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 : 선생님께

1부 자음, 사람의 소리

by 박성봉
그림2.jpg (왼쪽) 교내 신문에 나온 기사, (오른쪽) 주일학교 예배 끝나고 교회에서, 우연히도 내가 좋아했던 데님자켓을 입고 있다. 운전용 장갑은 교회 선생님의 것.


선생님께 #1


보고 싶은 선생님께,

88년 6학년 1반 반장 박성봉이에요.

기억하시나요?

그해 처음 부임하셔

우리 반 담임을 맡으신 선생님은

모범생인 저를 무척 아껴주셨죠.

미루나무 끝에 흰 구름 걸린 초여름

가정방문 오신다는 게 얼마나 청천벽력 같던지요.

소똥 냄새 배어 있는 구더기 밑살 같은 살림이

어린 마음에도 창피했죠.

가는 길 굳은 제 표정 보셨는지

"손가락 당겨 봐" 하시더니

'뿡' 터진 방귀에 깔깔 웃으며

어느새 도착한 집

일 나간 어머니가 타 놓은 미숫가루를

냉장고에서 꺼내 드렸죠.

그때 선생님 얼굴엔 이런 마음이 읽혔어요.

'가난한 환경에서도 구김없이 컸구나'


* "구더기 밑살같은 살림"은 박완서作 『도시의 흉년』에 나온 표현.

* 축사겸 가정집 구조는 이전글 참고.

https://brunch.co.kr/@sungbongpark/128












그림3.jpg 당시 중앙국립박물관(구 조선총독부)에서. 95년 철거후 광화문이 옮겨 세워짐.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88년 7월 3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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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jpg 2023년 봄, 하윤이와 다시 찾은 국립어린이과학관.


선생님께 #2


인기 많던 멋쟁이 선생님.

우물 안 개구리 같던 우리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 하셨죠.

과학실에 다 같이 모여 숨죽여 본

<스릴러> 뮤비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7월초 156번 버스 타고 구파발로

또 3호선 전철 갈아타고 간 중앙박물관.

지금,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헐렸지만

추억은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창경궁 옆 국립과학관.

흑백TV 두 대 연결된 화상전화기가 마냥 신기했죠.

지금 선생님과 연결될 전화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월이 지나 딸아이 손잡고 다시 찾았습니다.

선생님이 열어주신 그 넓은 세상을,

이제는 제 딸에게도 선물하려 합니다.


* 1983년 12월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뮤직비디오.












그림5.jpg 졸업식 후 교실로 돌아와 사진촬영, 선생님과 찍은 사진은 부모님댁에.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2019년도에 처음 뽑아 보고 선생님의 꼼꼼한 코멘트와 과분한 평가에 감동 ㅠㅠ.


선생님께 #3


졸업식 날 상장도 받고 사진도 찍었죠.

헤어짐이 아쉬우셨는지 봄방학 때

선생님 본가 전주로 여행을 데려가 주셨습니다.

오락실 게임도 하고

폭력적인 영화도 같이 봤죠.

그러다 봄 햇볕에 눈 녹듯

제 초등학교 기억은 조금씩 잊혀 갔죠.

몇 년 전 생활기록부를 뽑아보고는,

선생님의 코멘트에

그만 눈물이 터졌습니다.

"…장래가 촉망되는 총명한 어린이"

35년 만에 열어본 타임캡슐.

선생님과 함께한 1년이

제 인생의 봄이었습니다.

가난했지만 주눅 들지 않게,

단단한 아이로 키워주신 그 마음.

어떻게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만나러 가요. 따스했던 봄날로.


*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레드 스콜피온>.

* 생활기록부 정부24 홈페이지에서 조회 및 발급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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