과와 보상조차 없는 현실에서 피해자를 세트장에 다시 앉히는 방식은 오히려 상처를 다시 불러내는 듯 보였다. 사실적 전달을 원했다면 피해자와 공간을 분리해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또 다른 장면에서는 전작의 선정성을 의식한 듯, 영상 시작 전 ‘아동 학대 묘사가 포함돼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안내문이 떴다. 그리고 이어진 장면에서 여전히 성폭력을 암시하는 이미지가 보였다. 피해자의 증언만으로도 충분히 문제의 심각성이 전달됐기에 이 또한 "굳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과 요구와 또 다른 모순

2편에서는 피해자들이 박인근 원장의 가족과 측근들을 직접 찾아가 사과를 요구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문전박대와 비웃음, 경찰을 부르는 장면뿐이었다. 연출 의도는 가해자의 뻔뻔함을 드러내려 했겠지만, 보는 이에게는 피해자가 사정하는 듯한 구차한 장면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왜 사정해야 하는가.


제작발표회에서 조PD는 박인근 원장의 막내아들이 가족 중 처음으로 잘못을 뉘우쳤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정작 영상 속 발언의 요지는 달랐다. “아버지가 잘못했다, 죄송하다”라는 말 뒤에 “우리도 피해자다. 진짜 책임은 국가에 있다”라며 퍼센트를 따지며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를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시청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과의 무게를 희석시키며, 영상에서 본 바와 같이 피해자에게 또 다른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중립의 함정과 국가 책임의 부재

더욱 아쉬웠던 건 원장을 두둔하는 사람의 인터뷰가 포함된 장면이다. 언론적 중립을 지키려는 의도였을지 모르지만, 형제복지원 사건은 법에서도 인정한 명백한 인권 유린 사건이다. 굳이 다른 의견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보여주었다면, 그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분명히 짚었어야 했다.


제작 발표회에서 조PD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연관된 이야기다. 인간의 가치가 낮아지고 인간 존재를 하찮게 여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회가 인간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함께 고민해 주면 좋겠다.”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용기가 국가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시즌2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집중했다.”


그러나 정작 영상에서는 국가 책임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결국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기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의 대립 구도가 한층 더 부각되었을 뿐이었다. 결국 이런 연출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개인 가해자의 일탈로 끝내버릴 사건이 아니다. 국가가 제도를 통해 적극적으로 묵인하고, 구조적으로 공모한 사건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사회 구조적 문제를 '눈 가리고 아웅 하듯' 덮으려다 3,000여 명이 넘는 사람의 인권을 시궁창으로 떨어드렸다. 그리고 그곳이 12년간 운영되는 동안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657명, 해마다 54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셈이다. 막말로 행동대장에게 여죄를 묻고, 두목의 여죄 또한 같이 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엇박자의 현재

국가와 사회는 형식적으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피해자 상담창구, 기념사업 등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 판결이 나왔음에도 국가는 다시 항소했다. 겉으로는 사과하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피해자들에게 가하는 또 다른 2차 가해가 아닐까.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 걸까. 썩은 체제를 보호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인가. 이 질문은 여전히 답을 받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썩은 체제는 도려내고 재정비를 해야 더 나은 내일을 바랄 수 있다. 이 질문 앞에서, 국가는 여전히 엇박자의 언어를 쓰고 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형제복지원 사건은 결코 과거의 비극으로만 남을 수 없다.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피해자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실질적인 보상, 국가 책임의 전면적 인정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제도적 개혁과 사회적 기억화, 그리고 피해자의 존엄 회복이 동반되어야 한다.


기록하고 알리려는 마음은 분명 소중하다. 그러나 그 방식과 국가의 태도가 여전히 어긋난 지금, 우리는 형제복지원 사건 앞에서 여전히 엇박자로 서 있다.


불편했던 지점들을 적었지만, 결국 나 역시 연출자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한 사람의 시민이다.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우리는 피해자 인간 존엄에 대한 회복 요구를 언제까지 그저 듣고만 있어야 할까요.


이제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아야 할까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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