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공부 비법

2부 역발상 - 두번째 이야기

by 박성봉
· 공부란 시간을 들여 깊이 파고드는 궁리, 한중일 삼국의 다른 해석.
· 결핍을 도구로, 게으름을 무기로—제약성과 효율성.
· 무질서 속 패턴, 출력으로 뇌를 바꾸다—창발성과 가소성.
· 정답보다 감수성, AI 시대 인간의 공부는 정답 없는 질문에서 재출발.



공부(工夫)의 재정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남들보다 빠른 편이기 때문이다.

타고난 이해력과 암기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 버티는 우직한 '엉덩이 힘'이 더 큰 무기였다.

이 끈기는 비단 공부뿐 아니라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도 이어졌다.

상황을 유연하게 조율하고 타인과 어우러지며 쌓아온 자신감은,

낯선 도전이나 새로운 만남 앞에서 두려움을 지워주었다.

자칫 자랑으로 들릴까 망설였지만,

험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다독이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적어본다.


그렇다면 내가 그토록 자신 있어 하는 '공부(工夫)'란 무엇일까.

한·중·일 세 나라는 같은 한자를 쓰면서도 뜻을 조금씩 달리한다.

중국어의 '공푸(gōngfu)'는 시간적 여유를 뜻하고,

일본어의 '쿠후(くふう)'는 깊이 생각하고 궁리하는 자세를 가리킨다.

이 둘을 합쳐보면, 공부란 결국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두고 대상을 깊이 파고드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쓰는 '공부'를 옆 나라에서는 어떻게 부를까.

일본어에서는 '벤쿄(勉強)'라고 하는데,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힘써 한다는 고역의 뉘앙스가 담겨 있다.

반면 중국어는 '학습(学习)'을 쓴다.

배울 학(学)과 익힐 습(习).

배움이 새로운 지식을 접하는 단계라면,

익힘은 끊임없는 반복을 통해 그것을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하는 단계다.

이는 방대한 데이터를 씹어 삼켜 스스로 패턴을 깨우치는

인공지능의 학습 메커니즘과도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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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습 메커니즘을 해부해 보기로 했다.

결론은 네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결핍을 도구로 쓰는 '제약성',

게으름을 무기로 삼는 '효율성',

무질서 속에서 패턴을 찾는 '창발성',

그리고 출력을 통해 뇌를 바꾸는 '가소성'.


이것이 타고난 기질인지 후천적 습관인지는 알 수 없다.

학습과의 인과관계가 있는지, 단순 상관관계인지,

아니면 나만의 인지적 재해석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네 가지 원리가 나처럼 공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혹은 잘하고 싶은 이들에게 작은 실마리가 되길 바라며

나의 '영업비밀'을 공개한다.



① 제약성: 결핍이 만든 브리콜라주


내 기억 속 할아버지 댁은 언제나 고물상이었다.

강원도 홍천의 옛 44번 국도변,

도둑을 막으려고 시멘트 담장 위에 날 선 유리 조각을 박아놓았던 그곳.

마당에는 뜯겨 나온 전축 스피커 자석, 정체 모를 회로 기판,

굵기별로 널린 구리선, 심지어 뇌관이 제거된 박격포 탄피까지 굴러다녔다.

남들에겐 그저 버려진 '고물'이었지만, 나에겐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물'이었다.

이리저리 붙였다 뗐다, 끼웠다 뺐다 하며 나만의 실험에 몰두했다.


그런 나에게 1980년대 후반 TV 속 맥가이버는 단순한 드라마 주인공이 아니라 우상이었다.

껌 종이로 퓨즈를 잇고, 솔방울과 송진으로 폭음을 만들어 적을 교란하는 남자.

총 한 자루 없이 지혜와 미소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훗날 알게 된 심리학자 제임스 깁슨의 '어포던스(affordance)' 개념이 바로 그것이었다.

환경이 행위자에게 제공하는 행동의 가능성.

보통 사람들은 사물의 정해진 용도만 보지만,

맥가이버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숨겨진 가능성,

즉 새로운 어포던스를 발견하는 천재였다.


