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개발> 2
고양이 두(x) 세(o) 마리,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괴발'의 말랑함과 '개발'의 꼬순내를 사랑하는 나.
두 동물의 거리를 탐색하고, 사람과 동물의 닮음과 다름을 사유하는, 매우 사적인 에세이.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가을비 치고는 제법 굵고, 공기는 차가웠다.
퇴근 셔틀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던 길, 여덟 시쯤이었다.
우산을 받쳐 든 채 걷는 길, 좁은 시야 속으로 비에 젖은 도로가 전조등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낀 채 무언가를 들으며 걷고 있었다.
빗길을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먹먹하게 들리며 이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또렷한 소리가 들렸다.
작은, 하지만 애절한 울음소리.
'이건 고양이 울음소리다.'
길 옆 쥐똥나무 울타리 사이에서 들려왔다.
두리번 대니 젖은 털이 몸에 달라붙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다.
'치즈냥이', 한 달쯤 되었을까, 완전 '아깽이'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어미나 형제의 흔적은 없었다.
'찾아줘야 할까? 아니면 그냥 둬야 할까?'
하지만 차가운 비 속에 그대로 두고 올 수가 없었다.
손을 뻗었다.
고양이는 겁에 질린 채 뒷걸음질쳤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내 손끝에 미세한 온기가 닿았다.
가지사이를 피해 조심해서 끄집어냈다.
여전히 공포와 불안으로 울부짖는 고양이.
몸은 말랐고, 눈빛은 불안으로 가득했다.
5분 정도를 걸어 집 근처 편의점에서 '츄르'와 우유를 샀다.
셔츠는 비와 진흙으로 더렵혀 있었다.
종업원은 "좋은 일 하시네요" 응원을 했다.
아직 집에 데려갈지 정하지도 않았는데...
지붕이 있는 곳으로 비를 피해 30분 정도 먹여보려 했다.
하지만 자꾸 도망치려고만 했다.
'절대 집에 데려가면 안 돼. 딸이 무조건 키우자고 할꺼야.'
고민하고 망설이다, 결국 아깽이와는 슬픈 작별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와서 이야기를 꺼내자, 딸이 눈을 반짝였다.
"아빠, 그 고양이 아직 거기 있을까?"
나도 궁금했다.
우산을 챙겨 함께 나갔다.
아까 짜 놓은 '츄르' 그냥 그대로 있었다.
"야옹~ 야옹~" 소리로 유인도 해보고
스마트폰 '손전등'을 켜서 이리저리 찾아보길 10여분.
아까 들었던 그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새끼 고양이는 여전히 그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어딘가로 올라가 있었다.
콘크리트 벽 위, 비를 피할 수 있는 좁은 공간.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갔을까'도 잠시,
들여다본 작은 공간에 몸을 웅크리고, 여전히 서럽게 울고 있었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어젯밤은 그렇게, 아쉬움만 남긴 채 돌아왔다.
회사 회의 중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그 고양이 아직 여기 있어."
그리고 뚝 전화를 끊는다.
그러다 5시쯤, 다시 전화가 와서,
"엄마랑 같이 잡았어. 지금 사진 보낼게."
어제 그 고양이가 맞다.
불쌍한 마음, 미안한 마음, 그리고 '다행이다'는 마음으로 가슴이 두방망이질했다.
일을 일찍 끝내고 곧장 퇴근했다.
한 새끼 고양이를 좇고 좇는 두 여인의 추격전은 내일 천천히 물어봐야겠다.
집에 도착하니, 고양이는 이미 깨끗하게 목욕을 마친 뒤였다.
이제는 울지 않았다.
내가 손을 내밀자, 그르렁거리며 콧잔등을 내밀었다.
마치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잠시 후, 고양이는 내 무릎 위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작은 숨결, 따뜻한 체온, 젖은 털 냄새.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감동.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새로운 동물은 더 들이지 않기로 가족끼리 약속했었다.
생명은 귀하지만, 함께한다는 건 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어쩐지… '인연'의 힘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딸이 진심으로 원한다.
오늘 밤은 일단 이 작은 생명과 함께 조용히 쉬려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아직 이름도 없는 작은 생명과 우리 딸은 꿈나라로 함께 떠났다.
잠들기 전, 문득 궁금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의 소음 차단 주파수 특성을 찾아봤다.
1kHz 이상의 소리는 확실히 차단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GPT에게 물으니,
새끼 고양이가 두려움에 내는 울음소리는 바로 그 1kHz 근처라고 했다.
하지만 어제 '노캔' 모드를 뚫고 또렷이 들려온 울음소리를 생각해보건데,
그 주파수는 700Hz 정도가 아니였을까?
이상하게도 '노캔' 성능이 뚝 떨어지는 구간.
그날 비 속에서 들렸던 그 작은 울음은
노이즈 캔슬링도 막지 못한 운명의 주파수였던 셈이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詩, 「방문객」
새끼 고양이와의 만남에 인용하기에 살짝 민망한 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니 내가 아는 다른 시가 별로 없기도 했다.
바람은 음파(音波)다.
내 마음이 '700Hz의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걱정하실 다른 집사분들을 위해,
내일 동물병원에 데려가 건강상태도 확인하고 예방 접종도 할 겁니다.
수의사의 지시를 따라 며칠간 우리 집의 다른 두 고양이
'다복'이와 '조이'와는 따로 지낼 예정입니다.
혹시 고양이들 합사와 길냥이 입양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