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종말』 & 『안티프래질』

2부 역발상 - 다번째 이야기

by 박성봉
· 평균이라는 단일한 수치가 다차원적 인간의 맥락과 개별성을 지워왔음.
· 들쭉날쭉함은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개인 고유의 능력 조합임.
· 변동성과 충격은 회피 대상이 아니라 시스템을 강하게 만드는 조건.
· 평균의 기준에서 벗어난 자리가 오히려 새로운 경로의 출발점이 됨.



응급실


병원 응급실만큼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공간이 있을까.

병명도 모른 채 기다려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나는 일본, 미국, 한국의 응급실을 차례로 경험했다.

세 번 모두 이유는 달랐지만 한 가지 배운 교훈이 있다.

시스템이 정교할수록 우리는 통계 속 하나의 데이터 포인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급실은 triage(트리아지), 즉 환자 우선순위 분류 체계로 움직인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고안된 이 방식의 목적은 단순했다.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한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

효율의 논리는 냉정하다.

누군가는 진단도 모른 채 병원과 집을 반복하고,

누군가는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린다.


나의 첫 응급실은 2006년 도쿄대 병원이었다.

모임 중 갑자기 현기증이 왔고, 숨이 조여들며 맥박이 빨라졌다.

설명하기 어려운 공포가 엄습했다.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이송됐다.

서툰 일본어로 띄엄띄엄 증상을 설명했다.

의료진은 지체 없이 CT를 포함한 뇌·심혈관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정상. 이상 소견이 없으니 처방 없이 귀가하라는 통보였다.

진료비는 약 1,000엔(만 원 정도).

그때 "공황장애일 수도 있다"는 말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의료진은 매뉴얼대로 움직였고,

데이터의 평균에서 이상 없음으로 판단했을 뿐이다.

나는 원인도 모른 채 몇 년을 혼자 버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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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응급실은 2018년, 두 돌 지난 딸 하윤이 때문이었다.

오후까지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왼쪽 팔꿈치를 펴지 못하며 울상을 지었다.

해가 지고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고, 카운터에서 간단한 초기 체크만 마쳤다.

그리고 어떠한 안내도 없이 대기실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아이는 트리아지에서 경증으로 분류된 모양이었다.

아파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이름이 불리고 들어간 진료실.

실제 의사를 만난 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진단명은 'nursemaid's elbow(유모 팔꿈치)'.

의사가 팔을 가볍게 끼워 맞추자 울음이 멎었다.

청구서에는 1,000달러(백만 원 이상)가 넘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듣지 못한 말은 이것이었다.

"아이 팔이 빠진 것 같아요. 곧 의사 선생님이 보실 거예요."

그 한마디가 없었다.

효율로 설계된 시스템 안에서 개별 환자의 불안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의학만큼 데이터가 쌓이는 분야가 있을까.

영상, 수치, 시계열 기록까지 우리 몸은 숫자로 기록된다.

그러나 데이터를 평균으로만 다루면 개개인의 특성은 지워진다.

응급실에는 결국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충격에 무너지는 사람(fragile),

충격을 버텨내는 사람(robust),

충격을 통과하며 오히려 강해지는 사람(antifragile).

시스템이 나를 평균으로 판단하더라도,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읽어낼 때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권의 책 『평균의 종말』과 『안티프래질』을 살펴본다.

두 책에 앞서 먼저 '차원'이라는 개념부터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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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과 분포


차원(dimension)이란 어떤 것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독립적인 정보의 수다.

우리는 3차원 세계에 살기에 1차원은 직선으로, 2차원은 평면으로 쉽게 떠올린다.

핵심은 각 축이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로와 세로처럼, 하나가 변해도 다른 하나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을 직교성(orthogonality)이라 부른다.