그를 흉내 내다 대형 사고를 칠 뻔한 적도 있다.

번개탄 톱밥을 긁어모아 휴지 심지에 채우고 양초 심지를 박아

'폭탄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었다.

불을 붙이기 직전 아버지께 발각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당시 우리 집 축사와 본채 지붕은 인화성이 강한 보온 덮개로 덮여 있어,

자칫하면 잿더미가 될 뻔했다.

그날 밤, 나는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회초리를 맞았다.


Gemini_Generated_Image_41y30i41y30i41y3.png (맨왼쪽) 할아버지 고물상 앞에서 백일쯤 된 나를 안고 계신 어머니, 잘 안 보이지만 담벼락 위에 유리조각들이 박혀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브리콜라주(Bricolage)'였다.

정해진 재료나 설계도 없이, 손에 잡히는 것들을 조합해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야생의 사고'.

고물상 마당에서 뒹굴던 꼬마는 이미 브리콜라주를 실천하고 있었던 셈이다.


나의 학습은 지금도 이 방식을 따른다.

인지심리학의 '제약 만족 이론'이 이를 뒷받침한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뇌는 오히려 마비된다.

이른바 '선택의 역설'이다.

하지만 제약이 주어지면 뇌는 좁은 통로 안에서 최적해를 찾기 시작한다.

경제학의 '희소성 원리'와도 통하는 이야기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인위적인 족쇄를 채운다.

'궁하면 통한다(窮則通)' 했던가.

도구 없이 맨몸으로 달리고 또 수영하는 물리적 결핍,

매주 같은 요일 연재 마감을 정해두는 시간적 결핍,

내가 쓴 독서 노트를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인지적 결핍.

이 셋을 일부러 만들고 얼기설기 브리콜라주할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솟아난다.



② 효율성: 게으른 뇌를 위한 휴리스틱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본질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그리고 나만큼이나 게으른 것이 바로 나의 뇌다.

학창 시절, 평소에는 놀다가 시험 기간에만 반짝 공부하는

벼락치기가 내 주특기였다.

중학교까지는 전교 10등 안에 들었지만,

공부량이 늘어난 고1 때는 100등 밖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2학년부터 심기일전해 겨우 내신 1등급 꼴찌로 졸업할 수 있었다.


내신과 수능 수학은 철저한 시간 싸움이었다.

게으른 내가 고안한 생존 전략은 '눈으로 풀기'였다.

무턱대고 손부터 움직이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래서 눈이 먼저 길을 트고, 펜이 그 뒤를 따르도록 훈련했다.

이는 수학의 점화식과 원리가 같다.

전체를 보고 겁먹을 필요 없이,

바로 앞뒤 항의 관계에만 집중하면 다음 고리가 자연스레 풀린다.

마치 이상형 월드컵에서 단순한 일대일 비교를 반복하며

최종 우승자를 가려내는 것처럼.

지금 와서 보니, 이는 최적의 값을 찾아가는 AI의 '경사 하강법(gradient descent)'이나,

단계별로 논리를 전개하는 '생각의 사슬(chain of thought)' 기법과도 묘하게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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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효율 추구는 자연스레 '분류' 습관으로 이어졌다.

컴퓨터 폴더 정리는 곧 내 뇌 구조의 투영이다.

바탕화면에 아이콘이 널브러진 동료의 모니터를 보면 숨이 턱 막힌다.

그렇다고 분류가 지나치게 깊어서도 곤란하다.

'직박구리' 폴더 속에 '해오라기', 그 속에 다시 '뻐꾸기'를

숨겨놓는 식이라면 나조차 길을 잃기 십상이다.

나의 원칙은 인지심리학의 청킹(chunking) 이론을 따른다.

인간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는 대략 일곱 개 안팎.

나는 낱개의 정보들을 의미 있는 덩어리로 묶어,

모든 자료가 세 번의 클릭 안에 도달하도록 층위를 설계한다.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대충 파악하기에 있었다.

인간의 뇌는 본래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다.

나는 이 본성을 거스르는 대신 이용하기로 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휴리스틱(heuristics)이다.

모든 정보를 꼼꼼히 따지는 대신,

직관과 경험으로 빠르게 답을 내리는 사고방식.

