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 : 철들지 않는 어른

1부 자음, 사람의 소리

by 박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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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지 철쭉


10월의 마지막 날,

출근길에 마주친 분홍 철쭉.

봄엔 꽃철, 여름엔 피서철,

가을엔 단풍철, 겨울엔 김장철.

계절마다 제 철이 있는 법인데,

넌 왜 하필 지금 꽃을 피우고 있니?

지난 5월엔 늦잠 자느라 지금 피어난 거니?

아니면 친구한테 봄 왔는지 아닌지

알려주려 용기내 미리 얼굴 내밀어 본 거니?

어쨌든 너는 季節(철)을 모르는(不知) 철부지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사랑하는 뽀루뚜까,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저 철없는 철쭉이 부럽다.

그 어린 소년의 모습은 이제 찾을 길 없어도.

되리라!

마음은 철들지 않는 파릇파릇 청년이.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는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주인공 제제가 쓴 편지 중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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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임새


이른 아침, 달리러 나왔다.

구름이 낮게 흐르고

바람에는 물냄새가 배어있다.

항상 뛰는 코스를 벗어나

오늘은 새로운 길을 달려보고 싶다.

낯선 경치에 발구름도 경쾌해진다.

얼굴에 투두둑 몇 방울 떨어지더니

당면 같은 자잘한 가을비가 되어 내린다.

그때 앞에 신기루(蜃氣樓)처럼 누각이 나타났다.

2층에 오르니 스무 명 남짓 사람들이 모여 있다.

이끄는 이의 동작을 따라

"이크", "에크" 추임새와 함께

활갯짓, 장대차기가 이어진다.

나도 얼떨결에 무리 속에서 따라 해본다.

어느덧 하늘이 개고, 맑아진 머리로 다시 달린다.

우연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추임새.


* 성남시 중앙공원 돌마각에서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반에 택견 무료 강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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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의 추억


초등학교 때 집에서 학교까지

3km 길을 매일 걸어 다녔다.

아이 걸음으로 얼마나 멀었을까.

학년이 올라가며 걸음이 빨라졌고

상대성 원리처럼 공간은 수축했다.

등굣길이 직선이면 하굣길은 곡선.

의식의 흐름대로,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그날그날 다른 길을 누볐다.

통학길 중간엔 교외선이 지나갔다.

기차가 드문 철길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철로를 평균대 삼아 걷고

동그란 철심이 박힌 침목을 밟으면 아웃.

철로에 귀를 대고 있다가

멀리서 기차가 오면 쇄석을 몇 개 올려놓곤 했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타르 냄새와 초여름 아지랑이.

철 없던 그 시절이여 여태토록 그립다.


* 위 사진 촬영은 23년 6월이며 당시에는 교외선 전철 운영중단 상태였습니다.

현재 하루 왕복 20회 운영중입니다. (25년 1월부터)

* 생각해보니, 평균대(平均臺)는 영어로 balance beam인데, '균형대'가 어떨지요.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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