아인슈타인은 시간 축을 더해 4차원 시공간을 제안했고,

오늘날 AI가 이미지를 인식하고 패턴을 찾는 과정도

결국 이 차원을 다루는 수학, 즉 선형대수학 위에서 작동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키가 크면 몸무게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지능 점수가 높으면 학업 성취도도 함께 오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을 측정하는 지표들은 대부분 서로 얽혀 있다.

진정한 의미의 독립된 차원이 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차원을 구분해서 보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축으로 데이터를 쌓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 차원에 데이터가 쌓이면 분포를 볼 수 있다.

가장 익숙한 것이 종 모양의 정규분포다.

그 중심이 평균이고, 데이터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표준편차다.

그런데 평균과 표준편차가 같다고 해서 데이터의 실제 모습까지 같지는 않다.

통계학자 프랜시스 앤스컴은 1973년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줬다.

평균, 분산, 상관계수가 거의 동일한 네 개의 데이터 세트를 그래프로 시각화하자

직선, 곡선, 극단적 이상치가 포함된 형태 등 전혀 다른 네 가지 모양이 나타났다.

'앤스컴의 콰르텟(Anscombe's quartet)'이다.

요약된 통계값이 현실을 얼마나 가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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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또 다른 함정은 극단값(outlier)에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나 대기업 연봉 분포를 보자.

소수의 초고가 아파트, 소수의 억대 연봉자가 전체 평균을 끌어올린다.

평균만 보면 대다수가 그 수준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반 이상이 평균에 못 미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중간값(median)이다.

극단값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이 값은 평균이 가린 현실을 드러낸다.


딸 하윤이의 유아 검진 결과지에는 늘 'percentile(백분위)' 숫자가 적혀 있었다.

키, 몸무게, 머리둘레.

하윤이는 주로 25퍼센타일이었다.

100명을 작은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앞에서 25번째라는 뜻이다.

걸음마도, 말문도 또래보다 반년쯤 늦었다.

아이가 크면서 우리 부부도 알게 됐다.

숫자는 하윤이의 수많은 면 중 단 몇 개만 보여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개인의 수많은 차원을 무시한 채 평균이라는 하나의 숫자를 정답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문제'가 있다고 단정 짓는다.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과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두 책은 평균이라는 단일 기준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그 기준 밖에서 오히려 강해질 수 있는지를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다.



『평균의 종말』: 개별성의 과학


"게으름뱅이, 문제아, 한심한 녀석."

전 하버드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사회 설계 연구소 'Populace'를 이끌고 있는

토드 로즈가 고등학생 시절 들었던 말이다.

ADHD 진단을 받은 로즈는 낙제를 거듭하다 자퇴했다.

복지 지원을 받으며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검정고시로 학력을 회복하고 야간 대학에 입학했다.

결국 하버드 교육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평균이라는 잣대로는 실패한 학생이었지만,

자신만의 경로를 따라가자 다른 결과가 나왔다.


로즈는 『평균의 종말』에서 평균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한다.

19세기 벨기에의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는 수천 명의 신체 치수를 측정해

'평균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는 평균을 이상적 인간의 기준으로, 개별성을 극복해야 할 오류로 규정했다.

이 생각은 산업화 시대와 맞물려 빠르게 퍼져나갔다.

공장은 효율을 위해 표준화된 인간을 필요로 했고,

학교는 그런 인간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여기에 이론적 근거를 더한 것이 20세기 초 프레더릭 테일러였다.

그는 '과학적 관리법'으로 가장 효율적인 평균적 작업 방식을 찾아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했다.

인간을 부품처럼 표준화하는 이 테일러주의(Taylorism)는

공장을 넘어 학교와 조직 전반으로 퍼져나갔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손다이크는 "빨리 배우는 사람이 똑똑하다"는 전제를 교육에 심었고,

이후 교육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

같은 속도로, 같은 내용을, 같은 방식으로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굳어졌다.

앞서 살펴본 차원의 언어로 말하면,

다차원적 존재인 인간을 단 하나의 축으로 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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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구성은 1950년대 미 공군의 사례에서 확인됐다.