100% 정확도를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90% 정확도로 열 배 더 많은 범위를 훑는 쪽을 택했다.

화려한 공격보다 지지 않는 수비.

이것이 게으른 내 뇌가 선택한 생존 전략이었다.



③ 창발성: 헌 책 더미에서 피어난 패턴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봄방학이었다.

학교 현관에는 마지막 학력고사를 끝낸 93학번 선배들이

버리고 간 문제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암기 과목 위주로, 같은 과목이라도 출판사가 다른 문제집들을 골라 왔다.

여러 문제집을 한꺼번에 펼쳐놓고 공부하다 깨달았다.

선생님들조차 결국 여러 문제집의 지문을 짜깁기해 출제한다는 사실을.

이 패턴을 간파한 후, 2학년부터 나의 성적은 수직 상승했다.


미국 마약 관련 은어 중에 핫박싱(hot-boxing)이라는 말이 있다.

밀폐된 차 안에서 연기를 피워 농도를 극한으로 높이는 행위를 뜻한다.

나의 독서도 그와 같았다.

지난 3년간 1,200권, 『토지』, 『태백산맥』, 『레 미제라블』 같은 대하소설도 각각 한 권으로 쳤다.

거의 하루에 한 권 꼴로 읽은 셈이다.

한 권을 끝내고 다음 권으로 넘어가는 식이 아니었다.

여러 권을 동시에 펼쳐 놓고 읽는 이른바 초병렬 독서법.

뇌라는 압력밥솥에 닥치는 대로 정보를 쑤셔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이해가 안 돼도 멈추지 않고 덩어리째 삼켰다.

그러자 임계점을 넘는 순간, 책과 책이, 경험과 경험이 충돌하며 새로운 연결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 나는 세상을 2×2 매트릭스로 구조화하는 습관이 있다.

아이젠하워가 업무를 중요도와 긴급도로 나누어 우선순위를 정했듯,

가로축과 세로축을 그어 대상을 네 영역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미처 보지 못했던 사각지대까지 시야가 트이면서 전체 그림이 한눈에 들어온다.


브런치 독자를 분류할 때를 예로 들어 보자.

가로축은 팔로우 여부, 세로축은 내 글에 라이킷를 누를지 여부라고 하면,


(O, O) 찐팬: 나의 '동지'
(X, O) 과객: 고마운 '손님'
(O, X) 유령: 조용한 '관찰자'
(X, X) 타인: 아직은 '남', 하지만 '예비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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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질서한 정보를 계속 분류하고 밀어 넣자,

거대한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과 불이라는 상극이 만나 밥이라는 새로운 물성이 탄생하듯,

압도적인 양은 어느 순간 질의 전환을 가져왔다.

복잡계 이론에서 말하는 창발(emergence)이다.

개별 요소들이 임계점을 넘으면 전혀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 현상.

이 과정은 전이 학습(transfer learning)으로 이어졌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응용하는 능력.

수학의 논리를 국어 독해에 적용하고,

역사의 인과관계를 과학의 작용-반작용으로 이해한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스키마(schema)라고 부른다.

머릿속에 지식의 틀이 생기면, 새로운 정보는 그 틀에 맞춰 정리된다.

틀은 점점 정교해지고, 연결이 많을수록 꺼내 쓰기 쉬워진다.

헌 책 더미 속에서, 내 뇌는 스스로 길을 만들고 있었다.



④ 가소성: 출력이 뇌를 바꾼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소풍 전날이면 너무 설레어 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법이 양말을 미리 신고 자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침에 1분이라도 아껴보려 했던 건지,

혹여나 너무 들뜬 나머지 양말 신는 걸 깜빡할까 걱정됐던 건지.

분명한 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행동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시뮬레이션 중이다.

2년 전 시력 교정을 받았지만,

안경을 벗은 모습은 고글을 벗은 뽀로로만큼이나 어색하다.

그래서 도수 없는 안경을 쓴다.

체육관 라커룸에 안경을 두고 올까 봐,

라커 아래칸에 안경을 벗어놓고 그 옆에 양말이나 헤드폰을 반드시 같이 둔다.

