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잠시 과거에 머문 날
오늘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찾지 않은 날이었다.
그리움은 분명히 있었는데,
그 마음이 손끝까지 내려오지는 않았다.
연락처를 열어볼 수도 있었고,
이름을 몇 번쯤 마음속으로 불러볼 수도 있었지만
그쯤에서 멈췄다.
그리움은 그렇게,
하루의 안쪽에만 머물렀다.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다 보니
지금의 누군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의 관계들은
너무 또렷하고, 너무 현실적이다.
안부를 묻고, 답을 기다리고,
약속을 정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오늘의 그리움은
그런 방향으로는 흘러가지 않았다.
대신 학창 시절
나를 묵묵히 지탱해주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잘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며칠을 버틸 수 있었던 시절.
어른의 말이 아니라
사람의 말처럼 들렸던 순간들.
그 목소리는
지금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릴 적,
아무 이유 없이 놀아주던
아빠의 모습도 겹쳐졌다.
같이 걷기만 해도 괜찮았고,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던 시간들.
그때의 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였다.
그 자체로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설렘으로만 가득했던
첫사랑도 스쳐갔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고,
상처를 미리 걱정하지도 않았던 마음.
좋아한다는 감정 하나로
하루가 조금 더 반짝이던 때.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진심이었던 순간이었다.
스무 살이 되었던 해의
공기도 떠올랐다.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괜히 가슴이 가벼웠고,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두렵지 않았던 시절.
미래는 막연했지만,
그 막연함이 가능성처럼 느껴지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떠올려보면
내가 그리워한 것은
특정한 누군가라기보다
그 시절의 나와 함께 있던
시간의 온도에 가까운 것 같다.
사람의 얼굴보다
그때의 공기, 마음의 상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던 여유.
지금도 내 곁에는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함께 웃고,
서로의 근황을 알고,
필요할 때 기대기도 한다.
그래서 외롭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망설여진다.
그런데도 가끔,
이름 붙이기 어려운 허전함이 스친다.
그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를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연락을 하고,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면
잠시 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요즘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른다.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지만,
마음은 예전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시간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하루가 무너지지 않는 상태.
이 여유가
마음의 여유인지,
아니면 외로움의 다른 얼굴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둘 중 무엇이든
지금은 굳이 이름 붙이고 싶지 않다.
다만 이런 상태가
조용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움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손을 뻗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리움은
마음속에만 두었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오늘의 그리움은
그런 종류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도
끝내 찾지 않았다.
그리움은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길 만큼의 이유는 없었다.
그 감정은 지금의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의 그리움은
다시 연결되기 위해서라기보다
잠시 돌아보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나온 시간과,
그때의 나를 가만히 떠올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정도의 거리.
오늘은 그 정도가
가장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이 마음을
굳이 움직이지 않고
하루 안에 그대로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