공군은 조종석 설계를 위해 수천 명 조종사의 신체 치수를 측정했다.

키, 가슴둘레, 팔 길이 등 10가지 항목의 평균값으로 고정식 조종석을 만들었다.

그런데 4,000여 명의 조종사 중 단 한 명도 모든 항목에서 평균 범위에 들지 못했다.

10개의 차원을 동시에 만족하는 평균적 조종사는 현실에 없었던 것이다.

공군은 조종석을 개인에 맞춰 조절 가능한 구조로 바꿨고, 사고율은 줄었다.

공군의 사례가 설계의 문제였다면, 노르마의 사례는 기준 자체의 문제였다.

1945년 클리블랜드 보건 박물관은 15,000명 여성의 평균 치수로 만든

'노르마' 조각상을 공개하며 '노르마처럼 되기' 경진대회를 열었다.

3,800명이 넘는 여성이 참가했지만, 노르마의 치수와 일치하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평균이라는 정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평균을 대신할 기준은 무엇인가.

로즈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들쭉날쭉의 원칙(jaggedness principle)'.

인간의 능력은 하나의 숫자로 요약되지 않으며, 차원마다 다른 수준을 보인다.

둘째, '맥락의 원칙(context principle)'.

성격이나 행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셋째, '경로의 원칙(pathways principle)'.

성취에 이르는 길은 하나의 고속도로가 아니라 저마다의 속도와 지형을 가진 길이다.


세 원칙은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능력의 조합을 가지고 있고,

다른 상황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며, 다른 속도로 다른 길을 걷는다.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아직 자신의 경로를 찾는 중일 수 있다.



『안티프래질』: 충격을 먹고 자라는 법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뉴욕대학교 리스크 공학 석좌교수이자 전직 헤지펀드 매니저다.

그는 저서 『안티프래질』에서 세상의 모든 사물을 충격에 대한 반응에 따라

'세 가지 유형의 대립 구조(the triad)'로 분류한다.

충격을 받으면 깨지는 fragile,

충격에 끄떡없는 robust,

그리고 충격을 받을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는 antifragile이다.

탈레브는 진정한 강함이란 단순히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와 변동성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성질에 있다고 역설한다.


그리스 신화의 히드라는 안티프래질의 상징이다.

머리 하나가 잘릴 때마다 두 개가 새로 돋아난다.

반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fragile의 전형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여행자를 침대 크기에 맞추기 위해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작으면 몸을 늘렸다.

평균이라는 침대에 개인을 끼워 맞추려는 시도는 개인을 파괴한다.

로즈가 평균주의를 비판한 지점과 탈레브의 이 비유는 같은 곳을 겨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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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의 핵심은 손실은 제한하고 이익은 열어두는 비대칭 구조다.

fragile한 시스템은 작은 충격의 누적은 버티지만

단 한 번의 거대한 사건, 즉 '블랙 스완'에 무너진다.

탈레브는 이를 '바윗덩어리 우화'로 설명한다.

아들에게 바윗덩어리를 던지겠다고 맹세한 왕이

바위를 돌멩이 1,000개로 쪼개어 던진다.

무게의 총합은 같지만 결과는 다르다.

충격의 크기가 아니라 충격의 형태가 시스템의 운명을 결정한다.


안티프래질한 시스템은 작은 스트레스를 통해 스스로를 강화하는

'과잉보상(overcompensation)' 메커니즘을 가진다.

독성 물질도 소량이면 약이 되는 '호르메시스(hormesis)'처럼,

적당한 스트레스는 시스템을 강하게 만든다.

반대로 스트레스를 인위적으로 차단하면 시스템은 더 큰 충격에 취약해진다.

숲의 작은 불씨를 모두 끄면 결국 대형 산불의 연료가 쌓이는 것처럼.


우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는 익숙하지만

고통을 통해 도약하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에는 낯설다.

