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에게도 특권의식은 있었다.
드러내고 다닐 만큼 분명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스스로에게는 알고 있던 감정이랄까.
공부를 아주 잘한 편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1년에 며칠만 집중해도
수학 문제를 풀어 제출할 수 있었고,
경시대회도
일주일이면 충분했다.
그래서였을까.
90점 아래의 점수는
늘 나를 조금 놀라게 했다.
어릴 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꽤 즐겁게 보냈다.
놀이터 대신
동사무소 도서관에 갔다.
책을 꼭 끝까지 읽지는 않았지만,
그 공간이 좋았다.
조용했고,
아무도 나에게
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면서도
나답게 잘 놀았던 시간이었다.
그러다
집안이 기울었다.
아픈 사람이 생기면
집은 서서히
분위기가 바뀐다.
우리 집도 그랬다.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이전의 균형은 사라졌다.
먹고사는 일이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고,
나는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사회로 나갔다.
그 과정에서도
나는 또다시
인정받는 쪽에 서 있었다.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고,
선생님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잘 버틴다며
나를 좋게 봐주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은
대접받는다는 생각을
조용히 품게 되었다.
그 생각은
사회에 나오자마자
무너졌다.
바닥이라고 느꼈는데,
그 바닥 아래에
지하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막 스무 살이었고,
아는 것도,
쓸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대학에 합격한 이력은
사회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사회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자존감은
생각보다 빠르게 낮아졌다.
쓸모없다는 느낌이
먼저 몸에 와 닿았다.
그전까지는
부모님과 선생님,
주변의 시선이
나를 받쳐주고 있었는데,
그 비빌 언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구덩이에
혼자 떨어진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이 특권의식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면
다시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어디선가
여전히 인정받고 있다는 착각이
잠깐씩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사회로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 1에 가까웠다.
주연도 아니고,
조연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위치.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회가 요구하는 시선에 맞춰
나를 세워두고 있었구나.
나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다.
독립이었다.
진짜로 혼자가 되자
나는 비로소
사회 구성원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계약서를 쓰고,
큰돈이 오가는 과정을 지나며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지도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큰 존재가 아니었다는 걸.
이 깨달음은
나를 작게 만들기보다는
겸손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시선에 맞춘 삶이 아니라,
나에게 맞춘 삶이
조금씩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
꿈을 꾸게 되었다.
남들보다 앞서가겠다는 꿈이 아니라,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겠다는 믿음.
집에 돌아오면
작은 생명체가
나를 반긴다.
그 존재 하나로
하루의 중심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때 알았다.
왜 부모가 강한지.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는 선택을
기꺼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와 엄마는
위대했던 거다.
나는 이제
잘났다는 생각에서 내려와
조연이지만
내 삶에서는
분명히 주연으로 산다.
그게
지금의 내가
서 있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