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이들』·『일인칭 가난』 함께 읽기

책이 불러낸 생각과 감정을 따라가는 글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회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제목이 적힌 책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강지나 지음) 표지와, 파란 바탕에 흰 글씨로 제목과 여러 문장이 적힌 책 『일인칭 가난』(안온 지음) 표지가 나란히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두 책은 각각 청소년 빈곤의 10년 기록과 저자의 일인칭 가난의 기록을 담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서 『일인칭 가난』까지, 두 권의 책은 나의 불안을 비추고 가난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바라보게 했다.



풍족함으로 깃든 기억

아빠가 퇴근하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언니와 나는 손가락을 꼽았다. 오늘은 아빠가 무슨 맛있는 음식을 사 오실까 하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집안의 반대로 수저 두 벌과 냄비 하나가 달랑인 단칸방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빠의 성실함과 엄마의 알뜰함 덕분에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땐 2층집을 지어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방을 제공해 주셨다. 언제나 제철 음식과 과일이 식탁에 올랐다.


한마디로 나는 가난이라는 말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낯선 세계와의 첫 마주침

그러나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폭력과 배고픔을 겪으며 처음으로 다른 세계가 있음을 몸으로 체감했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다시는 마주하지 않을 줄 알았던 그 기억은 이후 엄마의 유방암과 아빠의 실직, 그리고 이후 집안의 몰락과 맞물리며 ‘가난’을 대면하게 된다.


본심과 달리 버스비가 없어 걷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고, 준비물을 사지 못해 “깜빡했다”는 어설픈 허세를 부렸으며, 학교 앞 분식집을 가자는 친구들에게 무관심을 연기해야 했다.


나는 그 ‘가난’이 얼마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며, 관계를 피하게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책이 불러낸 오래된 기억

강지나 작가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으며 중학교 3학년 그때의 내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책의 표지를 처음 접한 건 2024년. 상당기간 MD들의 추천 도서로 온라인 서점 메인에서 나를 반기는 듯했다.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말이라는 걸 알지만 그 암담했던 기억에 빠져 우울해지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애써 눈길을 돌렸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도 그 시기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는 나에게 2025년 어느 날 이 책은 그렇게 다시 나의 눈에 들어왔다.



가난을 추적한 시간의 기록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빈곤 가정에서 성장한 청소년 8명을 10년이 되는 기간 동안 어른이 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인터뷰로 남긴 책이다.


가난한아이들-이미지.jpg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강지나 저 / 돌베개


‘가난’이 이들 삶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알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들을 바라보고 정책적 대안과 사회적 시스템으로 가져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또 하나의 기록, 『일인칭 가난』

비슷한 시기에 가난의 또 다른 책 안온작가의 『일인칭 가난』을 만났다.


『일인칭 가난』 - 안온 저 / 마티


오랜만에 친구와 안부를 묻는 인사를 나누다 자연스레 책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친구에게 강지나 작가의 책을 소개했더니 화답으로 안온작가의 책이 돌아왔다.


저자 자신이 20여 년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경험을 생생하게 ‘일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알리며 가난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고자 하는 글이었다.



내가 외면했던 순간들

그럼 나는 왜 그동안 가난에 대한 글을 외면하려 했을까?


부모님의 울타리가 사라진 뒤 오빠는 대학을 포기했고, 언니는 그 당시 수녀가 되기 위해 떠났다. 나는 오빠의 도움과 근로 장학생 및 아르바이트로 대학을 버티다 사회인이 되었다. 이제는 오직 나의 힘으로 서야 했다.

책에서처럼 시간을 두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하루를 살아 숨쉬기 위해서는 하루치의 돈이 필요했다. 월세방이라도 갈 수 있는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시원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 창문 없는 방에서 A4용지 두 장을 펼쳐 놓은 것 같은 창문 있는 방으로 옮기기 위해서 수개월이 필요했다. 저축은 꿈같은 이야기였고, 수입과 지출을 맞추기 위한 불안감 속에 안간힘을 써야 했다. 언제나 칼같이 고정된 생활비 속에 고향친구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을 때면 그 축하의 마음속에서도, 막막한 교통비와 축의금을 마련할 길 없어 종종 매정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그 돈의 범위 안에서 나의 생활 반경이 자연스레 정해졌다.


가난은 돈만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삶 전체를 규정하는 역량의 박탈이라는 강지나 작가의 설명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숨겨야 했던 가난

나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개인의 노력부족과 숨겨하는 부끄러운 것으로 배우며 자랐다.


아무리 나의 첫 시작이 남들과 달랐다 한들 그것은 남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언젠가 주어를 명확히 하지 않고 흘리듯 얘기한 나의 가난에 동료의 반응은 구차한 변명이라 했다.


그렇게 내 가난의 경험은 끝끝내 숨겨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 학습된 내면의 무의식이 책을 외면하게 했던 주요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불안이라는 오래된 그림자

그렇다면 지금은 그 가난이라는 마음에서 자유로울까?


그 억겁 같은 시간을 견뎌 지금이 되었고, 그때와 비교하면 가히 천국이라 표현할만하다. 내 앞가림 정도는 하며 살고 있는 내가, 삶의 지향을 다지며 가진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 내가, 대견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소위 모임에서 세대별 통상적으로 갖추거나 모아뒀어야 할 부동산이나 금전 얘기가 나오면 초연해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이처럼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불안이 여전히 나와 함께 살아가는 그림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만의 이야기를 넘어선 가난

여기서 안온 작가는 “가난은 일인칭이지만 일 인분은 아니다”라는 대목에서, 가난은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사회와 제도가 남긴 흔적이라는 말.


그 문장이 내 경험을 낯설지 않게 비추었다. 나는 풍족을 경험한 후 가난에 미끄러진 사람이지만, 그 과정에서 몸에 밴 불안은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든 결과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때때로 여전히 움츠러들고 나 자신을 탓하는 습관으로 되돌아갈 것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에 동시에 책들이 나에게 가르쳐준 통찰을 몸으로 받아들이려면, 반복해서 되새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두 책이 남긴 울림

두 책은 서로 다른 듯 닮았다.


한쪽은 연구자이자 교사로서 긴 시간을 두고 청(소)년들의 삶을 추적했고, 다른 한쪽은 당사자로서 자기 서사를 내밀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가난을 개인의 게으름이나 부끄러움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인식을 거부한다.


그들의 목소리는 가난을 구조의 문제로 재위치 시키고,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드러난 사회의 민낯

얼마 전 일부 지자체에서 ‘민생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를 일반 시민과 소득상위 10%에 분홍색 카드, 차상위계층 및 한부모 가족에게 연두색 카드, 기초생활수급자는 남색카드로 표기하거나, 인쇄 카드에 지원 금액을 보이도록 인쇄해 기초 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임을 알 수 있도록 제작했던 적이 있었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로 새로 제작·배부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과 인권 감수성 부제가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배운 대로 내가 주눅이 들었던 것처럼, 한국 사회는 '가난'을 여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킨다.


그래서 어쩌면 일부 독자들은 저자들의 두 책을 접하며 “안쓰럽다”거나 “장하고, 대견하다”라는 말이 툭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대안 없는 쿠션어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이런 비슷한 류의 감정을 표출한 적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단순히 가슴 아픈 체험담 또는 이야기로 남겨 두는 게 맞는 걸까?



여러분들도 어떤 결핍의 기억이 몸에 남아 불안을 만든 적이 있으신가요?

그 마음의 처방전은 어떻게 내려 스스로를 다스렸는지 궁금한 오늘입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전 01화『페이지 너머의 풍경 2』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