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과 무계획 사이, 충동과 기대 시원함과 답답함
해군에 복무하다 문득 전역 여행이라는 로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에 어디로 갈까 마냥 고민하던 중 같이 복무하던 동기가 몽골에 가자며 자연스레 합류했다. 바다 없는 초원의 나라라는 것이 바다 위를 한없이 떠다니던 수병에게는 달콤하게 다가왔다. 군 생활 중 힘이 부칠 때마다 우리는 여행에 대해 떠들었고, 오히려 정보를 입수할 수 없는 군대라는 상황이 우리의 상상을 북돋아 주었다. 휴가기간 중 각자 몽골 여행 책자를 사가려 중고 서점을 방문했고 때마침 몽골 여행책자를 발견했다. 중고 서점인지라 없으면 어떡하지 마음도 무색하게 금방 발견해 몽골 여행책자로 향하던 손은 목적을 망각하고 바로 옆 시베리아 횡단열차 책을 꺼내들었다. 본 목적이기에 몽골 책자가 어디있는지를 먼저 찾기는 했지만, 이미 여행 코너에 들어 온 순간부터 내 눈은 시베리아 횡단열차만 쳐다보고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만 한 다섯권 있어서 눈에 때려박힌 부분도 없잖아 있지만 장거리 기차여행이라는 생각 자체가, 작은 땅덩어리에 살았지만 배를 타고 세계를 누비던 내게 또다른 유레카로 다가왔다. 책을 들고 목차를 펼쳤다. 목차에 몽골이 들어있었다. 그렇게 내 여행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시작은 이랬다. 몽골에 가고 싶다. 한국에 오기 전 바이칼 호수만은 보고 싶었다. 문제는 바이칼 호수가 몽골에 있는 줄 알았는 데 러시아에 있단다. 기왕 가는거 딱 바이칼만 보자고 했었다. 책을 펼쳐 읽고 있으니 이제는 더 멀리 가보고 싶었다. 때마침 별 이유 없이 가졌던 주임원사님과의 면담에서 러시아 유학 시절과 상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대해 듣게 되었다. 이 정도면 운명인가 싶었다. 그래서 욕심 조금만 더 내서 상 페테르부르크까지 가고 싶어 졌다. 모스크바 - 상 페테르부르크 페이지를 읽는 데, 자꾸만 바르샤바행 기차 시간이 쓰여 있는 게 눈에 밟혔다. 솔직히 예전부터 동유럽은 꼭 한번 가보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 나는 동유럽 조금만 더 구경하고 한국에 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다. 때마침 내 인생에 유럽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하고 있었다. 내가 모은 돈, 모을 돈을 생각해 보았다. 눈 앞에 파병의 기회가 펼쳐졌다. 파병을 가면 돈을 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 군 복무 기간과 맞지 않았고, 가려면 복무를 연장해야 했다. 여행이 가고 싶어 전문하사를 신청했다. 군생활 때문에 힘들어 가고 싶어 졌던 여행 때문에 나는 군생활을 연장했다. 웃기게 돌아간다는 생각은 했지만, 한번 기대를 하고 나니 포기하기가 힘들어졌다.
결국 전문하사를 하는 것이 결정이 났고, 파병생활이 시작되었다. 돈은 해결되었다. 서유럽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내가 여행을 나서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계획은 거의 세우지 못했다. 몽골 여행은 사실 군동기가 거의 다 계획했고, 나는 오로지 그다음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 전역 후 나는 문제가 있던 흉부에 수술을 받았고 거의 3주간 제대로 일상생활도 하지 못하며 재활에 전념했다. 그렇기에 계획은커녕 정확히 어디 어디를 갈지도 다 정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파병 중 너무나 군대 답게도 누군가 내 시베리아 횡단 열차 책을 훔쳐갔고, 이젠 책을 읽었던 기억만을 안고서 대략의 계획만을 짰다. 거의 무계획으로, 로망이란 이름으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도 끊지 않은 채로 다 낫지도 않은 몸을 끌고서 여행을 나섰다. 뭔가 한 번이라도 지체하면,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되어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일단 떠나고 나머지는 가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방문 도시 및 국가.
몽골 - 울란바타르
러시아 -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카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토크
라트비아 - 리가
폴란드 - 바르샤바, 크라쿠프
독일 - 베를린, 프랑크푸르트(암 마인), 뮌헨
체코 - 프라하, 올로우무츠
오스트리아 - 빈
헝가리 - 부다페스트
이탈리아 - 베네치아(몬테벨루아), 피렌체, 로마(라티나), 밀라노
프랑스 - 몽펠리에, 낭뜨, 앙제, 파리
스페인 - 바르셀로나, 세비야
모로코 -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포르투갈 - 리스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