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endo discimus, 배워서 남주자

2부 역발상 - 첫번째 이야기

by 박성봉
· 유전과 환경 중 나의 학습력에 가장 큰 기여한 요인 탐구
· 가르침이 곧 배움, 설명을 통해 완성되는 진짜 학습.
· 도슨트처럼 변환하고 제자처럼 역변환, 순환하는 배움의 구조.
· 배워서 남 주는 역발상, 나를 각성시킨 학습의 동력.


나는 돌연변이?


우리 집은 대가족이다.

아버지가 9남매의 맏아들이고 어머니가 7남매의 맏딸이다.

덕분에 나에겐 무려 30명의 사촌이 있다.

나를 포함해 모두 31명.

이러한 충분한 표본 집단은 유전(流傳)과 학습력에 관한 통계적인 통찰을 준다.

그들 대부분은 90년대 이후,

고등교육의 문턱이 낮아진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최근 막냇사촌이 24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갔을 정도로 연령대는 넓지만,

그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평균 60%를 상회했다.

확률적으로라면 우리 사촌들 중 절반 이상은 대학에 갔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31명 중 재수생을 포함해 4년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단 5명.

비율로 따지면 약 16%에 불과하다.

전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그중 소위 '인서울'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고작 두 명뿐이다.

개중에는 고등학교 진학조차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의 서울대학교 입학은 우리 가족사에 있어

명백한 '돌연변이'적 사건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 통계적 이상치(outlier)로 만들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유전과 환경,

그리고 학습의 본질을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유전자(nature)일까?


가장 먼저 의심해 볼 용의자는 '유전자'다.

굳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나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유전의 힘을 믿는다.

해밀턴은 생물의 이타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r×B > C 라는 수학적 모델을 제시했다.

여기서 r은 근연도(relatedness), B는 이익(benefit), C는 비용(cost)이다.

즉, 유전적 연관성이 높을수록 희생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유전적 근연도는 부모와 자식은 50%, 형제자매 50%,

사촌은 12.5%이다.


이 유전적 거리를 우리는 '촌수'로 계산한다.

촌(寸)은 원래 손목에서 맥박이 뛰는 자리까지의 길이(약 3cm)를 뜻하는 글자다.

족보를 펼치면 시조를 뿌리로, 자손들이 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나무 구조가 나타난다.

정보과학의 '트리 구조'나 생물학의 '계통수(phylogenetic tree)'와 같은 형태다.

나무의 마디라면 당연히 '절(節)'을 써야 할 텐데, 우리 조상들은 '촌(寸)'을 택했다.

혈연이란 단순히 가계도 위의 거리가 아니라,

같은 피가 흐르며 함께 뛰는 심장의 울림—맥박이

닿는 거리만큼 가까운 관계라는 뜻이 아닐까.

직계는 1촌씩 더해지고, 방계는 조상을 거쳐 내려온다.

촌수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유전적 근연도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만약 학습력이 전적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면,

12.5%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사촌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한 성취를 보인 사람이 더 있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유전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유전(遺傳)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멘델의 법칙을 떠올린다.

우성과 열성(최근에는 현성과 잠성)의 대립형질이 3:1 비율로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멘델 자신도 완두콩 이후 다른 식물들로 실험했을 때

법칙에 맞지 않는 결과를 얻었다.

완두콩의 명확한 3:1 비율은 오히려 예외였다.

인간의 키나 지능 같은 복잡한 특성은 단일 유전자로 결정되지 않는다.

수백, 수천 개의 유전자가 동시에 관여하는

다유전성 유전(polygenic inheritance)이 작동한다.

여기에 영양, 스트레스, 교육 환경이 더해지면

결과는 완두콩처럼 깔끔하게 나뉘지 않고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유전자 하나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럼, 환경(nurture)인가?


그렇다면 환경일까?

요즘은 '4세 고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모의 재력과 지원이 학벌을 결정한다고 믿는다.

부모님은 내가 중1 때부터 15년간 분식집을 운영하셨고,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다.

고액 과외는커녕 참고서 한 권 사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물론 필요하다면 부모님은 어떻게든 마련해주셨겠지만,

나는 차마 요구하지 못했다.

아마 그때 이미 '철이 든' 아이였던 것 같다.


