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을 떠났었나

나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

by 쵸이

작년 8월 초 군대를 전역하고 여행을 떠났다.


남들에게 말하기로는 전역 여행이었다. 항상 남들에게 무언가를 얘기할 때 나는 허울을 찾게 된다. 내 진짜 속마음을 가려줄 무언가가 필요해. 나 자신에게로부터도 숨기고 싶은 무언가 때문에.


여행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 되기엔 운이 좋아서, 여행을 이미 꽤나 다녀보았다. 나 스스로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는 다녀 보았던 것 같다. 네팔이라는 나라에서 여러 번에 걸쳐 총 1년을 살아보기도 했고, 필리핀에서 3달 정도를 지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해보자면 나는 여행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빠르게 변하는 것들, 머무를 수 없는 상태는 나에게 불안하기만 했다. 나는 공간이 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왜 여행을 떠났을까?


스스로도 어느 정도 여행을 좋아하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군대를 전역하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갖고 있었다. 언제가 네팔에 도착한 날. 나를 데리러 와주시기로 한 지인이 올 때까지 불안한 마음 안고 수많은 택시 아저씨들을 뿌리치며 가만히 앉아 있던 날. 머리가 짧은 한국인 형을 만났다. 공항에 단 둘 뿐인 한국인인 것이 인연이 되어 낯가림을 넘어서 대화를 텄고 그 형은 군대를 전역하고 여행을 나왔다고 했다. 야밤에 도착한 비행기였음에도 그날의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여행을 나왔다고 했고 어떤 마음이었는지 열 몇살 뿐이 되지 않은 날 보고는 잘 곳을 정했느냐고 물었다. 난 또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날 우연히 본 그 형을 내 집도 아니면서 내 지인이 있는 곳에 같이 가서 묵자고 했다. 왜인지 모르게 그 어리숙한 여행자는 내 눈에 멋있어 보였다. 그 날이 언제나 머릿속에 남아 나도 그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사실 군대에 있는 동안 그리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보다는 전역 이후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다. 단지 오늘을 보내는 것에 충실한 삶. 그게 내 군생활이었고, 군대에서는 그것이 모범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내 평범한 군생활을 두 번의 기회가 바꿔두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원한 해군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지원한 함정에 배치되어 군생활을 하다 순항훈련에 참가하게 되어 세계 12개 도시를 군함을 타고 여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게 핸드폰도, 인터넷도 쓸 수 없어 덜컥 아무런 정보도 없이 외국의 어느 도시에 놓여졌으면서도 잘 곳 걱정, 먹을 것 걱정도 없으니 가까운 도시를 노닐 듯 다닐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다시 배로 돌아와 한국에서와 똑같은 패턴으로 점호를 하고 청소를 하고 항상 써온 내 침대에서 잘 수 있었다. 그럼에도 천천히 움직이며 하루 자고 일어나 밖을 볼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바다의 색과 해의 길이 그리고 온도가 내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새로운 곳으로 가고 있다는 설렘을 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입항하는 날이 오면 다시금 망망대해 끝에서 전혀 새로운 땅을 보게 된다는 것이 너무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매일 아침 집 문을 나서면 풍경이 변하는 기분.


같은 침대에서 자고,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입항을 위해 갑판 위에 나왔을 때의 새로운 광경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순항 이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오히려 만족해서 여행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한 가지 기회가 또다시 찾아왔다. 우리 함정이 파병 함정으로 지정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전역일이 임무 수행 일과 겹쳐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이 사건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컸다. 개다가 파병 보상금은 군대에서 보내는 20대 초에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확신이 서지 않는 고민 속에서 나 자신에게 미끼를 던졌다. 파병 다녀와서 모은 돈으로 여행을 한번 실컷 다녀오자. 그렇게 전역 여행이 정해졌다.


문제는 부대에서 작은 문제가 생겼었고,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 유급지원병 신청을 취소하고 싶다고 부서장과 분대장에게 보고했으나, 그분들의 만류로 결국 파병을 가게 되었다. 그렇게 된 후에는 오히려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탈출의 의미에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6개월 간 바다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여행을 갈 생각을 하면 당장 여행에 가 있는 날보다도 더 설레고 좋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여행이란 이유가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어 외국에 가는 것은 엄밀히 말해 여행이라 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업무가 있어서, 공부를 위해서, 등등. 오히려 아무런 이유가 없기에 지금 이 순간과는 다른 순간을 느껴보고자 하는 바람에 혹은 누군가가 느꼈다는 그 기분을 느끼고자 하는 마음에 떠나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여행에 다녀와서 무엇을 배웠나 무엇을 느꼈나 물어본다면 크게 생각나는 것은 없다. 아주 솔직히 내가 얼마 정도를 썼었지 하는 게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여행을 간 것을 후회하느냐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후회하는 것은 전역 후 맞이하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여행 기간 중에 미래를 걱정하며 기운이 빠져 그날을, 어쩌면 다시 와보지 못할 그곳을 놓쳐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을 간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여행은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오늘을.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슬럼프를. 때로는 슬픔을 때로는 고민을. 결국에는 오늘의 나를 두고 떠나며 다시 여행지를 떠나 한국으로 갈 때는 새로운 나이고 싶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우치 서핑, 새로운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