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발개발> 3
고양이 세 마리,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괴발'의 말랑함과 '개발'의 꼬순내를 사랑하는 나.
두 동물의 거리를 탐색하고, 사람과 동물의 닮음과 다름을 사유하는, 매우 사적인 에세이.
지난주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글이 한 주 씩 밀렸다.
길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하면서,
우리 집 냥냥이가 셋이 되어버렸다. (지난 글)
병원 검사 결과 두 달쯤 된 암컷으로 건강 상태는 아주 양호했다.
수의사 선생님이 "이 나이대는 경계가 심한데, 얘는 사람 손을 탄 것처럼 참 순하네요."라고 하셨더란다.
아내는 처음에 '우리는 어디까지나 임보(임시보호)다'라고 했지만 점점 키우는 쪽으로 기울어간다.
나는 이미 마음속에 가족 등록을 마쳤다.
딸아이는 벌써 ‘럭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비오늘 날 나에게 구조된 얘는 행운"이라며, 그리고 "얘 때문에 우리도 행운"이라며.
하지만 엄마가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낼까 봐 조마조마해한다.
당분간 “럭키 입양 보낸다”는 말을 강력한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겠다.
아내는 어릴 적부터 집에 늘 강아지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동물에 관심은 많았지만, 집 안에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었다.
강아지를 처음 입양한 건 2012년, LA에 살 때였다.
그때 만난 말티즈 '보리'가 나의 첫 반려견이었다.
LA로 가기 전 1년 동안은 하와이 호놀룰루에 살았다.
내가 출근하고 없는 시간에 아내의 작은 즐거움은 케이블 TV 보기였다.
특히 디스커버리 채널의 '애니멀 플래닛'을 좋아했다.
그 채널에서 우리가 함께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Dogs 101>(강아지 입문 수업)과 그 스핀오프인 <Cats 101>(고양이)이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여러 견종의 유래, 성격적 특성, 양육 시 주의점들을 배웠다.
더해서 반려동물 관련 영어 용어들도 많이 알게되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단어가 'double coat'(이중모)와 'single coat(단일모),
그리고 이중모에서 털이 빠지는 현상을 뜻하는 'shed'가 있다.
Shed는 '창고', '눈물을 흘리다', '빛을 비추다'라는 단어로만 알았는데
'털이 빠지다'라는 뜻도 있는 걸 처음 알았다.
몇 년 뒤, 내가 남성 탈모약을 복용하면서 '쉐딩 현상(shedding)'이라는 말을 다시 들었다.
새로운 털이 나기 전, 기존 털이 빠져나가는 과정.
'그래 사람도 동물이지'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생김새와 성격, 그들의 likes and dislikes (호불호), 사람에게 보이는 다양한 애정표현 방식,
건강상 주의해야할 점 등 말 그대로 강아지와 고양이의 좋은 '입문 수업'이 되었다.
그것은 훗날 우리집에서 함께 살게된 여러 댕냥이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비숑 프리제(bichon frisé)는 프랑스어로 '곱슬곱슬한 털을 가진 작은 개'라는 뜻이다.
곱슬머리를 뜻하는 '프리제'는 영어 frizz(형용사 frizzy)와 어원이 같다.
줄여서 '비숑'이라고 부르지 말고 생김새의 특징을 살려 '프리제'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
이전에는 요크셔테리어나 말티즈, 포메라니안이 많이 보였다면
내 느낌으로 요즘 산책할 때 가장 많은 댕댕이들은 비숑이다.
비숑은 소형견이면서 매우 사교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보인다.
그리고 털빠짐이 적어 공동 주택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 같다.
우리 '구름'이는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른 흰 털 사이로 까만 코와 눈이 반짝인다.
털은 곱슬이지만 만져보면 매일 컨디셔너로 관리한 파마머리처럼 부드럽다.
구름이가 에너지가 넘쳐나는 것은 하루에 딱 세 번이다.
내가 퇴근해 돌아오는 현관에서가 1번,
아침에 일어나 눈을 마주칠 때가 2번,
그리고 간식 봉지를 열 때가 3번.