부모님 어릴 적, 두 분 모두 형편이 어려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학교 문턱을 넘어본 적이 없고,

어머니는 동생들을 돌보느라 초등학교를 중퇴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은 내 성적표에 대해 한 번도 잔소리하지 않으셨다.

고1 때 성적이 전교 100등 밖으로 밀려났을 때도,

1점대 대학 학점을 두 학기나 들고왔는데 그저 묵묵히 지켜보실 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방임'에 가까운 거리두기가

나에게는 오히려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심어주었는지 모른다.


군산 철길 마을에서 한 번도 입어보시지 못한 교복을 입고 행복해 하시는 나의 부모님. (2024년)


나와 50%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나의 여동생은 나와 비슷한 환경을 공유했다.

같은 집에 살며 같은 음식을 먹었고, 비슷한 양육방식을 받았다.

— 같다고는 할 수 없다. 동생은 부모님이 나와 다르게 대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작은 소도시에서 자라며, 같은 교회 학생부에서 생활했고

속속들이는 몰라도 인간관계의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표현형으로 나타나는 성격도 비슷했다.

외향적이고 쾌할하며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극 "E"형.

이렇게 많은 환경적 요소를 공유하는 여동생이지만,

교과 학습력에서는 차이를 보였다.

입시를 준비하는 동생에게 수학을 가르쳐보려고 했는데,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하며 힘들어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가족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면 몇 배로 힘이 든다..

누군가 이 현상을 진화생물학적으로 밝혀주면 좋겠다.)


어쩌면 환경이란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그 조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환경결정론으로도 모든 것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유전도, 환경도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다르게 만들었을까?



고등학교 교실에서


나는 나 자신을 "제약이 많은 환경 속에서 자원 소모를 최소화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화된 학습자"라고 정의한다.

(구체적인 나의 공부 비법은 이어지는 글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겠다.)

학원도 과외도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찾아낸 나만의 생존법,

그것은 바로 '설명하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나의 공부 인생을 바꾼 두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장면 #1


2학년 2학기 중간고사 수학 시험 직전.

교실은 저마다 막판 점검으로 분주했다.

그때 내가 불쑥 친구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이해 안 되는 거 있으면 가져와! 내가 설명해 줄게."

친구 몇 명이 문제집을 들고 몰려왔다.

나는 그들에게 차근차근 풀이를 설명해 주었다.

놀랍게도 비슷한 문제가 시험에 그대로 출제되었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념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리된 덕분에

나는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OMR 카드 마킹을 다 끝냈는데도 시간이 남았다.

주관식 답안지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었고,

깨어보니 둥그런 침 자국이 선명했다.

시험지를 하나 다시 받아 풀이와 답을 적어냈다.



장면 #2


2학년 1학기 지구과학 시간이었다.

오늘은 6명씩 둘러앉는 과학실 수업이었다.

예습을 충분히 해간 나는

'오늘 내용은 안 들어도 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에

허벅지 사이에 영단어 수첩을 숨기고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야, 뭐 하는 거야!"

각진 턱이 도드라져 '마징가'라 불리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다.

"당장 가지고 나와!"

영단어장을 내밀자, 순간 번개가 번쩍였다.

따귀였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으나,

"건방지다, 날 무시하냐!"라는 투였다.

다음 수업 시간, 선생님이 말했다.

"그렇게 잘 안다면, 네가 한번 설명해봐."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황도 12궁에 관한 수업이었다.

나는 교탁 앞으로 나가 분필을 들었다.

칠판 가득 원과 궤도를 그리며 설명했다.

친구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순간, 이상하게도 말이 술술 나왔다.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개념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연결되었다.

설명이 끝나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네가 나보다 낫다."




이 두 가지 경험은 나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지식은 머릿속에 집어넣을 때(input)가 아니라,

밖으로 꺼내어 설명할 때(output)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말이다.


Docendo Discimus - 가르치며 배우다


예전에 컴퓨터 책을 펴냈던 한 유명 개그맨이 있었다.

그가 남긴 "배워서 남 주자"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당시 학급 교훈으로 칠판 위에 자주 걸려 있던 문구는 "배워서 남 주냐"였다.

