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날의 공기
아픈 날은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소리가 줄어드는 건 아닌데
내 안쪽이 먼저 비어 있는 느낌이 든다.
몸이 약해지면
생각도 가벼워진다기보다
제자리를 잃는다.
평소에는 단단하다고 믿었던 내 마음이
잠깐 흩어진다.
혼자 사는 일은
대부분의 날에는 특별하지 않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병원 예약을 하고,
결과를 듣고 돌아오는 일까지
그냥 하루의 순서처럼 흘러간다.
그런데 아픈 날에는
그 순서가 조금 멀어진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다
손을 내린 적이 있다.
밖으로 나가면
그 다음 장면이 이어져야 하는데
몸이 먼저 멈췄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몇 걸음이
괜히 길었다.
열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심코 해본 진단키트에는
두 줄이 나왔다.
놀람보다
잠깐의 공백이 먼저 왔다.
약을 꺼내기 위해 서랍을 열었는데
그 작은 동작이 버거웠다.
약을 먹는 일조차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양쪽 발을 수술했던 날에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걷지 못하는 상태로
혼자 입원하고
혼자 퇴원했다.
그런 경우는 드물다는 말을 들었지만
젊은 여성의 케이스는 아니라했다.
서럽다기보다는
내 편이 구체적인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차가 있는 곳까지 절뚝이며 걸어가던 거리.
또다른 날의 기억은 또렷하지 않다.
알레르기로 몸이 무너졌던 날에는
잠깐
119를 떠올렸다.
그날은 처음으로
와달라는 말을 했다.
혼자서는
무언가를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몸보다 먼저 왔다.
평소의 혼자와
아픈 날의 혼자는
같은 단어가 아니다.
병원 대기 의자에 앉아 있으면
몸과 마음이
같이 낮아진다.
그때 문득
이럴 때만이라도
둘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아픈 날에만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조금 우습다.
평소에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몸이 약해지는 순간에만
다른 장면을 떠올리는 태도.
잠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누군가와 산다는 이유가
병원을 함께 가기 위해서일 리는 없는데
그날의 나는
그 장면 하나로 충분해 보였다.
약을 먹고
몸이 제자리를 찾으면
그 생각도 같이 옅어진다.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조용한 방에 서 있으면
아까의 통증이
조금 전의 일인지 아닌지 흐려진다.
몸은 회복된다.
일상도 다시 속도를 낸다.
나는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달린다.
그날 스쳤던 생각은
설명되지 않은 채
조용히 물러난다.
아픈 날에만
잠깐 얼굴을 드러내는 감정.
혼자라면 덜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지금은
그 생각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
몸이 나아서일 것이다.