동물에게도 성인지 감수성을 적용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친구는 암컷같지 않고 성격이 무척 저돌적이고 털털하다.
식탐이 강해 사람 음식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사람 3명 중 누구 하나라도 없으면 항상 현관 타일위에 누워서 기다린다.
물론 몸에 열이 많아 타일의 시원함을 즐기는지도...
프랑스인들이 사랑하는 푸들은 예상외로 독일 품종이다.
원래 오리 사냥을 따라다니며 잡은 오리를 물어 오는 (retrieving) 개였다.
그래서 푸들(poodle)이란 이름은 독일어 'pudel'에서 유래되었고,
영어로 진흙 웅덩이를 뜻하는 "puddle"과 같은 어원이다.
이번에 공부하면서 푸들이 오리 사냥개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올해 초에 우리집에 콜덕 (call duck) 병아리가 함께 산 적이 있다.
(몇 주 안 되어 안타깝게도 무지개 다리를 건넜지만)
그때 '꽃님'이는 오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양이들이 새끼오리를 입에 물고 몰래 구석으로가다가 들켜서 아내한테 많이 혼났다.
꽃님이는 푸들 중에서도 토이푸들이다.
대형은 '스탠다드', 중형은 '미니어쳐, 그리고 25cm 이하는 '토이'푸들이라고 부른다.
꽃님이는 검은색 토이푸들로 약간의 턱시도(앞 가슴 흰 털)가 있다.
푸들은 지능이 매우 높아 훈련이 잘 된다고 알려졌으나 우리 꽃님이는 예외인 듯하다.
우리가 어릴 때 재주(trick)를 많이 가르치지 않기도 했지만 '손~'해도 잘 못한다.
(아니면 머리가 너무 좋아 우리를 골려먹으려 일부러 안 하는 걸지도...)
사람, 특히 아내에게 매우 집착적이고 옆에 꼭 붙어있으려고 한다. (분리 불안)
추위를 싫어해 이불속에 있기를 좋아하고,
식탐이 적어 다른 토이푸들에 비해 말라보인다. (2kg정도)
먹는 양은 적지만 구름이와 달리 치석이 많고 입냄새가 심하다.
그런데도 뽀뽀(사람 입술을 혀로 핥기)를 좋아해 나는 매일 그 입냄새를 맞는다.
처음엔 젖은 행주같은 그 냄새가 싫었는데 지금은 너무 좋다.
랙돌(ragdoll)은 상대적으로 최근에 등록된 품종이다.
1960년대 미국의 사육사(breeder) 앤 베이커(Ann Baker)에 의해 처음 선을 보였고,
70년대에는 '랙돌'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됐다.
이후 '국제 랙돌 고양이 협회'(IRCA)에 의해 엄격히 품종 관리가 되었다. (홈페이지 못 찾음)
한국에서는 '고양이계의 얼굴마담'으로 불리며 미묘(美猫)로 많이 알려져있다.
랙돌은 대형 고양이 품종에 속하고, 모질은 '앙고라 털'처럼 부드럽다.
이름에 봉제인형을 뜻하는 'rag doll'이 붙은 이유는 안아 들면 몸을 힘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성격이 매우 온순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일명 '개냥이'로 불리며 주인이 어딜 가든 따라다닌다.
사회성이 높아서 다른 반려동물이나 아이들과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
두 친구가 우리 가족이 된 것은 2년전이다.
우리 집 많은 동물이 그렇듯 발단은 우리 딸이었다.
당시 딸 아이가다니던 운동 클럽과 같은 건물에
고양이를 분양하는 '묘○인생'이라는 반려묘 분양소가 있었다.
"아빠 같이 가서 보자"길래 같이 보고, 내가 "아 예쁘다. 그런데 엄마랑 상의해보자"고 했다.
그날 저녁 엄마랑 같이 가서 또 다른 친구까지 두 마리를 데리고 왔다. (물론 아빠도 허락했다.)
