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약속은 늘어나고 마음은 줄어든다

쉬고 싶은데, 만나야 하는 날들

by JH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달력의 칸은 생각보다 빠르게 채워진다.


모처럼 길게 쉬는 연휴인데,

이상하게도

비워두고 싶었던 날들이

먼저 사라진다.


이번에 시간 되지?

그래도 명절인데 얼굴 한 번 봐야지.


반가운 말이다.

고마운 말이기도 하다.

나를 기억하고,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분명 감사한일이다.


그런데 그 말들이 겹쳐지기 시작하면

마음 한쪽이 조금씩 단단해진다.

아니, 딱딱해진다가 맞을까.


말랑하던 휴일이

어느 순간

결정해야 할 일정표로 변한다.





나는 요즘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글을 더 쓰고 싶고,

늦게까지 반려동물과 놀고 싶고,

아무 약속도 없이

하루를 통째로 흘려보내 보고 싶다.


그런데 명절은

그 '하고 싶은 일들' 위에

'해야 할 일들'을 겹쳐 올린다.


가족을 만나는 일,

친구를 만나는 일,

오랜만이라는 이유로

한 번쯤은 응답해야 할 것 같은 만남들.





약속이 많다는 건

외롭지 않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약속들이 쌓일수록

내 마음의 여백은

조금씩 줄어든다.


연휴는 길어졌는데

숨 쉴 공간은

오히려 얇아지는 느낌.


어릴 때는

약속이 많을수록

내가 잘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바쁘게 오가는 연락이

나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지금은 다르다.

나는

만남을 선택하는 걸까,

아니면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모처럼의 휴일이

나를 위해 열려 있는 시간인지,

아니면

나를 확인받기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인지

가끔은 헷갈린다.


그래서 더 복잡해진다.

아쉬움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연휴에조차 연락할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복에 겨운 하소연일지도 모른다.

아니, 복에 겨운 소리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부담도 있다.


만나지 않으면

관계가 옅어질 것 같은 불안,

거절하면

마음이 좁은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


그 사이에서

마음은 조금 뻑뻑해진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약속의 밀도는 짙어지고,

나는 점점

내 속도를 잃는다.


만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다.


그저

이 연휴 안에

'나'라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그 생각을 또렷하게 말하기에는

괜히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입 안에서만 맴돈다.





그래서 올해도

달력은 채워진다.


고마운 이름들로,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아쉽다.

그런데 또

부담스럽다.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기대와 피로가

같은 비율로 올라간다.


아마 이번 연휴도

그렇게 흘러가겠지.


만나고, 웃고, 돌아오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서야

내가 조금 지쳤다는 걸 알게 되는 밤.





연휴는 분명 길지만,

그 안에서

온전히 나에게 남는 시간은

생각보다 얇다.


그 얇은 틈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뻑뻑한 마음으로

달력을 바라보게 된다.


명절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조금 고맙고,

조금 아쉽고,

조금 숨이 막힌다.


내 마음의 여백을

조금 더 남겨두는 선택도

괜찮지 않았을까.


늘 생각하면서도

다음 연휴도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당신의 연휴는

어떤 밀도로 채워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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