그 익숙한 말을 뒤집은 한 줄의 풍자는

공부의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배워서 남을 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남을 위한 공부에 대한 사유는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기원후 1세기, 네로 황제의 스승 세네카(Lucius Seneca)는

"Docendo, discimus"—"가르치며 배운다"는 말을 남겼다.

이보다 앞서 중국에서도 『서경』의 "효학반(斅學半)"과

『예기』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이 같은 맥락의 지혜를 전한다.

가르침이 배움의 절반이며,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은 서로의 성장을 이끈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며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순간,

잊혔던 지식이 되살아나고 새로운 이해가 덧붙여진다.

설명을 잘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기존의 지식을 넘어 창의적인 사고가 생겨난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가르침이 곧 학습의 가장 강력한 방식이라는 것을.

배워서 남 주는 일이 결국 나에게 더 큰 배움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이것이 공부에 대한 나의 '역발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Docendo, discimus"라는 라틴어가

오늘날 우리의 언어 속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단어가 도슨트(docent)와 디사이플(disciple)이다.

도슨트는 미술 전시회나 작품을 해설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단순히 설명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작가의 삶과 시대, 작품이 지닌 맥락을 해석하고,

색과 구성의 의미까지 짚어낸다.

그들은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이다.


디사이플은 '제자'를 뜻한다.

예수의 열두 제자가 대표적이다.

제자들이 예수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예수가 바라본 신과 구원의 세계는

당시 사람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었다.

오늘날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예수는 말 그대로 '딴 세상'의 사람이었다.

이로 인해 생긴 인식의 불균형은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

누가복음 23장에서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죄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는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간극을 안타까워하며, 예수는 마태복음 13장에서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라."

고 말한다.

진정한 스승의 역할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도슨트가 그림을 '보여주듯',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게 지식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데 있다.


류쉐펑(刘雪峰) 교수의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은

이 원리를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의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다.

이는 자연과학과 공학 전반에서 활용되는 수학적 처리 방법으로

전력 송전이나 음성 신호 처리의 원리에도 응용된다.

그는 전달 문제의 핵심 해법으로 '변환–조작–역변환'을 제시한다.

이 개념을 쉽게 비유하자면 국제 화물 운송의 '컨테이너화'와 같다.

물류의 복잡한 형태를 표준화된 규격으로

바꾸어야 배에 실려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듯,

가르침 또한 원본 지식을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뒤에 '조작'—즉 실제 경험과 적용—이 이루어지고,

마지막으로 학습자가 스스로 그 구조를 재조립하는 '역변환'이 일어난다.

이 세 과정이 하나로 맞물릴 때 비로소 '진짜 배움'이 완성된다.



우리의 인식은 양파처럼 겹겹이 복잡하다.

이를 차곡차곡 '담아내기'—다마네기(玉ねぎ)와의 언어유희를 양해 바란다—

가 '도슨트'의 첫째 덕목이다.

'역변환'은 특히 학습자의 몫이다.

전달받은 지식을 자기 언어로 다시 정리하고,

기존 지식과 연결하며 재구성해야 한다.


이 과정은 마치 알에서 깨어나는 병아리와 같다.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치는 순간,

어미 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아 주어야 생명이 탄생한다.

줄탁동시(啐啄同時)!

배움도 이와 같다.

가르침과 학습은 상호작용 속에서 완성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다르다.

대학에서는 연구 성과가 탁월한 교수는 존경받지만,

강의를 잘하는 교수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회사에서도 "회사는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니다"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된다.

그 결과, 후배들은 배우고 싶어 하지만 선배들은

"굳이"라며 자신의 일만 한다.

가르침에 대한 인센티브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은 배우는 사람만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통찰과 확장된 사고를 선물한다.

그 순환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조직은 지식이 단절된 채 반복되는 오류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배움은 결국 가르침과 학습, 변환과 역변환이 맞물린 순환 구조다.

이 상호작용이 균형을 이룰 때,

지식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온전한 이해로 변모한다.

돌아보면, 나의 학습력은 유전적 기질과 환경,

그리고 우연한 경험이 얽혀 만들어낸 결과였다.

유전만으로도, 환경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던 그 '돌연변이'의 정체—

결국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배워서 남 주자."

그 단순한 역발상이 나를 각성시켰고,

지금도 나를 책상 앞에 앉게 만든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