도쿄에서의 공황과 미국 회사에서 느낀 스트레스는 나를 fragile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들은 내가 평균이라는 침대에서 벗어나

나만의 경로를 찾게 만든 작은 충격이었다.

로즈의 언어로 말하면, 들쭉날쭉한 조합이야말로 안티프래질의 조건이다.

하나의 축에서 평균에 못 미치더라도

다른 차원의 강점이 충격을 흡수하고 가능성을 연다.

고르게 평균적인 사람은 robust할 수 있지만,

들쭉날쭉한 사람은 antifragile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다른 언어로 같은 말을 한다.

평균은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개별성이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고.



평균을 넘어서 강해지기


병원 응급실에서 우리는 숫자가 된다.

CT 수치, 혈압, 심박수.

학교에서도 우리는 숫자가 된다.

성적, 등수, 퍼센타일.

두 공간 모두 효율을 위해 설계되었고, 그 효율은 개인을 지운다.


건강에서 안티프래질은 증상이 나타난 뒤 고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흐름을 미리 읽는 데서 시작한다.

도쿄대 병원의 CT는 정상이었지만 나는 아팠다.

평균 데이터가 놓친 것을 나는 몇 년에 걸쳐 몸으로 배워야 했다.

대증요법(對症療法)은 빠르고 명확해 보이지만,

개인의 맥락을 읽지 못하면 근본 원인을 계속 놓친다.

작은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몸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것.

그것이 건강에서의 안티프래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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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 다르지 않다.

의대 쏠림, 학원 순례, '4세 고시'에 흔들리는 부모들.

우리는 여전히 평균적 성공 경로에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

그러나 AI는 평균적인 능력을 가장 먼저 대체할 것이다.

빨리 배우고, 고르게 잘하고, 표준에 맞추는 능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들쭉날쭉한 재능,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강점, 남들과 다른 속도와 경로.

로즈가 말한 세 가지 원칙은 AI 시대의 생존 조건과 정확히 겹친다.


두 책이 말하는 것은 하나다.

평균이라는 침대에 나를 맞추려 할수록 우리는 더 fragile해진다.

들쭉날쭉함을 인정하고, 작은 충격을 피하지 않으며,

나만의 맥락에서 나만의 경로를 걸을 때 우리는 antifragile해진다.


다시 응급실로 돌아간다.

대기표를 쥐고 앉아 있는 그 공간에서

시스템은 나를 통계 속 하나의 점으로 본다.

도쿄에서 나는 그 점이 되었고, 몇 년을 혼자 버텼다.

미국에서 하윤이는 경증으로 분류되었고,

우리는 한 시간을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렸다.

시스템은 그렇게 작동한다.

그러나 그 경험들이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평균 데이터가 나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 몸과 내 경로를 스스로 읽는 법을 배웠다.


당신의 들쭉날쭉함은 결함이 아니다.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그 차원 너머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당신만의 차원이 있다.

히드라는 머리가 잘렸기 때문에 강해졌다.

깨지는 사람과 강해지는 사람의 차이는 충격의 크기가 아니라

그 충격을 어떻게 읽느냐에 있다.

결핍은 부족함이 아니라 다른 방향의 출발점이고,

평균 밖의 자리는 실패가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이다.

배워서 남 주고, 부족함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내가 말하는 역발상이다.




토드 로즈는 하버드 교육대학원을 떠나 현재 Populace를 이끌며

표준화된 성공의 틀을 바꾸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평균의 종말』과 함께 그의 다른 저서 『다크호스』를 읽으면,

평균적 공식을 거부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탁월함에 이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은 그가 설계한 '인식의 4부작' 중 한 권이다.

『블랙 스완』은 예측 불가능한 극단적 사건이 세계를 어떻게 흔드는지를,

『행운에 속지 마라』는 불확실성 앞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인지적 오류를 파고든다.

두 권을 함께 읽으면 탈레브의 세계관이 한층 선명해진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