'조이'는 하얀 얼굴에 베이지색 귀, 파란색 눈동자가 예쁘다.
'다복'는 '샴' 고양이 같은 까만 얼굴이 매력적이다.
일관성 없는 이름도 딸의 작품이다.
대형묘라고 걱정했는데 다행이 40cm에 4kg 정도로 적당히 자라줬다.
털이 길면 예쁘지만 털 날림이 심해 그루밍 할 때마다 훈련소에 입소하듯 빡빡 깍는다.
조이는 호기심이 많다.
내가 퇴근하면 구름이와 함께 현관에서 항상 맞아준다.
그리고 반가움의 표시로 '박치기'를 시전한다.
약간 성깔이 있어 자기가 싫어하는 뱃살을 주무르면 아프지 않게 손가락을 깨문다.
반면 다복이는 새침데기다.
캣타워에 혼자 올라가 내려다 보기를 좋아한다.
몸을 다 내보이지 않고 문이나 전신거울 등 지형지물(?)을 이용해 반쯤 몸을 가리고 쳐다본다.
하지만 애정표현은 남다른데 강아지처럼 몸을 팽그르 돌려 배를 까고 드러눕는다.
무장 해제 골골송둥이 '럭키', 25년 8월생(?), 코리안 숏헤어, ♀
'코리안 숏헤어'는 엄격하게 품종으로 정해지진 않았다.
한국에서 '길고양이'라 불리며 여러 고양이들의 유전적 배경이 섞인 반려묘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숏헤어'로 따로 품종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아래 영상 참고)
'치즈', '고등어', '삼색이' 등 다양한 색, 무늬, 체형이 존재한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코숏을 입양하는 숫자가 늘었다고 한다.
순종 특유의 유전적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 건강하다는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기·길고양이를 구조해 반려묘로 키우려는 흐름도 한 몫했다.
아직 온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럭키'를 아직 완벽히 파악하진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키워본 세 마리의 고양이 중에서 새끼 때 경계를 제일 적게 하는 것 같다.
첫날밤부터 내 손을 느끼며 들려주던 골골송(purring).
지금도 눈만 마주치면 그르렁 소리를 낸다.
다행이도 조이, 다복이와의 첫 대면에서 큰 드라마는 없었다.
지금은 두 오빠 고양이들도 적당한 관심을 보이며 사이 좋게 지낸다.
다만 저돌적인 구름이가 다가오면 하악질(hissing)을 한다.
그마저도 지금은 다들 익숙해진 것 같다.
다음 글에 이어서 쓰겠지만 고양이와 강아지의 소통방식은 다르다.
그들의 눈빛, 꼬리, 자세는 어쩌면 영어와 한국어보다 더 서로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름'이 곧 다양성을 낳고,
다양성을 결국 우리를 더 풍요롭게 만든다.
종간(種間) 다양성 말고도 종내(種內) 다양성도 필요하다.
우리 나라는 '같음'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한 민족, 한 언어, 한 역사.
그 단단한 정체성이 때로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줬지만,
다른 한편으론 '차이'를 배척하는 울타리가 되었다.
반려동물 문화도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순종’(純種)이란 단어가 품격을 상징한다.
혈통이 좋다는 말은 곧 가치가 높다는 뜻으로 오해된다.
하지만 다인종의 미국에서는 오히려 순종보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믹스견',
영어로는 hybrid dog 혹은 designer dog가 더 인기가 많다.
각종의 '다름'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애니멀 플레닛 채널의 예전 슬로건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렇다.
우리가 동물이고
동물이 우리다.
우리 집 인간은 세 명이다.
그런데 네발의 친구들은 다섯 명이다.
인간의 수를 넘었다. (outnumber)
어쩌면 이 30평 아파트는 그들의 집이고,
우리 세 가족이 그들의 집에 세들어 사는지도 모르겠다.
<Dogs 101> Poodle 편
https://youtu.be/74mx2OWM6mE?si=zEkNq_ad9TJCFEVk
<Cats 101> American shorthair 편
https://www.youtube.com/watch?v=8z5jTGFBdZ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