양말을 집으려면 안경을 만져야 한다. 깜빡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화장실이다.

닫힌 변기 뚜껑을 보면, 열기 전에 일단 물부터 내린다.

안에 무엇이(?) 있든 일단 씻겨 내려가게 한다.

통계학에서 말하는 '2종 오류(type II error)'를 피하기 위함이다.

1종 오류는 실제로 없는데 있다고 판단하는 것(위양성),

2종 오류는 실제로 있는데 없다고 판단하는 것(위음성)이다.


1종 오류: 깨끗한데 물을 내림. 비용은 수도세 조금.
2종 오류: 깨끗한 줄 알고 열었다가 봉변. 비용은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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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꺼이 1종 오류(수도세 낭비)를 택함으로써

치명적인 2종 오류(트라우마)를 막는다.

이는 나의 뇌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넛지다.

선택 환경을 미리 설계하여 더 나은 결정을 유도하는 장치인 셈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만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위양성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입력보다 출력에 집착한다.

빈 의자에 가상의 학생을 앉혀두고 가르치는 상상을 하며 입을 뗀다.

단순히 읽고 들을 때보다, 스스로 구조화하여 설명할 때 학습 효과는 상승한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이를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라 부른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그 고통스러운 부하가 장기 기억을 강화한다.

이 반복적인 출력 과정은 뇌의 물리적 구조조차 바꾼다.


자주 사용하는 신경 회로에는 미엘린이라는 지방질이 겹겹이 감기는데,

이를 '수초화(myelination)'라고 한다.

전선의 피복이 두꺼워질수록 정보 전달 속도는 빨라지고 손실은 줄어든다.

습관 형성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행동이 자동화되는 데는 평균 66일이 걸린다고 한다.

경험에 따라 뇌가 스스로를 재설계하는 이 성질을 '가소성(plasticity)'이라 부른다.

공부는 머리로 집어넣을 때가 아니라, 입과 손으로 끄집어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공부(工夫)의 재발견


돌이켜보면 나의 공부법은 기묘하게도 AI의 진화 과정과 닮아 있다.

① 결핍을 메우던 '브리콜라주'는

적은 데이터로 학습하는 '퓨샷 러닝(few-shot learning)'이었고,

② 게으름이 빚어낸 '효율성'은

핵심 특징만 남기는 '차원 축소(dimensionality reduction)'였다.

③ 무식하게 쏟아부은 '창발성'은

거대 언어 모델처럼 임계점을 넘으면 터지는 '사전 학습(pre-training)'과 같았다.

④ 출력으로 완성한 '가소성'은

피드백을 통해 오차를 줄이는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었다.


뇌라는 생체 컴퓨터와 차가운 실리콘 칩.

지능이 성장하는 알고리즘은 결국 하나였던 셈이다.

이 방법들이 나를 공부 잘하게 만든 것인지,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 패턴을 발견한 것인지,

그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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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후회가 남는다.

나는 정답을 맞히는 기술에는 능숙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부는 하지 못했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깊이 궁리하지 못했고,

삶의 이면을 파고들기보다 표면의 데이터를 긁어모아 점수로 환산하는 데 급급했다.

20대의 내가 어설프게 브리콜라주니 휴리스틱이니 하는 말을 갖다 붙이는 대신,

헌 참고서 귀퉁이에 적었던 그 치열한 고민들을 담백한 에세이로 남겼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어른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나를 닮은 딸아이에게는

이 비법들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많은 학생을 과외로 가르쳐봤지만,

부모의 강압으로 성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내가 평생 갈고닦은 네 가지 효율적 기술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상상력,

흩어진 조각을 하나로 엮는 기획력,

목적 없이 몰두하는 유희력이

더 큰 진짜 공부임을 이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바야흐로 AI가 나의 공부법을 완벽히 대체하는 시대다.

최적화와 암기는 이제 그들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공부는 무엇이어야 할까.

정답 맞히기는 AI에게 맡기고,

우리는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정답 없는 인생이라는 난제를 풀기 위해,

늦깎이 학생처럼 글쓰기라는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